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과학으로 읽는 지구 설명서
김추령 지음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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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라는 행성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룩이 ‘가이아 이론’ 이란 이름으로 소개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오고 있다. 과학적으로 이 이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지구의 어느 한 쪽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그것이 다른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어떤 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을 생각해본다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자세히 살펴보고 깊게 생각해보면 이 지구상의 모든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머리말에서 글쓴이는 ‘골드버그 장치’ 이야기를 꺼낸다. 루브 골드버그라는 미국 만화가의 이름과 작품에서 따온 이 골드버그 장치는 작은 하나의 행동이 연쇄작용으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어 여러 현상을 거쳐서 결국 전혀 관계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인터넷으로 골드버그 장치를 검색해보니 재미있는 광고영상을 비롯한 동영상들이 제법 나오는데 하나같이 흥미롭다!) 나는 자연의 이러한 연쇄작용을 떠올리면서 ‘도미노’를 떠올렸다. 골드버그 장치에도 도미노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불규칙하고 어디서 어떻게 연결될지 알기 어려운 골드버그 장치보다는, 비교적 규칙적이고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도미노의 연쇄작용이 좀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듯하다.

 

이 책을 쓴 김추령 선생님은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면 마치 소설가나 동화작가로 착각할 만큼 사실적으로 현장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다. 각 장의 흐름과 구성은 대개 비슷하다. 앞부분은 동화나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독자를 빨려들게 만드는 이야기로 시작하고, 이야기를 맺으면서는 왜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각 장마다 이야기와 과학적 설명의 2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이거나 패러디를 한 경우인데, 입 아프게 재미없는 설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실제로 일어났던 비극이나 현실을 비꼬아 놓은 패러디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지금의 위기을 알려주고 있다.

 

1장은 위펑서 부부의 실화로 시작하여 황사와 사막화현상 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고, 2장은 카트리나로 인해 에반 가족이 겪은 실화로 시작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들(슈퍼태풍, 쓰나미)등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3장은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하나님 이야기를 빗댄 광합성 이야기로 시작하여 탄소순환과 바다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그래서 온실가스와 기후변화 문제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4장은 투발루에 사는 어린이 리또의 일기로 시작하여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대한 설명으로 끝난다. 5장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으로 시작하여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 차가운 바닷물이 심해로 유입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6장은 기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로 시작해서 기후 변화로 인해 생긴 가뭄과 기근의 악순환, 그리고 전쟁과 기아, 말라리아 등을 이야기한다. 7장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패러디한 ‘뒤죽박죽 동화’(여러 구전설화를 섞어놓은 것)로 시작하여 멸종위기종과 생물 종 다양성의 문제를 설명하고 있다. 8장은 정휘창의 동화 [원숭이 꽃신]을 각색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피크오일과 핵 폭발사고와 원자력에 대한 문제점들을 설명하고 있다. 9장은 조선 후기 우화소설 [두껍전]을 각색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국제기후변화협약과 실생활에서 적용 가능한 적정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10장은 ‘기후게이트’와 ‘빙하게이트’ 이야기로 시작해서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찬반논쟁에 대한 설명으로 마친다.

 

이렇게 전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해하기가 쉽다는 것이고, 두 번째 장점은 과학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고, 긴장감 있고 거기에 과학적이라니!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널리 추천하고 읽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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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잣는 사냥꾼 거미
이영보 지음 / 자연과생태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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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스파이더 맨? 가수 거미? 독거미? 나는 아주 오래전 혼자 자취하던 시절 한 장면이 생각난다.

