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이다. 누구에게나 위기의 상황, 절대 마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꼭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나는 정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그 위기를 헤어날 길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그것은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한 삼 개월. 인도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음식이든 잠자리든 까탈스럽지 않아서 나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적응했다고 믿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남에게 짐을 맡기고 화장실에 갔다온 적도 있고, 같이 기차를 탄 사람들에게서 음식도 자주 얻어 먹었고(인도여행 중 최고의 금기 사항 중 하나는 기차 안에서 현지인이 주는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약물을 타서 잠이 들게 한 후, 귀중품을 훔쳐가는 사례가 많기 때문.) 낯선 사람과 차를 마시기도 하는 등 사실, 나는 금기사항을 많이 어기면서 다녔다. 하지만 남들이 걱정하는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 거의 육 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많이 먹고 정말로 길게 잤다. 참아도 참아도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서 마치 동물처럼 자고 또 자던 날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여행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이 긴장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남들이 아침을 빵으로 때울 때 나는 카레를 먹을 정도로 음식도 잘 적응했고,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 바로 쓰러져 죽은 듯이 잤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행 후 그 시간들을 보충하려는 듯 끊임없이 먹고 자는 나를 보면서 내 무의식은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중 나의 행동을 다시 꼼꼼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크고 작은 사기들을 많이 당하게 되는데 작은 돈부터 큰돈까지, 여행 중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은 한은 누구나 그런 사기를 당하게 된다. 나도 여러 번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되돌아보니, 언제나 내가 사기를 당했던 것은 여럿이었을 때였다. 여럿이니까 내가 마음을 놓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방심했을 때, 그때가 허점이 보이는 순간이다. 정작 혼자 있을 때는 여행 후반 기막히게 황당하게 경험한 MP3 도난 사건을 제외하고는 뭐 하나 잃어버린 적도, 큰일을 당한 적도 없었다. 혼자이기에, 믿을 건 나뿐이기에, 나는 언제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던 거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언제나 웃으면서 그 말을 받고, 때로는 차를 얻어마시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을 푹 놓고 있었던 적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짐을 맡길 때도, 나는 그걸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맡겼었다. 중요한 것은 다 몸에 지니고 있으니까, 저 사람이 큰 가방을 가져가도 별일은 없을 거야, 라고.
그러니 나에게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내가 운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저는 여태 밤에 나돌아 다녀도 별일 없었는데요? 다 괜찮더라고요. 앞으로도 별일 없겠죠."라는 식의 말을 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던 거구나. 나는 밤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그건 정말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찍 자는 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일찍 숙소로 돌아오려고 노력했고, 밤에는 누군가를 대동했으며, 혹여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굉장히 조심을 해왔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하는 나에 비해, 그런 건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그애가 나는 왠지 모르게 거슬리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는 건데, 마치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자기에게선 비껴나가는 것 같다는 식의 자신감에 차 있는 그애가 나는 불편했다.
마냥 몸을 사리기만 했다면 여행은 재미없었겠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기회가 왔을 땐(집에 초대받는다는 등의) 그 기회를 잡았고, 대신 마음을 다 놓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 항상 저 말을 떠올린다.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그러면 이 상황은 금방 해결될 거라고,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