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녀는 부유한 중산층의 자녀라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기는 불쌍한 아이였다고 했다.

먼 곳에 있는 아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로 밖에 있던 엄마,

그리고 혼자 빈 집을 지키는 어린 꼬맹이가 자기였다고.

관심받고 사랑받기 위해, 착한 아이로 살았던 날들이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자신이 불쌍하다고 했다.

나의 나이 든 친구는 돌아가신 엄마를 회상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1년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충격이 뒤늦게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울먹이는 그녀에게 아들은, 엄마는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잖아.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보이는 것만 믿는 법.

무뚝뚝한 모녀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그 까실까실한 애정을,

그 아이도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

나는 괜시리 코가 시큰거렸다.

나는 엄마도 살아있고, 어린 시절 빈 집을 지켜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근데도 그녀와 그녀에게서 불쌍하고, 어둡고, 외로운 나를 보았다.

 

모두가 애닯아.

산다는 건, 상처없이는 안 되는 건가 보다.

예쁜 눈동자를 가진 사람도, 꼿꼿한 허리를 하고 자신감 있게 걷는 사람도,

지식이 넘칠 듯 풍부한 사람도, 언제나 스마일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모두 껍데기를 벗겨보면,

그 안에는 아이 혼자 달랑 앉아 울고 있어.

그러니 손을 잡아주어야지.

어깨를 감싸안아줘야지.

말은 집어치우고, 다만 온기로 안아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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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2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안의 어린 아이를 바라보시는군요. 잘 쓰다듬고 안아주시길...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2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그 아이를 본 지는 좀 됐는데, 결국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아이가 없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잘 달래보려는 데 헉헉- 쉽지가 않은 거 있죠.^^
 

 

 

비 오는 날, 빗소리, 빗소리 들으며 잠 자기, 빗물에서 첨벙거리기 등등.

비 오는 날은 즐거운 날.

오늘 같은 토요일 밤, 비가 왔으면.

부슬부슬 소리없이 내리는 얌전한 비여도 좋고,

세상을 다 날려버릴 듯한 바람을 동반한 카리스마 비여도 좋다.(사실, 나는 이쪽이 더 좋다.)

글면 창문을 활짝 열고 온몸과 귀를 열어 빗소리를 느껴야지.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쓰레빠를 신고 밖으로 나가는 거야.

빗물 웅덩이 속을, 아니면 촉촉히 젖은 길바닥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거지.

아마도 풀과, 꽃과, 나무들은, 물기를 머금고 생기를 띨 테고,

길가는 한산할 테지.

그러다가 또 심심해지면 우산을 접고(마음같아선 획, 던져버리고 싶지만)

빗속으로 뛰어드는 거야.

딱 감기에 걸리지 않을 만큼만 나는 있을 거야.

그리고 톡톡 튕겨져 나가는 빗방울을 느껴야지.

서서히 내려와 착착 감기는 수줍은 빗방울이어도 좋아.

(하지만 아플 만큼 세차게 떨어지는 비야 말로, 나를 치유하지.)

빗속의 나는, 살아 있음을 몸으로 아는 한 사람.

나는 뜨거운 여름날, 따가운 태양 아래를 거닐거나

덜덜덜 이가 딱딱 부딪히는 겨울날, 찬바람의 냉기를 고스란히 받아야

진정, 살아 있구나,를 아는 종류의 사람.

그러니 내리는 비를 마냥 바라만 볼 수는 없지.

비가 한차례 내 몸을 훝고 가면,

질척거리는 쓰레빠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 뽀송뽀송해진 몸으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 다시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듣는 거지.

잠이 들고, 세찬 빗소리에 슬며시 잠이 깨기도 했으면.

빗소리는 음악처럼, 자장가처럼 나를 재우고,

영원히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깨고 난 후에도 나를 지켜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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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7-08-19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비맞이 산책길에 저희 집에 들러주신다면 따끈한 생강꿀차를 타드리겠어요. (코코아도 가능해요) 그리고 당신의 쓰레빠도 뒤집어 놓아 보송보송 말려드리죠. 빗방울이 타닥타닥 떨어지는 소리처럼 경쾌한 글 읽으니 아, 나도 비 맞고 싶다요 :)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1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생강꿀차. 아아- 생각만 해도 신나는걸요. 비가 막 쏟아질 때즘 집에서 나와 첨벙첨벙 당신의 집까지. 그리고 나올 때쯤이면 맑게 개인 날도 좋겠어요.:) 이제 햇볕이 쨍쨍하니 저는 팥빙수를 대접하지요.

잉크냄새 2007-08-2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inging in the rain 이라도 한구절 읊조린다면 더 없이 멋진 풍경일듯 싶군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2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영화 한 편 찍어야겠어요. 호호호호.
 