 

오후 햇살이 한풀 꺾였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동네 후배가 누추한 자취방을 방문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지저분한 방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코딱지만한 방 하나 치우는데 땀을 뻘뻘 흘린 생각을 하면 청소란 건 역시 자주 할 게 못 된다 싶었다. 못 보고 살았던 시간만큼 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한참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말끔히 청소를 끝내놓은 방구석에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왠지 그 거미가 신경 쓰여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자꾸만 그쪽으로 눈이 갔다. 결국 녀석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즈음에 나는 화장지를 한 칸 뜯은 뒤, 살짝 일어나서 거미를 향했다. 곧 이어 그 작은 거미는 화장지에 쌓인 채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그때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 맥주를 한잔 마시다가 그 녀석이 갑자기 거미 얘길 꺼냈다. 그 후배에게 샤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참 떠들어댔던 시기가 있었는데, 녀석은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선배가 아무 생각 없이 거미를 잡았다는 사실이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난 집안을 돌아다니는 벌레를 모두 잡아버리는 지극히 평범한 도시인의 모습을 연출했지만, 그것이 내가 평소 떠들곤 했던 무슨 주의나 사상과는 배치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날 이후 나는 웬만한 벌레가 집안을 돌아다녀도 잡지 않는다. 살포시 집어서 집 밖으로 내보내줄 뿐이다.(물론 바퀴벌레 같은 건 사정없이 잡는다) 아내나 아이들이 집에서 작은 거미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무서워하면 저절로 그 후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럼 난 아이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한다. “괜찮아. 거미는 원래 착한 벌레야. 거미가 있으면 나쁜 모기나 파리도 잡아주고, 농사 지을때 피해를 주는 병해충들도 잡아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 그리고 거미는 절대 사람을 물지 않으니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거미를 무서워한다. 아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 아이를 비롯해서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것은 혹시 독거미에 물릴까 걱정되어서 일까요? 이 책에 의하면 전 세계의 거미는 약 4만 여종에 이르는데, 그 중에 독거미는 20~30여종으로 대략 0.1%도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있는 726종의 거미 중에 독거미는 없다고 한다. 거미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만나면 도망가기 때문에 일부러 괴롭히지 않으면 물릴 일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거미에 물려도 특별한 치료 없이 몇 시간 혹은 며칠 이내에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이 책에는 사람들이 거미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연구진에 의하면 먼 옛날 조상들이 천적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에 의해 생긴 공포가 그대로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후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여자는 남자에 비해 거미와 같은 벌레를 4배 더 무서워하는데, 여자는 낯선 동물을 더 무서워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남자는 덜 무서워하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란다.

 

이 책의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실 잣는 사냥꾼 거미’ 실을 자아 거미줄로 그물을 짓고, 걸리는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인 거미는 생태계에서 인간 외에 유일하게 도구(거미줄, 그물)를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다. 거미와 거미줄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1장의 제목은 ‘지구의 또 다른 주인, 거미’이다. 지금껏 지구의 또 다른 주인은 ‘개미’ 정도로 생각해왔는데, 거미도 그만큼 종이 많고 그 개체수가 많구나 싶었다.

 

또 흥미로운 점은 ‘거미’라는 이름의 어원과 개별 종명의 어원들도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생왕거미’의 ‘기생’이 흔히 말하는 다른 종에 빌붙어 산다는 뜻이 아니라 ‘황진이’와 같은 ‘기생’을 뜻한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거미 박사 김주필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불짜게거미’는 등에 한자인 ‘아니 불(不)’자처럼 보이는 검은 무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갖고 있다는 등 책에 소개된 많은 거미들의 독특한 이름을 설명해주고 있다.

 

