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중년 남성이 화를 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막 주위를 돌며 발을 굴러댔다.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주위를 돌다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하시라고요.˝
뭘 하라는 것인지 듣지 못했다. 그는 붉어진 큰 얼굴을 들이밀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계속 하시라고요. 어디 마음대로 계속 해보시라구요.˝
그는 목소리가 컸다. 그 큰 목소리로 바로 눈 앞에서 소리를 질러대니 귀가 아팠다.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눈빛.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가 누구인지, 왜 나에게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지 알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그가 소리 지르는 것을 참고 듣고 있어야 했다. 그는 다시 발을 구르고 주위를 돌았다. 또 소리를 질러댔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참 그를 바라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다가와 내 겉옷과 가방을 챙겨줬다. 그는 자상한 태도로 겉옷을 펼쳐 내 어깨에 둘러주었고, 내 눈을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가자.˝
체격이 크다고 느낀 여성이었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자 내 어깨를 살짝 잡아당기며 몸을 돌려주었다.
˝가자. OO으로 가는 거지?˝
목적지를 듣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남성을 신경쓰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등장한 이후 이 화내는 남성의 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그는 여전히 있는 힘껏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중인데 갑자기 그의 목소리만 누군가 일부러 볼륨을 줄여놓은 것처럼 작게 들렸다. 대신 속삭이듯 말하는 이 여성의 목소리는 또렸이 잘 들렸다.
˝가면서 OO 먹고 갈까? 배 고프지 않아?˝
이번에도 목적어를 듣지 못했다. 여전히 화를 내는 남성을 바라보는 중인데, 이 키가 큰 여성이 내 손을 잡더니 잡아끌었다.

어떤 큰 건물 복도를 끌려가듯 걸었다.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웅성웅성 떠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내 손을 잡은 여성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었다. 앞서서 성큼 성큼 걷는데 따라잡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손을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성이 저만치 앞으로 가 있었다. 나는 같이 가자고 말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를 쫓아가려 했는데 그는 더 멀어졌다. 그 여성이 멀어지자 넓은 복도에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뭔가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걸까? 나를 쳐다보고 그들끼리 무언가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고 싶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이 서있던 두 사람이 곁눈질로 나를 힐끗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들 중 한 여성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아주 짧은 순간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이고는 대화를 나누던 다른 여성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 여성도 일부러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보고 눈꼬리와 입꼬리만 웃는 표정을 보여줬다. 이윽고 두 사람은 나를 보고 뭐라고 말을 하고는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입 모양으로는 아마 ˝밥 먹었어요? 우린 먼저 먹고 왔어. 맛있게 먹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들이 나를 스쳐지나가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도 차례로 나에게 눈과 입으로만 웃는 표정을 짓고 뭐라고 짧게 말을 걸면서 스쳐지나갔다.

여러 사람들이 빠르게 다가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을 건네고 휙 스치듯 지나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키가 큰 남성도 있었고 키가 작은 여성도 있었다. 그러다 붉은 색 코트를 입은 한 사람이 다가왔는데,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고, 일부러 눈을 맞추며 억지 웃음을 짓지도 않았다. 어쩐지 그를 붙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막 나를 스쳐지나가는 찰나였는데 옷깃을 잡히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놀란듯 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어! 여기 있었어?˝
밝고 목소리였다. 처음에 누군가에게 붙잡혀 놀랐던 얼굴이 짧은 순간 반가운 표정으로 변했다. 나를 올려다보는 그 표정이 낯익다고 느꼈다.
˝어디가? 나는 이제 돌아가려고.˝
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묻고 싶었는데,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눈짓과 손짓을 해서라도 내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그는 잠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 나 얼른 가봐야 해. 담에 봐.˝
그를 놓치면 안 될것 같아서 얼른 다시 그의 붉은 코트 소매를 붙들고 함께 가자고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응? 같이 갈거야? 그럼 우리 좀 서두를까? 나 지금 늦었거든.˝
그는 키가 작았음에도 걸음을 빨랐다. 소매를 붙든 내가 따라잡기 어려웠다. 열심히 따라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붙들고 있던 소매를 놓쳤다. 빨간 코트의 여성도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졌다.

어딘지 모를 크고 넓은 복도에 남겨져 멍하니 서있는데, 누군가 등 뒤에서 말을 걸면서 내 등을 툭 건드렸다.
˝여기 있었네.˝
돌아보니 다소 딱딱한 표정을 지은 여성이 서 있었다. 긴 머리에 정장을 입었다. 그는 다시 손가락으로 내 등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계속 여기 있을거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텐데.˝
나는 그에게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나는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말도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응? 왜? 왜 말이 없어?˝
아까 키가 크고 체격이 큰 여성이 갑자기 사라지던 무렵부터 이게 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왜 말을 할 수 없는지, 왜 특정한 사람들의 말만 들리고 다른 말들은 안 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말을 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라고 말을 하며 답답함을 전하고 싶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그러는지 말을 해야 알지.˝
그는 처음엔 다소 차가워보이는 얼굴로 표정이 바뀌지 않다가 갑자기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얼굴을 크게 찡그리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나도 몰라. 그러고 있으면 일이 해결이 돼? 나보고 어떡하라고?˝
그는 짜증이 묻어나는 표정과 말투로 주먹을 쥐고 내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왜 그가 화가 났는지 몰랐지만, 나야말로 지금 화가 나고 짜증나는 상황이지만, 일단 그의 화를 풀어야 뭐든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사과했다.
˝미안해.˝
이번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내 사과를 듣고도 한동안 물끄러미 내 얼굴을 살폈다. 다시 처음의 그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겨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 걸까?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근데 왜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왔지? 머리속이 복잡했다.

