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녀는 부유한 중산층의 자녀라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기는 불쌍한 아이였다고 했다.
먼 곳에 있는 아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주로 밖에 있던 엄마,
그리고 혼자 빈 집을 지키는 어린 꼬맹이가 자기였다고.
관심받고 사랑받기 위해, 착한 아이로 살았던 날들이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자신이 불쌍하다고 했다.
나의 나이 든 친구는 돌아가신 엄마를 회상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1년을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다가,
충격이 뒤늦게 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울먹이는 그녀에게 아들은, 엄마는 할머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잖아.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보이는 것만 믿는 법.
무뚝뚝한 모녀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그 까실까실한 애정을,
그 아이도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
나는 괜시리 코가 시큰거렸다.
나는 엄마도 살아있고, 어린 시절 빈 집을 지켜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근데도 그녀와 그녀에게서 불쌍하고, 어둡고, 외로운 나를 보았다.
모두가 애닯아.
산다는 건, 상처없이는 안 되는 건가 보다.
예쁜 눈동자를 가진 사람도, 꼿꼿한 허리를 하고 자신감 있게 걷는 사람도,
지식이 넘칠 듯 풍부한 사람도, 언제나 스마일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모두 껍데기를 벗겨보면,
그 안에는 아이 혼자 달랑 앉아 울고 있어.
그러니 손을 잡아주어야지.
어깨를 감싸안아줘야지.
말은 집어치우고, 다만 온기로 안아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