아, 이 책에는 정말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은데, 시간이 없어 다 언급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면, 1장에서 ‘거미줄 연구’라는 부분이 정말 재밌다. 거미는 거미줄로 그물을 만들어 생활하는 정주성 거미와 깡충거미과, 늑대거미과처럼 주변을 배회하면서 먹이를 사냥하는 배회성 거미로 나뉜다. 이 중에서 정주성 거미가 치는 거미그물은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데,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거미그물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산왕거미의 정상원형그물 같은 경우는 예술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자, 그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아닌)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거미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친절한 안내서인 이 책을 들고 거미를 찾아다녀보자. 행위예술가 ‘꼬마호랑거미’, 멀리뛰기 선수 ‘털보깡충거미’, 흰 눈썹 휘날리는 산신령 같은 ‘흰눈썹깡충거미’, 해안가의 사냥꾼 ‘해안깡충거미’, 해충 잡아먹는 해적 ‘황산적늑대거미’, 알주머니를 입에 물고 다니는 ‘아기늪서성거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홍거미’ 등 개성 넘치는 57개의 거미 이야기를 즐기다보면 거미는 어느새 친숙한 지구별의 동반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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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8-13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글 읽으니 전 백석 시인의 '수라'라는 시가 떠오르네요^^
 
수요일은 숲요일
김수나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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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가운 햇살. ‘맴맴’이 아닌 ‘쎄~~~’ 하고 길게 울어제끼는 매미 소리가 귀를 찌른다. 눈부신 모래 운동장엔 파리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운동장 한 켠 커다란 나무 밑 그늘에 인간과 모기와 하루살이와 이름 모를 나방과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나무에 기대어 물을 홀짝이며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데, 아이들이 달려온다. 저 녀석들은 덥지도 않나? 아이들은 내게 함께 놀자고 조른다. 방금까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육체노동을 한 후라, 도무지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내 팔을 잡아 끈다. 억지로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이고 몸을 일으켰다.

 

대여섯명의 아이들은 나이도 제 각각인 듯 키 차이가 제법 났다. 누군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어색하게 보자기를 냈다가 술래가 되고 말았다. 커다란 나무 몸통에 얼굴을 대고 한 글자씩 또박또박 소리를 냈다. “무. 궁. 화. 꽃. 이.” 그 다음 잠시 뜸을 들이다가 휘몰아치듯 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피었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동작을 멈추었다. 얼굴에 가득 웃음을 머금은 녀석들이 있는가하면 당차게 생긴 여자아이 하나는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늘 경계에 있는 아이는 표정까지는 볼 수 없었다. 나무 그늘 밖에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실눈을 뜨고 봐도 그 아이의 표정과 자세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멈춘 듯 아이들이 모두 멈춰버린 순간이었다. 때마침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 마저 멈춰버려 세상은 고요했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이 순간이 떠올랐다. 159쪽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글 첫 문장이 바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였고, 파란글씨의 도입부분 아래 본문의 첫 문장은 ‘거기 여름이 잠시 멈춰있다.’ 였다. 그랬다. 그 날, 그 순간 내게도 잠시 세상이 멈춰있었다.

 

이 책은 여행기다. 저자가 4계절 동안 도시 근교에서 이름난 여행지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닌 감상을 엮은 것이다. 저자 특유의 감성이 묻어있는 글과 눈길을 끄는 좋은 사진들이 엮인 책. 읽다가 반가운 장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부암동과 성북동, 서울성곽길은 나름 인연이 있는 곳이고, 수원 화성은 몇 차례 찾았던, 기회가 되면 느긋하게 걸어보고픈 길이었다. 천리포 수목원과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역시 여유있게 만끽하고픈 공간들이다.

 

책을 읽다가 한가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부분 본문 아래쪽에 표시된 ‘쪽수’가 안보였다. 평소 책갈피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라서, 책을 읽다 접을 때는 항상 쪽수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시 펼쳐서 읽곤 하는데,(물론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라, 앞 뒤 쪽을 살펴가며 다시 찾아야하는 경우가 많지만) 책을 덮으려는데, 쪽수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도대체 몇 쪽인거냐? 그런데 나중에 의외의 공간에서 쪽수를 발견했다. 왼쪽 위에 있었다. 대개 쪽수가 아래쪽에 있는 경우에는 왼쪽 면에는 왼쪽으로 치우쳐서, 오른쪽 면에는 오른쪽으로 치우쳐서 쪽수를 넣는데, 이 책엔 일관되게 왼쪽 위에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재밌는 건 왼쪽 그러니까 짝수 면에는 그냥 숫자만 넣고, 오른쪽 홀수 면에는 숫자 앞에 동그라미를 하나 붙여 놓았다. 나름 신경써서 디자인한 부분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불편했다.