긴 머리의 여성은 다소 차가운 얼굴로 한참동안 가만히 내 얼굴을 살피다가 문득 포기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모르겠다. 일단 나랑 같이 돌아갈까?˝
함께 돌아가자는 제안에 이르러서야 그의 표정이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툭 치고는 앞서 걸었다.
˝얼른 가자. 이미 늦었어.˝

사람들로 가득찬 넓고 큰 하얀 복도에서 그가 걸어가자 길이 열리듯 사람들이 비켜섰다. 그는 앞서 걸었고 나는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빠르게 놀렸다. 한참을 걸어 마침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문득 배경이 바뀌며 그 많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 앞서 걷던 긴 머리의 여성이 고개만 돌려 나를 보며 뭔가 말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갈증

잠에서 깼을 때 바로 현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생생한 꿈을 꾸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오기까지 약간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느낀다. 마치 인터넷에서 버퍼링에 시간이 걸리듯. 나는 이제 늙고 낡은 인간이라 성능이 떨어지는 피씨에 느려터진 인터넷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깨고 나서 생각해보니 마지막 꿈 바로 앞에 다른 꿈의 내용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막연한 이미지들과 조금은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리 속에 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 앞의 꿈에서는 어려진 아이들이 나왔다. 큰 아이는 대여섯살 시절의 모습이었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꿈 속에서는 나에게 아이들이 더 있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그 꿈 속의 내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누군가 엄청 그리워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고, 누군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잊고 있던 얼굴이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전생이라 믿는 것, 윤회라고 믿는 것이 이렇게 반복되는 꿈 속의 인생들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꿈에서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살아보고, 어떤 꿈에서는 외국어에 유창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는 인물이 되어보고, 어떤 꿈에서는 어떤 무리들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뭐가 뭔지 알 수없는 모호한 꿈들도 많고 상대적으로 명확한 상황인 경우도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꾸는 그 꿈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벌써 몇 겁의 인생을 살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 수많은 꿈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역할이 뒤섞인다.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는 이가 친한 친구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윤회를 거듭하며 인연을 맺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꿈에서 만난 여성들은 모두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잠에서 깬 이후 고민을 해봐도 딱 현실의 어느 특정한 사람들과 이어지는 특징을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그건 그 당시 꿈 속에서도 내가 아는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이미지나 상징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현실에서는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데, 꿈에서만이라도 뭐 하나라도 바라던 것을 이룬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꿈은 그저 꿈일 뿐이다. 아무리 실감나고 생생해도 그건 현실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다시 매트릭스 속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미 빨간약을 선택한 순간 다시 될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목이 마르다. 아무리 물을 많이 들이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갈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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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09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짧은 소설 읽는 기분으로 이 글을 읽었네요. 꿈이지만 잘 다듬어서 소설로 써도 될거같은데요.
내년쯤이면 등단하시는거 아닙니까? ^^

감은빛 2026-04-10 00:42   좋아요 1 | URL
아유. 바람돌이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치 등단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고맙습니다!
약 26년 전에 신춘문예 준비했다가 포기한 후로 등단을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있습니다.
언젠가 죽기 전에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낼 기회를 만들고 싶기는 합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잉크냄새 2026-04-09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 영하의 <단 한 번의 삶>에도 작가의 꿈 노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작가가 쓴 꿈 노트의 내용은 짧은 편인데도 ‘꿈을 어떻게 기억하고 글로 남기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끔 쓰시는 감은빛님의 꿈을 보자면 꿈을 기억하는 뇌 세포도 어딘가 다르게 작동하지 않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감은빛 2026-04-10 00:49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꿈을 기억하는 뇌 세포가 다르다는 생각은 신선한 접근이네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저도 이 글에 쓴 내용을 모두 그대로 기억한 것은 아닙니다.

두번째 부분인 ‘갈증‘에 제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막연한 이미지들과 조금은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리 속에 떠다니는 느낌˝ 이라고 썼는데, 저는 그런 느낌으로 꿈을 기억합니다.

꿈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제가 글에 상세하게 쓴 꿈의 경우는 그 내용 대부분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미지들에서 가져온 것이고, 조금 기억이 희미한 경우에는 최대한 퍼즐을 짜맞추되 결국 기억이 안 나는 부분은 비우거나 아니면 그럴듯한 추정으로 메우는 거죠.

