칠드런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6
이사카 코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5년 1월
구판절판



"소년을 만나는 데 심리학이니 사회학이니 아무 소용 없어. 그놈들은 통계도 아니고, 수학이나 화학식도 아냐. 그렇잖아? 게다가 누구든 자신을 오리지널 인간이라고 생각해. 누구와 닮았다고 하면 싫어한다고. 나는 존 레논과 닮았다는 소리를 참지 못해. 그런데 조사관이 '아, 이놈은 이런 가정환경 패턴이로군.','이건 이전에 다뤘던 비행과 같은 케이스로군', 그런 식으로 틀에 맞추면 누가 좋아하겠어. 발렌타인데이에 옆에 있는 놈하고 똑같은 초콜릿을 받는 거랑 똑같다고.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초콜릿을 받고 좋아라고 펼쳐보았는데, 다른 놈들한테 돌린 거하고 똑같으면 어떻겠어. 그런 비극은 필요없다고. 조사관은 담당하는 소년이 '다른 누구와도 닮지 않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놈'이라고 생각해야 해. 그렇게 마주하지 않으면 조사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야."-98-99쪽

"어린이는 영어로 차일드야. 그런데 복수가 되면 차일즈가 아니라 칠드런이 된다 말이지. 그러니까, 아이는 다 다른꼴을 하고 있는 거라고"하고 말했다.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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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01-02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름을 이상하게 여기는 문화에서 저는 좀 괴로워요. 혹시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냐?'이런 걸로요.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배울 수 있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즐거울 수 있다고 저는 일단 결론을 내렸어요. 아직 '세상의 시선'이 여의치 않으니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어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1-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넘 개성이 강하다보면 사회의 안정을 깨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지요. 개성을 죽이는 건 사실상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인 듯. 언제쯤 알록달록한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올까요.
 

 

알라딘 서재를 방문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흔적은 잘 안 남기나 여기저기 자주 들어가보는데. 무엇보다 그 많은 폴더들. 그 폴더들이 주는 위압감이랄까. 위압감이라고 하면 웃기지만 그게 무엇이든 분류 못하고 정리 못하는 나에게 그 폴더들은 놀라움을 넘어 하나의, 위압이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 와 같은 마음이 들면서 뭘 먼저 클릭하고 봐야할지 안절부절못하다가 새글만 클릭해서 보고 나와버린다. 별것 아닌데도 그렇다. 능력은 안 돼면서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어서 하면 다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포기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만약에 마음에 드는 서재가 있어서 즐겨찾기를 해놓았다고 하면 꼭 들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시달리다가 시간이 흐르면, 아예 발길을 돌려버린다. 이것은 관심의 문제라기보다는 성격의 문제다. 그냥 설렁설렁 봐줘도 모를 텐데, 그냥 대충대충 분류 해놓아도 괜찮을 텐데. 꼭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니 폼 좀 내보려다 어설픈 모습만 잔뜩 보여주고 만다. 하지만 이젠 어설퍼도, 마구마구 벌여놓고 뒷수습을 못해도, 그 모습 그대로 즐기고 싶다. 그러려고 한다.

 

내 머릿속은 아직도 인생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하다. 버릴 만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바라보는 그곳은 현실에는 없고, 머릿속에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릴 적 숨겨진 부자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믿었던 그 심정으로, 20대 초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던 그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요즘엔 남들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붓고 살았던 지난 날의 삶이 조금은 초라해보인다. 그들의 삶이 인생의 정답이라거나 행복의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동안 현실에 몸을 부딪히고 살아가는 걸 너무도 기피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가리고 아옹해도, 아무리 멋진 꿈을 꾸어도, 사실 바뀌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조금 치열해볼까 한다. 어떤 글에서 읽었는데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는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딪히고 자꾸만 경험하면서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는다고. 하지만 아둔한 아이는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잘 되지 않을까봐 겁나서 그 세상으로부터 도망간다고 한다. 나는 그 아둔한 아이가 나 같아서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세상을 껴안고 살아보고 싶어졌다. 어차피 빈몸으로 죽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아니, 두렵지만, 모두가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도전한다는 것을 알았다. 너도 나도 같은 마음이니 부끄러워도, 두려워도, 겁나도, 좀더 풍덩, 뛰어들고 싶다. 내 인생이니까, 맨날 울면 억울하잖아. 그러니까 웃으면서 즐기면서, 두려워도 도전하면서.

이천칠년은 멋질 거야.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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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7-01-0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내 힘이 된다"고 했다고 해요.(고명섭, 담론의 발견 201p)
님의 문장을 읽으며 뒤로 갈수록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어요. 무대에 서는 것이 무서워 돌아 앉아 우는 것보다 한번 무대에 서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내고 싶은 그런 가수처럼 한 해 도전하며 살아가기 바래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1-02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울지 말고 씩씩하게:)
 