 

우리집은 아마도 4층짜리인 빌라 2층이다. 어느 날 빌라로 들어가는 문에서 예쁜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길냥이같이 생겼으나, 어쩜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예쁜 눈을 가진 고양이. 쓰다듬어 주었더니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비벼대는 것이, 아마도 사람 손을 탄 고양이인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딩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고양이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간다.

-저 집 고양인가 보다.

며칠 후 같은 고양이가 또 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예뻐라 해줬더니. 집 앞까지 따라온다. 언젠가 키우지 않을 거면 동물을 집안에 들이지 말라 했던 기억이 퍼뜩 나서 살살 달래 나만 쏙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은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쯤에서 니야옹, 니야옹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나를 부르는 것처럼. 옆을 쓰윽 보니 검은 자동차 아래에서 요 녀석이 나오더니 마치 자기가 앞장서듯 빌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제. 문 앞에 우아하게 앉아 있던 냥이가 내 손에 든 마늘빵 냄새를 킁킁 맡길래 부숴서 나눠주고 쓰다듬어주고, 그러고 자리를 일어섰다. 먹는 데 집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요 녀석 또 내 앞을 막으며 계단을 오른다. 내가 그냥 갈 기미였는지, 이 녀석 갑자기 돌발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벌러덩. 요 이쁜 녀석이 1층 집 앞에서 배를 보이며 누워버린 것이다.

-배 째라는 거야?

배를 보여주는 건 충성의 표시라지만, 고양이가 그러는 것은 처음 봐서 귀엽기도 하고 매정하게 돌아설 수가 없어서 또 예쁘다며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다시 계단을 올랐고 초인종을 눌렀다. 자꾸 가라는 데도 야옹거리던 이 녀석 또다시 필살기를 보여준다.

벌러덩. 아이쿠야. 사채업자가 돈을 안 줄 기미가 보이면 배 째라며 드러눕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양. 자꾸 받아주면 결국엔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 돌아섰지만, 난 왠지 그토록 처절한 애교가 슬펐다.

-나를 봐주세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 이쁘지 않아요?

하는 것 같아서. 그리 하지 않아도 예쁜데,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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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8 0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이다. 누구에게나 위기의 상황, 절대 마주하고 싶은 순간들이 꼭 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상황이든 나는 정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그 위기를 헤어날 길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그것은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한 삼 개월. 인도여행을 갔던 적이 있다. 음식이든 잠자리든 까탈스럽지 않아서 나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적응했다고 믿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남에게 짐을 맡기고 화장실에 갔다온 적도 있고, 같이 기차를 탄 사람들에게서 음식도 자주 얻어 먹었고(인도여행 중 최고의 금기 사항 중 하나는 기차 안에서 현지인이 주는 음식을 먹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약물을 타서 잠이 들게 한 후, 귀중품을 훔쳐가는 사례가 많기 때문.) 낯선 사람과 차를 마시기도 하는 등 사실, 나는 금기사항을 많이 어기면서 다녔다. 하지만 남들이 걱정하는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후 거의 육 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나는 정말로 많이 먹고 정말로 길게 잤다. 참아도 참아도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서 마치 동물처럼 자고 또 자던 날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여행의 기간 동안, 정말 많이 긴장하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이었다.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남들이 아침을 빵으로 때울 때 나는 카레를 먹을 정도로 음식도 잘 적응했고, 밤에 숙소로 돌아오면 바로 쓰러져 죽은 듯이 잤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여행 후 그 시간들을 보충하려는 듯 끊임없이 먹고 자는 나를 보면서 내 무의식은 굉장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여행 중 나의 행동을 다시 꼼꼼히 되돌아보게 되었다. 인도에서는 크고 작은 사기들을 많이 당하게 되는데 작은 돈부터 큰돈까지, 여행 중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은 한은 누구나 그런 사기를 당하게 된다. 나도 여러 번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되돌아보니, 언제나 내가 사기를 당했던 것은 여럿이었을 때였다. 여럿이니까 내가 마음을 놓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방심했을 때, 그때가 허점이 보이는 순간이다. 정작 혼자 있을 때는 여행 후반 기막히게 황당하게 경험한 MP3 도난 사건을 제외하고는 뭐 하나 잃어버린 적도, 큰일을 당한 적도 없었다. 혼자이기에, 믿을 건 나뿐이기에, 나는 언제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던 거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언제나 웃으면서 그 말을 받고, 때로는 차를 얻어마시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도 마음을 푹 놓고 있었던 적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짐을 맡길 때도, 나는 그걸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맡겼었다. 중요한 것은 다 몸에 지니고 있으니까, 저 사람이 큰 가방을 가져가도 별일은 없을 거야, 라고.