마지막으로 기억이 날듯 말듯 그러나 결국 나지 않는 부분들은 대체로는 포기하고 그냥 비우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부분까지 추정으로 채우면 그건 되살리는 영역이 아니라 창작의 영역으로 가니까요.

chika 2026-04-10 17:07   좋아요 0 | URL
상담심리 공부한 친구가 꿈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세세한 내용이나 중간에 깼는데도 꿈이 이어진다거나 색깔꿈도 단일색 혹은 총천연색... 막 그런 꿈도 기억하게 되고 그렇기는 하더군요.
저는 최근에 비바람칠 때 차단기가 내려갔는데 전기공사를 크게 해야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빗물자국이 스며든 벽과 차단기옆으로 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꿈을 꿨습니다... ㅠㅠ

감은빛 2026-04-13 18:59   좋아요 0 | URL
치캬님, 상담심리 공부한 친구분이 계시군요.
꿈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면 점점 더 잘 기억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은 자각몽을 더 잘 꾸게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각몽을 자주 꾸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꿈을 꾸다가 깬 후에 다시 잠들었는데, 꿈이 이어지는 경험도 종종 있었습니다.
확실히 어떤 스트레스 요인이 생기면 그 꿈을 꾸는 확률이 놓더라구요.
에휴! 잘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성중립 화장실


우리 동네 노동인권센터 독서모임에서는 모인 사람들끼리 윤독을 통해 책을 읽는다. 지금까지 여러 책을 읽었고, 최근에는 우리 동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주치의와 상무이사가 함께 쓴 책인 [나이 들고 싶은 동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올해 대의원 총회에서 참석한 대의원들에게 이 책을 나눠줬기 때문에 나도 이 책을 받아서 몇몇 꼭지를 읽었었다. 이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은 다양한 동네 모임이 열리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고, 나는 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이 공간에서 책상 한 쪽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을 하거나 글을 쓰곤 한다. 지난 모임(아마도 약 3주 전쯤) 날에도 내가 저녁때 일을 하는 동안 이 책 모임이 열렸고, 참가자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이 책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었다. 익숙한 사람들의 별명들(살림의료사협에서는 별명을 활동명으로 쓰고 있음)이 들렸고, 내가 대략 알고 있던 이야기들이 들리기도 했다. 물론 내가 잘 몰랐던 이야기들도 있었고,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오늘도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이 사무실에 와서 내일 오전에 열리는 회의를 위해 회의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또 책 모임이 열렸다. 사실 어느 정도의 소음이 있어도 집중해서 일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내가 잘 아는 인물에 대한 내용이나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자꾸 들리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자꾸만 참가자들이 낭독하는 책 내용으로 정신이 팔렸다. 태양광 발전소 수익분석 자료를 만들어야 해서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인데, 자꾸 정신이 저쪽으로 팔려가 버려서 자료를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 모임이 아예 끝난 후에 집중해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꿔먹고, 알라딘에 들어왔다. 이왕 들어온 김에 이 이야기나 써야겠다.


아까 들었던 내용은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어 이용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니 몇 해 전에 살림의원에 들렀을 때 화장실을 갔더니, '여성 전용 화장실' 하나와 '성중립 화장실' 하나, 이렇게 두 개의 화장실이 있었다. 순간 좀 당황했다. 남성은 어디를 써야 하나? 여성 전용은 당연히 쓸 수 없을 것이고, 그럼 성중립 화장실을 쓰란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살림의료사협은 창립하기 전부터 여성주의 의료생협을 표방한 곳이었고, 의원 개원 이후 여러 성소수자들이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오는 곳이라고 들었었다. 성소수자들 입장에서는 여성과 남성 이렇게 둘로만 나눠진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여기까지 글을 쓴 후에 참가자들이 모임을 마쳤다. 그 중 친한 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느라 글쓰기를 중단했고, 이후엔 급한 일이었던 자료 만들기에 집중했었다. 그리고 날짜가 지났다. 이 글을 이어쓰는 지금은 다음날 아침이고, 새벽까지 자료를 만들다가 잠깐 쉰 후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새벽에 집중해서 일을 하면서 긴 시간 고민해도 풀리지 않았던 답을 찾아서 기분이 좋아졌고, 오히려 컨디션은 어제 밤보다 더 좋은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오후엔 운전을 해야 해서 이 글을 다 쓴 후와 이따 오전 회의를 마친 후에는 조금씩 더 쉴 예정이다.


암튼 어제 쓰던 글을 조금 더 이어 쓰자면, 저 성중립 화장실이란 개념이 사실 그리 어렵지는 않을텐데,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불편한 개념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달에 열린 어느 총회에서 인권재단이 운영하는 회의실을 대관해서 썼었는데, 거기 화장실도 아예 남녀 라는 개념이 없이 성중립 화장실 혹은 모두의 화장실 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한 어르신이 나에게 어느 화장실을 가야할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냥 어디든 다 들어가셔도 된다고 성별 구분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설명드렸다. 여전히 그 어르신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었지만, 발길을 돌려 가까운 화장실을 향해 가셨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그 어르신은 여성 화장실이란 표시가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저 책에는 살림의료사협이 운영하는 살림의원과 살림치과가 초기부터 두어곳의 건물을 옮겨 다니며, 건물주의 눈치를 보고, 구조상 리모델링이 가능한 방식을 찾아가며 어떻게든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과정과 그 이후 직원들(의료진과 활동가)과 방문자들(환자와 보호자) 모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 어제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저 책 모임이 조금 더 오래 이어질거라고 생각해, 이 성중립 화장실 이야기에 이어 최근 매일 제법 긴 거리를 운전하며 느꼈던 몇 가지 이야기들, 특히 전쟁으로 인해 갑자기 고유가 시대가 되어버린 이 상황에서 업무상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 등을 두드려 보고 싶었지만, 일단 이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자. 다음에 더 많은 경험을 담아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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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