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아, 이 낯설음은 뭘까, 였다. 모든 장르 중 하나의 장르만이 남아야 한다면 그것은 무조건 문학이 돼야 한다고 믿고, 문학을 좋아하고, 상상의 세계와 허구, 그것을 통해 겪는 감정의 정화를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 소설은 무척 낯설었다. 재미 있게 읽었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름도 끼쳤는데, 막상 이게 어떤 책이냐고 말해주려면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랄까.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결국엔 문학의 힘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엄청 유명한 배우인 아버지 덕에 언제나 그 그늘 밑에 가려져 살아온 주인공 애비가 마치 아버지처럼 좋아하고 열광하는 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러 「웃음의 나라」의 배경이 된 게일런에 간다. 역시 프랜스 덕에 알게 된 색스니와 함께. 그리고 그곳에서 겪게 되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개가 말을 한다거나 아이가 차에 치어 죽어도 슬퍼하기는커녕 아이가 차에 치일 때 웃고 있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여겨진다거나. 하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게일런. 마지막 결말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고 아무튼 주인공이 웃음의 나라에서 빠져 나오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그토록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던(사실은 좋아하는 거였겠지만.) 애비가 진짜 아버지의 전기를 쓰고 있다,는 후기에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애비가 웃음의 나라, 게일런으로 가 그속에서 겪은 일들은 과연 실제였을까. 게일런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은 애비가 프랜스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 겪게 된 하나의 심리적인 동요들, 환상들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애비가 이야기 속에 빠져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아버지를 마주볼 수 있게 됐음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을 아니었을까. 그 길에 이르기까지 애비는 힘들게 책속으로 파고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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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6-12-26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팀 버튼 감독 이안 맥그리거 주연의 <빅 피쉬>라는 영화가 연상되는 소설이네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아요.:)
 



아침 출근길에 다시 만난, 애교쟁이 고양이. 어디선가 또 "니야아옹"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보니까 예의 그 고양이였다. 손을 내밀자 여전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다가와 앵겼다. 마치 가지 말라는 듯 가는 내 앞길을, 내 다리를 부비며 도는 통에 걸음이 늦어졌고 어느 지점까지만 따라와주었다. 배웅하듯.

그렇게 두 번을 만났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 찍은 사진. 혹시 사람의 영혼인가 싶게. 신기했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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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6-12-2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넘 귀여운 고양이에요. 원래 고양이는 사람을 잘 피하는데, 어떻게 다가왔을까? 좀 놀랐아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귀엽죠? ㅎㅎㅎ 가끔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들도 있더라고요.

잉크냄새 2006-12-26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화 신었나 잘 보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6-12-2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잉크냄새 님의 발상, 넘 귀여워요. 꺄르르.
 

 

#1.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스포일러가 있을라나?)

무료 예매권이 생겨서 일요일 한낮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극장을 찾았다. 원래 혼자서 영화 보러 잘 다니는 데다 영화 스타일에 따라 혼자 보기를 더 선호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연인들이 꽉 들어 찬, 시간에 혼자 영화를 기다리는 기분이란.... 쫌 멀쭘했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 울었다. 다들 너무 다정해서. 싸이보그라서 밥 먹으면 안 되는 영군에게 일순이 밥 먹이는 장면, 정신병원 식구들 모두 한마음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안타까움과 공감대. 일순이 종이컵 전화기로 영군에게 요들송 불러주고 영군이 붕붕 날아오르는 장면, 울먹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영군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쓰는 일순. 어느 로맨틱 코미디보다 로맨틱했다, 영화가 생각하면 좀 난해한데 그냥 재밌게 보면 러브스토리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역시 사랑밖에 없다는 거, 영화 보면서 내내 이 커플 부러웠다. 치.

일순이 점으로 소멸되기 싫다,고 소멸되지 않으려고 남의 것을 훔친다는 대사는 나 충격적이었다. 그래, 두렵구나. 두려워서 그러구나 싶어서. 존재감을 잃고 싶지 않아서 엉뚱하게 구는 인간이 일순뿐이랴. 그리고 엄마 같던 할머니가 그 좋아하는 무도 먹을 수 없게, 틀니도 없이 정신병원으로 끌려가는 모습. 그 모습을 본 영군이 충격을 받은 건 당연하지 싶었다. 여린 마음에 상처와 눈물을 담기보단 싸이보그가 되는 게 낫겠지.

 

#2. 바비 킴 2집

오늘 바비 킴 2집이 도착했다. 여름에 나온다고 한 앨범이 12월에야 나왔으니 한 4~5개월은 기다린 것 같다. 20,30퍼센트 대중적인 느낌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좋다. 그의 목소리와 노래.

처음엔 누군지도 몰랐고 몇 번 듣고도 좋은지 잘 몰랐었는데 처음 감동이 징-하고 왔던 순간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불을 끄고 음악을 틀어놓고 누워 있었다. 무슨 노래인지 기억 안 나는데 그 노래 듣다가 울어버렸다. 아, 이 사람 인생이 참 고달팠겠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그 음악을 듣던 순간에는 세상에 캄캄한 어둠과 바비의 목소리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정말 '팬'이 됐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사람은 딱, 마이너다, 그런 느낌. 슬프지만 희망과 긍정의 정서가 스며 있는 느낌이 든다. 누가 뭐래도 내 길을 가겠다는 곤조. 음악이 내 인생이다, 하는 절박함., 자기 일을 즐기면서 오는 여유와 위트. 그런 것이 한데 뒤엉켜 있어서 다시 들어도 또 새롭다. 그리고 십년 넘는 기간 동안 언더를 벗어나지 못한 자신에게 늘상해오던 말이었겠지만. 성공을 못해도 돈을 못 벌어도 그래도, 공부를 못해도, 매번 실패해도,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그래도 또 한번 가보자, 하는 것 같다. 괜찮으니까 우리 웃으며 가자고. 그렇게 위로해 준다.

한마디로 '인생을 아는 것' 같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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