그러니 나에게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단순히 내가 운이 좋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 만난 어떤 여자가 "저는 여태 밤에 나돌아 다녀도 별일 없었는데요? 다 괜찮더라고요. 앞으로도 별일 없겠죠."라는 식의 말을 했을 때, 거부감이 들었던 거구나. 나는 밤에 혼자 돌아다니다가 무슨 일을 당하면, 그건 정말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찍 자는 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일찍 숙소로 돌아오려고 노력했고, 밤에는 누군가를 대동했으며, 혹여 그런 상황이 생기더라도 굉장히 조심을 해왔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하는 나에 비해, 그런 건 괜찮다고,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그애가 나는 왠지 모르게 거슬리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사람 일은 장담할 수 없는 건데, 마치 세상의 모든 나쁜 일은 자기에게선 비껴나가는 것 같다는 식의 자신감에 차 있는 그애가 나는 불편했다.

마냥 몸을 사리기만 했다면 여행은 재미없었겠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기회가 왔을 땐(집에 초대받는다는 등의) 그 기회를 잡았고, 대신 마음을 다 놓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이다, 라는 생각이 들 때, 항상 저 말을 떠올린다.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그러면 이 상황은 금방 해결될 거라고, 괜찮다고. 걱정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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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07-08-12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인도에 다녀와서 사흘쯤 죽은 듯 잠만 잤더랬어요. 그건 아마 그곳의 진한 향취와 깊숙히 각인된 특별한 기운들을 떨구기 위한 의식 같은 거였어요. 벌써 그곳에 다녀온지 몇년이 되어가지만 새록새록이 그리워지는 곳이기도 해요. 건강하게 다녀오셔서 다행입니다. 전 바라나시에서 아팠더랬어요.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그래요.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이다 생각하고 눈을 부라리고 있으면, 뭐든 무섭지 않죠.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12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쓰자마자 댓글 달리는 경험은 처음이에용^^ 호호호. 저도 바라나시에선 몸이 그닥 좋지 않더라고요. 여자들은 바라나시 가면 음기가 강해서 많이들 아프다던데,,, 근데 인도의 기운은 어째, 해가 갈수록 더 깊게 스며드는 것 같아요. 가 있을 때보다 갔다 와서 더 영향이 많았던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8-12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인도.
저는 상상도 못해본 곳.
정말 부럽습니다 두분. 너무 멋지세요 :)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13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도 멋지신데;;;^^
 

 

원래 귀신을 무서워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의 존재는 믿으며,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힘든 영혼의 세계란 것은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귀신을 무서워하게 된 건 <전설의 고향> 탓이 크다. 어린 시절 엄마의 등 뒤에 숨어서 보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들은 대체로 원한을 풀기 위해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는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이 당하기도 한다. 그래, 이 부분. 나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나타나는 귀신은 인정할 수 있지만, 죄 없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귀신은 인정할 수 없었다. 죄도 없는 내가, 그 사람이, 그들이, 귀신에게 쫓겨다니는 모습에서 아마도 나는, 귀신이란 존재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즉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마냥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니 특별한 죄를 지지 않았어도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래도 매년 여름이면 연례행사처럼 공포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여름에 한 번쯤은 공포영화를 봐줘야 한다는 나의 말에 친구들은 웃는다. 영화는 반이나 볼까 말까 이고, 나의 몸은 어느새 의자 속으로 파고든다. 친구는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네가 없어서 놀랐다며 킬킬거렸다.

 

올해도 극장을 찾았다. <검은 집>은 심리 스릴러라고 생각했지, 공포물이라고 생각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잔인했고 여운은 길게 남았다. 웬만한 일에는 일 분이면 잠드는 내가, 그날은 몇 시간을 뒤척였고 겨우 선잠에 들 수 있었다. 어렴풋하게 잠이 깰 때마다 칼을 들고 노려보는 유선이 나타났다.-_- 어릴 때는 겁이 많아서 무서운 얘기를 들으면 불을 켜고 자거나 했지만 스무 살이 넘은 이후에 그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이유가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들은 아무 해가 없는 사람을, 자기의 이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죽인다.라는 것. 하지만 그들이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 관념 속에서 영혼에게서 무언가 나쁜 일을 당하는 것은, 자연재해나 뜻밖의 사고처럼 인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래, 영혼에다 대고 뭘 어쩌겠어? 라고. 하지만 그것이 사람일 때는, 그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사람일지라도, 사람이라는 전제하에서는 왠지 수긍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집>의 황정민이 그들을 사람이라 믿고 싶어 했던 것처럼.

그런데 또 공포영화를 봤다. <기담>이라는 영화. 올해는 유독 더 무서워하면서도 유독 더 보려고 기를 쓴다. 조금이나마 극복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공포는 적응이란 게 잘 안 되는 놈인가 보다. 볼수록 무서워지고 작은 소리 하나에도 예민해진다.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잘 보는 친구에게 너는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흘린다고 한다. 어어어헉!!! 높은 경지다. 나도 그러고 싶다.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공포를 즐기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왜 그들은 온 세포가 곤두서는 그 경험에서 찌릿함을 느끼고 왜 나 같은 사람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으로 느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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