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면 그건 만우절이다.일부러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는 날이라고? 왜? 어차피 세상을 살다보면 누군가를 속여야 하거나 원치 않아도 어쩔수 없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있는데, 왜 굳이 특정한 날을 정해서 사람들을 속이는거지? 아!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니까 특정한 날을 정해서 이날은 절대 믿지 말자 하고 정한 거라면 그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오늘 쓴 글은 딱 하나였는데, 작년 오늘 쓴 글이었고, 만우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글에 내가 살면서 단 한번도 만우절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썼었다. 그리고 댓글에 알라딘 이웃인 카스피 님께서 만우절에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 표현을 믿지 못하겠다는 뉘앙스로 글은 남겨 놓으신 것을 봤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다. 만우절에 일부러 거짓말이나 농담을 한 적은 없다고. 그 말이 평생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거나 농담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도 거짓말이나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건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나는 농담이나 거짓말을 일부러 특정한 날에 분위기에 편승해서 유행처럼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늘 바빠서 내 생일도 잊고 지나가는 사람인데, 만우절이란 날짜 따위 일부러 기억해서 시시껄렁한 농담 따위 지껄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다만 어제 쓴 글에도 밝혔듯이 만우절에 마치 거짓말처럼 부고 소식이 왔던 지인이 있었다. 내가 약 20년 전에 특정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무렵에 그는 아주 유명한 진보정당 정치인의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어쩌다 어떤 특정한 사업 때문에 만났었고, 서로 나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기획했던 어떤 행사에 그가 그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조금 친해졌다. 그날 나는 당시에 큰 아이를 품고 있었던 임신 말기의 아내와 함께 했었다. 그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와 내 아내 이렇게 네 사람이 짧은 시간 친해져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내 기억은 개인적으로 미화되었다고, 그 시간은 그저 형식적인 혹은 예의상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건 이젠 대답할 수 없는 그의 몫이니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암튼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이후에 그와 다양한 장소와 시점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저 그런 관계였다. 결코 친구라 부를 수 없는 동지라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조금은 어색한 그런 사이. 그와 좀 더 친해진 계기가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시기였다. 과거에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지만, 친해지지 못했던 우리는 녹색당에서도 자주 만났지만 그리 친해지지는 못했다. 다만 내 생각에, 아마도 그도 마음으로는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조금 더 얼굴이 두터웠던 내가 그에게 몇 차례 친한 척을 했었다. 그는 싫지 않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답을 하곤 했었다.


비슷한 나이였고,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아서 친한 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어느 날 갑자기 아니 어느 해 만우절에 부고 소식이 날아왔다. 설마 했다. 노동당 박은지씨 이후로 본인상 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했다. 에이. 만우절이라고 이런 재미없는 장난을 치나! 이거 누구 짓이야! 라고 화를 내고 싶었는데, 농담도 장난도 아니었다. 이럴 수가! 절말 그가 죽었다니! 다시는 볼 수 없다니!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느꼈던 다시는 그 분을 볼 수 없다는 그 느낌이, 그 상실감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 상실감을 깨달으며 문득 눈물이 흐른다. 그냥 쓱 쳐다보면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냥 늘 곁에서 씩 웃어주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자주 노동당 박은지 부대표와 이 활동가를 언급하는데, 그들과 특별한 어떤 관계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냈던 인연이 있었을 뿐이고, 조금 아주 조금 친분이 있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이들의 죽음은 내게 엄청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종종 언급하는 것이다. 그 충격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래서 내게 만우절은 슬픈 날이다. 여성의 날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여성의 날이라고 여성들끼리 꽃을 주고 받는 것이 한 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나에게 그날은 박은지 부대표의 죽음을 들었던 날일 뿐이다. 남들이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 받아도, 그 날은 나에게 한때 존경했던 정말 훌륭한 삶을 살았던 어느 활동가의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날일 뿐이다.


아직 유서를 쓴 적은 없지만, 언젠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을 꼭 언급할 것이다.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었던 이유는 이들 두 사람의 죽음의 영향이 크다고. 박은지 부 대표가 아직 어린 아들을 두고 죽음을 선택했을 때, 우리 아이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 차이가 많지는 않았다. 이젠 성인이 된, 그래서 아니 그 훨씬 이전 청소년 시기에도 친구처럼 느껴졌던 든든한 큰 아이는 그 당시에 이미 사춘기 소녀였다. 그의 아들이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사춘기 소년이었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돌연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름으로 우리 곁을 떠나 버린 또 다른 친구처럼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었다. 아직은. 나는 두 명의 아이가 이 사회에서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주고 지켜봐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울


사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한없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게 만든다. 내가 나라는 자아를 깨달았던 청소년 기의 어느 날, 햇살이 너무나도 따뜻했던 어떤 오후 이후로 평생 나를 괴롭게 만드는 그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데, 그럼 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당장 죽는 것과 나중에 몇 십년 후에 죽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위인전 같은 책에 단 한 줄 적힐 확률도 없을텐데, 그럼 내 인생은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왜 살아야 하는 거지?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엊그제 꽤 규모가 큰 행사에서 발제를 맡아 무대에 올라 정책 제안을 했었다. 비록 빨간당과 파란당의 에비 후보들은 오지 않았지만, 소규모 정당들의 서울 시장 후보로 나선 이들도 왔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울 시장이라면 꼭 펼쳐야 할 에너지 정책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내가 긴 시간 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해주셨다. 한 5년 전에 세 시간짜리 강의를 했던 인연으로 만났던 특정 지역의 선배 활동가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갑자기 흰 머리가 많아지셨나고?" 질문을 하시며 친근감을 보여주셨다. 우리 동네 언니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여러 분이 오셨고 응원을 보내주셨다. 또 내가 환경운동과 에너지 운동을 20년 넘게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과거에 존경했던 선배도 나에게 친한 척을 해주셨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참여했던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행사 이후에 나는 극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어치피 세상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에너지 정책을 떠들어도 어느 정치인 하나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여전히 매년 여름을 더울 것이고, 해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을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


허무함, 허탈감, 상실감, 슬픔, 외로움 등 내가 이 삶을 더는 지속하지 말아야지 하고 당당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건 내 권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아이들. 이들 때문에 섣불리 어떤 선택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에이. 어쩔 수 없다. 일단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지. 다른 선택지는 없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오늘 밤 달이 엄청 밝더라. 이 말을 건넬 수 있는 한 사람이 간절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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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02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날 부고 소식을 들으면 모두 그것이 거짓말로 받아들일것 같습니다. 근데 진짜라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그것이 지인이라면 좀 충격이 있겠다싶습니다. 거짓말인줄 알고 답장도 안하고 그냥 넘어갔다면 말이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은빛 2026-04-10 00:51   좋아요 0 | URL
야무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유명한 홍콩 배우 장국영이 하필 만우절에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고 존경했던 활동가도 하필 만우절에 돌아가셨네요.
그래도 어쩌면 다행입니다.
해마다 만우절이면 그를 기억할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잉크냄새 2026-04-02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활동이 댐이 무너지는 걸 막은 소년의 손가락 같은 힘이고 희망이 아닐까요.
화이팅하시길....

감은빛 2026-04-10 00:5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저도 한 10년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 글을 쓴 시점에 좀 감정적으로 흔들려 버려서 특히 막판에 표현이 그렇게 나와버렸네요.
언제나 남겨주시는 말씀들을 읽으며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번에도 이렇게 큰 힘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희선 2026-04-03 0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어도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마음이 이상하겠습니다 그러다 슬퍼지겠네요 사람은 갑자기 죽기도 하는군요 오랫동안 아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어도 슬프겠습니다

사는 게 참...

감은빛 님이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살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6-04-10 00:58   좋아요 0 | URL
희선님. 그렇죠. 저도 딱 그런 생각입니다.
친하지 않아도, 아니, 심지어 아예 몰랐던 사람이라도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고 하면 그건 충격이라고 생각해요.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이 일어나고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던 당시에
저는 농활을 가 있어서 초기 상황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농활에서 돌아와 뒤늦게 큰 충격에 빠졌었죠.

그런데 참사가 벌어지고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이젠 더 생존자가 나올 확률이 없을 거라고 모두가 포기하는 시점에 생존자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 생존자가 제 또래라는 것을 알고 훨씬 더 감정을 이입하게 되더라구요.

사람은 그런 존재인것 같아요. 자신과 하나라도 비슷한 것이 있다면 거기에 집중하게 되는 방식으로 뇌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카스피 2026-04-03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작년 만우절 감은 빛님 글에 그런 댓글을 달았네요.아마도 성인이 되서 만우절날 거짓말은 안 할 수 있어도 어린시절 만우절날 농담삼아 서로 서로 속이고 놀리는 장난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래서 그랬나 봅니다^^

감은빛 2026-04-10 01:04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ㅎㅎㅎㅎ
온라인을 통한 소통의 한계가 그런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때로는 실제로 아는 사람이라도 정말 그 사람을 얼마나 잘 아는가?
라는 질문에는 또 자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그러네요.

제가 좀 쓸데없이 진지한 인간이라 일부러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물론 이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제 아이들에게 저는 장난을 잘 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건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부분인데, 그래도 제가 만우절이라고 일부러 아이들에게 농담이나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제가 쓸데없이 진지한 삶의 태도를 가진 것 때문이라 생각하는데, 특정한 날이라고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ㅎㅎㅎㅎ

쓰면 쓸수록 제 약점만 계속 노출하는 꼴이라 그만 쓰는 것이 좋겠네요.
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총각


아주 오랜만에 총각이란 단어를 들었다. 흰머리가 늘어나고, 흰수염이 늘어난 후로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다. 아마 그 할머니께서 눈이 안 좋아 내 얼굴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하신 말씀이겠지. 근데 총각이라 부르기 전에는 내 긴 머리칼을 보고 "여자여? 남자여?" 라고 말씀하셨다. 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머리가 길면 여성이라는 편견을 갖고 산다. 특히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더 그런 듯하다. 매장에 배송 물품을 가지러 가서, 여러 개의 상자를 겹쳐 올려놓고 스쿼트 자세로 짐을 번쩍 들어올렸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신 어르신이 하신 말씀이었다. 짐을 들고 일어나서 차에 물건을 실으러 가면서 내가 답했다.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때요? 짐 옮기는 일은 남녀 모두 잘 할 수있는 일인데요."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 "총각이 힘이 좋구만." 이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께 아이가 대학생이예요. 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갈 길이 급해서 그저 매장 담당자님께 인사를 드리고 차에 올랐다. 오늘부터 담당하는 매장 하나가 바뀌었다. 내가 맡은 세 개의 매장은 가장 배송이 적은 곳 두 곳과 배송물량이 보통인 매장 한 곳이었는데, 가장 적은 한 곳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대신 배송물량이 좀 많은 매장 하나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만약 세 매장이 모두 배송 건이 많은 날이 겹치면 정말 정신없이 바쁜 날이 될지도 몰랐다. 다행히 매장을 바꾼 첫 날이었던 오늘은 모든 매장에서 배송 건 자체가 적었다. 


운전


96년 1월에 운전면허를 땄었다. 실기 시험을 칠 때 S 코스 후진으로 나오다가 아무래도 선을 밟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차를 멈췄다. 어쩔줄을 몰라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밟기 전이었고, 다른 코스에 있던 응시자가 선을 밟아서 탈락 안내가 나왔는데, 나는 내가 밟았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결국 나는 시간 초과로 떨어졌다. 그 다음 시험에서 합격했다. 한번 떨어져보고 나니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면허는 땄지만, 대학 시절에는 차를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다. 큰 슈퍼마켓에서 일을 할 때는 새벽에 열리는 농산물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기도 했고, 아주 가끔 배송을 다니기도 했지만, 그 일을 계속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제법 오랫동안 운전을 안 하고 살다가 다시 운전을 본격적을 한 것이 결혼하고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였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부천에 살고 있었고, 우리 부부는 모두 서울로 출근을 했다. 아이는 장모님께 맡기는 날이 많았다. 장모님께서 봐주시기 어려운 날엔 아내가 사무실에 데리고 나갔고, 그것도 어려운 날엔 내가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기저귀와 분유병과 분유통 등이 든 큰 가방을 차에 싣고, 아기를 데리고 장모님 댁에 들러 아기를 맡기고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장모님 댁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를 데리고 운전을 했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다녔다. 원래는 그리 느긋하게 운전을 하는 편은 아닌데,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 다른 사람을 태우고 운전을 할 상황이면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조심히 운전을 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운전을 해온 습관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배송 일을 맡아 하면서 초반에 그렇게 좀 느긋하게 운전했더니, 도저히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배송 건수가 많은 날에 앞의 매장에서 조금 오래 걸렸더니, 뒤쪽 매장들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왜 안 오시냐고? 그날 깨달았다. 적어도 혼자 배송하는 때만이라도 부드럽게 운전하는 습관을 버려야하겠구나. 마침 그때쯤 배송 일을 오래 해온 선배 한 사람이 매장들을 함께 돌아주며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어떤 길로 다니는지 등을 알려주셨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예전에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셨던 어르신들 댁으로 농활을 함께 가면서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던 기억도 있어서, 이 분이 평소 운전을 좀 거칠게 하는 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운전대를 잡고 다니는 동안, 내가 매장들을 돌고 배송을 다녔던 시간들보다 확실히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그날 이후로 나도 평소 운전 습관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들을 없애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히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대신 예전에는 앞 차가 조금 천천히 다니더라도, 가끔 초보 운전이라고 써붙인 상태로 좀 어이없는 행태를 보여도 그냥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가 없다. 지금은 도로 위의 1분 1초가 아까워 나도 모르게 조바심을 내곤 한다. 확실히 도로 위에서 운전으로 먹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기다리던 책이 왔건만, 잠시 펼쳐본 후로 다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제 4월이 되었으니, 조금은 시간 여유가 생기겠지. 이젠 시간이 많지는 않더라도 짧게 짧게라도 책 읽은 여유가 생기겠지. 얼른 이 글을 마치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야 한다. 


노트북을 켜자마자 잠깐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트럼프가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 순간 놀랐으나, 곧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깨달았다. 이젠 정확히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만우절에 돌연사 했던 지인이 생각났다. 아, 안된다. 오늘은 슬픈 감정에 빠져들 여유가 없는 날. 오늘 일정 다 마치고 나중에 밤에 그 지인을 떠올리던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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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스트레스


3월의 마지막 주 주말이 되어서야 드디어 총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는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치고 힘든 한 주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총회를 앞두고 뭔가 아쉽고,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현실적인 한계들에 계속 부딪혔다. 결국 한계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머리로 그걸 인정하기까지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함께 총회를 준비했던 동지이자 친구는 며칠째 두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두통을 심하게 느낀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애들 엄마가 편두통으로 엄청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았기에, 이 두통이란 증상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경우에는 스트레스가 두 가지 통증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극심한 피로감이다. 평일에 밤 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가끔은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몸이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이 탓도 있을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최근에 피로를 이유로 운동을 안 하고 있어서 그게 원인일 수도 있을텐데, 지난 주에 정말 며칠동안 피로감이 너무 컸다. 평일에 좀 무리를 하더라도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면서 피곤을 풀어야 하는데, 계속 주말에도 일정이 생겨서 푹 쉬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자주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가끔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의 쪽글들을 읽기 위해 페이스북을 뒤진다. 그러다 어느 지인이 올린 '불광천 벚꽃 마라톤' 소식을 보았다. 이번이 세번째 대회인데, 그는 첫회부터 올해까지 세 번 모두 참여했었다고 적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두 번째 대회에 참여했었다. 대회장에서 이 글을 올린 그와도 마주쳤었다. 그때 나는 혁신파크 매각 반대 몸자보를 메고 달릴 예정이었고, 그도 이 몸자보를 함께 메고 달리겠다고 해서 몸자보를 전달하고 돌려받기 위해 만났었다. 작년 대회 때는 정말 최악의 몸 상태로 참여했었다. 전날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새벽까지 몇몇 사람들과 토론이 이어져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달리기에 참여했었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었다. 달리기 중에 김미경 구청장과 황영조 씨가 여러 명의 경호원들에게 둘러 쌓여 걷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들 앞에서 몸자보가 보이도록 항의 액션을 하다가 경호원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었다. 결국 원하는 만큼의 항의 액션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괜히 오버하다가 쫓겨나기 보다는 완주해서 결승선에 모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혁신파크 매각 반대"를 외치는 것이 낫다고 결론을 내리고 구청장 일행을 제치고 떠났다. 그리고 생각했던대로 결승선에서 아주 큰 소리로 세 번 외쳤다. 당시 결승선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힘을 짜내는 참가자들을 독려하던 사회자는 내가 외치는 소리에 조금 당황에서 처음엔 제대로 반응을 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내가 세 번을 외치고 나서야 비아냥 대는 말투로 "네, 잘 알겠어요." 라고 말했었다. 암튼 올해 대회는 전혀 소식을 접하지 못했었다. 보통은 작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올해 대회 소식을 알리는데, 다른 대회들은 대부분 그러던데, 이 대회는 접수 소식 자체를 모르고 지나쳤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아직 대회 신청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정보를 찾는 것조차 안 했었다. 작년에는 따뜻한 봄에 대회를 뛰어보고 싶어서 겨울에 자주 달리기 대회 정보를 찾아다녔었다. 그때는 개인 기록 갱신에 좀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봄 양천마라톤에서 개인 기록을 세웠었다. 생각해보니 작년 늦가을부터 달리기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 식어버린 것도 같다. 그 전까지는 26년에는 하프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는 것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고, 가끔 20킬로미터 정도 거리를 달리기도 했었는데, 늦가을부터는 짧은 거리만 가끔 달릴 뿐, 10킬로 정도의 마음만 먹으면 그냥 달릴 수있는 거리조차 시도를 안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났는데, 그때 즈음에 어느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었고, 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참가비 입금 요청을 놓쳐버려서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었다. 뒤늦게 참가비 입금 마감일이 지난 후에야 그 연락이 왔었다는 것을 보고 주최 측에 연락해봤는데, 이미 시간이 지나버려서 방법이 없다고 답이 돌아왔었다. 그래, 이거 때문에 내 마음에서 달리기가 잠시 멀어졌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4월이니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대회 소식도 좀 알아봐야지.


노화를 막을 방법은 없다. 스트레스를 막을 방법도 없다. 점점 늙어가는 몸으로, 점점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운동을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달리기도 다시 시작하고, 운동도 다시 해야지. 매일 피곤하다는 핑계는 이제 그만 둬야지.


전쟁


분단된 나라에 살면서, 오래 전에 군대에 다녀온 사람으로서 내가 지금 이렇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구 전체를 두고 본다면 아마 인류 역사상 전쟁이 아예 없었던 시기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국지전이나 내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역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각으로 생각하면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이 나라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다행이라 여길 수있을 것이다. 다만 군인으로 복무했던 기간은 아쉽다. 2년 2개월이라는 기간이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 전체로 보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일 수 있는데, 내 인생의 일부를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서 살았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이었고, 스스로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닌 그냥 하나의 물건으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살았던 시간이었다. 


최근 전쟁 때문에 종량제 봉투가 품절 상태라는 이야기가 많이 돌고 있다. 실제로 동네 편의점에 출입문에 붙은 안내문을 읽기도 했었고, 어제 총회를 준비하면서 누군가에게 종량제 봉투 하나를 사오라는 부탁을 드렸었는데, 그가 근처 가게 세 곳을 돌아봤지만, 모두 물량이 없다고 했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보고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북한의 핵 도발과 분단 현실에서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르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미국에서는 뭔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마트를 털어서 생필품을 사재기 한다고, 그 중에서도 특히 화장지를 사재기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었었다. 중동의 전쟁으로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고 그로 인해 한국에서 종량제 봉투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이를 사재기 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 참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지금 내 삶의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에 마음을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계속 마음에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죄 없는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한 생명이 폭력으로 목숨을 잃는구나. 결국 욕심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 인간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잘만 살아가는데, 힘 없는 약자들만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정치와 에너지


지방선거 때문에 분주한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린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정당은 우리나라 선거법과 정당법 상 아직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창당하자마자 헌법 소원을 냈었는데,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 이상인 5명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정족수인 6명 미만이라 결국 기각 판정을 받았었다. 현실적으로 법외 정당이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리나라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지역정당 중 거의 유일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우리 당도 이젠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아이디어는 있지만, 실행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


작년 4월 스페인 대정전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보고서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을 읽었다. 그간 대부분이 재생에너지를 원인으로 지적해왔는데, 공식 보고서에서는 단순하게 하나의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가 원인이 아니라고 밝히며, 여러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언급했다. 복합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전력망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고,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전력망이 문제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소식을 인용해 전하는 우리나라 전문가는 우리나라도 같은 문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전력망 자체도 분산형으로 유연화되어야 하는데, 전력망은 여전히 낡고 변하지 않는데, 에너지원만 변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2011년에 블랙아웃을 겪고 정부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한 일은 아주 단순히 석탄화력발전소를 늘리는 일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었고, 그래서 세계적으로 비난도 많이 받았다. 왜 발전량을 늘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요 관리와 망의 유연화 자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책은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결정하는 법. 결국은 업자들과 거기에 붙어서 기생하는 전문가 라는 인간들의 배를 불리는 방식으로 흘러온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멍청한 인간이 물러나고 이재명 대통령이 집권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정책은 문제 투성이다. 아니, 핵발전소를 다시 늘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핵은 결코 친환경 에너지원도 아니고 안전한 에너지도 아니며 경제성 있는 에너지도 아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떠들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김성환 장관도 구청장과 국회의원 시절에는 저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떠들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장관이 되더니 멍청해진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왜 정부가 핵을 다시 외치기 시작하는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에너지 정책을 결정해온 핵 카르텔이 여전히 너무나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본인의 공약을 뒤집으면서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짓겠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긴 시간 인구에 회자될 코메디를 펼쳤다. 탈핵은 선언했지만, 핵발전소는 계속 짓겠다는 공언이었다. 이게 사람들이 웃으라고 일부러 한 말이 아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결정한 에너지 정책이었다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문재인도 그렇고 이재명도 결국은 핵 카르텔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굴복한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히 표 때문이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은 본인들의 정체성에 딱 맞는 너무 당연한 행태이고, 저쪽 빨간당 지지세력에게서 조금이라도 표를 빼앗아 오기 위해 핵 카르텔과 손을 맞잡은 것이리라. 아니 굴복한 것이리라. 그래서 전혀 검증되지 않은 SMR 같은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들어 댄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여의도 국회 앞에 SMR 단지를 만들어라. SMR 이 소형이라고 마치 유연화 자원인 것처럼, 마치 경제성이 좋은 것처럼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는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경제성이 좋으려면 대량 생산을 해야 한다. 그리고 대량생산 하려면 한 두개만 건설해서 될 것이 아니고 단지 형태로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지어야 한다. 이래놓고 유연화 자원이라고?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이건 핵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핵발전소다. 3월 11일에 후쿠시마 핵사고 15주년을 맞았지만,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전혀 손도 대지 못하고 사고 현장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모르는 척 하겠다는 건가? SMR 을 단지 형태로 운영하면 결국 고리(신고리 포함), 월성(신월성 포함), 울진(공식명칭은 한울, 신한울), 영광(공식명칭은 한빛)과 같이 대단지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기존 핵발전소와 SMR 은 과연 뭐가 다를까? 차라리 기존 핵발전소는 나름 건설과 운영방식이 검증된 것이라고 본다면,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것을 떠들어 대는 모습은 참 어이없다. 결국 국민들을 바보로 생각한다고 여길 수밖에. 


지난 주 목요일이 마감이었던 발제문을 총회를 핑계로 미뤄두었다가 이젠 더 미룰 수 없어서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런데 정작 발제문은 쓰지 않고 정보만 찾아보다가 이 글을 쓴다. 얼른 발제문을 쓰고 집에 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을 할 수 있을텐데. 딴 짓 그만하고 이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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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3-30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전쟁이 끝난 후 세계 질서가 어떤 식으로 재편될지 궁금하네요. 똥멍청이 하나로 미국 패권주의는 서서히 막을 내릴 것 같고, 다음 패권주자들이 어떤 식으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지.... 인간속의 전쟁 유전자가 다시 발동이 걸린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감은빛 2026-04-10 01:07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제가 요즘 주 5일 차를 몰고 배송 일을 하며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전쟁, 에너지, 석유, 패권, 권력, 독재, 민주주의, 민족주의 등등
어차피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으니
그저 머리 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의 나래를 펼쳐나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2026-03-31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0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