 

책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도시 속 힐링스팟’과 ‘자연요리 레시피’를 실어놓았다. 아무리 부록이라도 조금 성의가 없어보이는 모양인데, 구색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넣은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솔직히 ‘힐링스팟’의 경우 인터넷 검색으로 그보다 더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데 그렇게 실어놓은 것은 이유는 과연 뭘까? 오히려 안 싣는 것이 더 나았겠다 싶다.

 

『수요일은 숲요일』이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직장에 매여있는 신세라 주말이 아닌 평일 하루를 빼서 자연을 찾아 걸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서 좀 많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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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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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유독 참지 못하던 말이 있다. “거짓말!” 혹은 “뻥치지마!”라는 말을 들으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냈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는 것에 대해 유난히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절대 그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런 의혹을 제기하면 화를 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입을 통해 나온 말들 중에 조금의 거짓이나 과장이 없이 100% 진실이 과연 있을까?(왠지 ‘진실’이란 단어의 정의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가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마도 조금씩 거짓과 과장이 담긴 말들을 해왔을 것이다.

 

한 달쯤 전이었던가? 몸담고 있는 단체에 1박2일 수련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는 내가 당연히 함께 갈 거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전화가 왔고, 나는 그날 이미 일정이 포화상태라 못 간다는 말을 전했다. 수련회 출발일인 토요일에 예정된 일정은 4개(수련회는 제외하고)였다. 그 중 2개는 어떻게든 참석이 가능했지만, 나머지 2개마저도 참석이 불투명했다. 아니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련회 참석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화상으로 다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 단체 게시판에 댓글을 남겼다. 대략 어떤 일정들이 있고, 현재 일정을 조율해도 다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못 가서 아쉽다. 좋은 시간 보내고 오시라. 뭐 이런 말들을 두드려놓고 며칠 후에 들어가 보았더니, 전화를 걸었던 그 선배가 단 한마디를 답글로 달아놓았다. “뻥치지마!” 선배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함께 참여하지 못한 건 미안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4개의 일정이 있었고, 그 중 겨우 2개만 간신히 참여하고 난 후에 읽었던 터라 순간 화가 났다. 선배의 성격을 미뤄보아 아마 반쯤 농담이나 장난이었을 테고, 조금은 섭섭함을 드러낸 것이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공개적인 게시판에 하필이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내게 던져놓은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뻥’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허풍이나 거짓말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최근 읽은 『북극 허풍담』이란 책은 이를테면 북극의 ‘뻥’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일단 깔끔하면서도 인상적인 표지가 맘에 들었다. ‘허풍’이란 단어는 아무래도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이라는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생각나게 하는데, 저 독일 고전에서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건, 그린란드의 영하 30〬 한겨울을 상상하면서 잠시나마 서울의 35〬 폭염을 잊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평원과 삐죽삐죽 솟아난 얼음산들 그리고 아름다운 피요르 해안들을 상상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을 방문하려면 며칠씩 걷거나, 썰매를 타거나, 배를 타야하는 그들의 생활을 상상하는 것은 무척 즐겁고도 행복한 일이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건 무엇보다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 덕분인 것 같다. 바로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코를 골고 잠을 잘 것 같은 밸프레드, 혈기왕성한 젊은 안톤, 고독한 사색가 헤르베트, 묵언수행자와 수다쟁이의 극단을 오가는 로이빅, 귀족출신이자 북극의 유일한 농사꾼인 ‘백작’, 어마어마한 외상으로 불 뿜는 용문신을 구매한 비요르켄, 안경을 잃어버린 덕분에 한치 앞도 분간하지 못하는 퇴역 사냥꾼 ‘낯짝’, ‘엠마’의 창조자이자 타고난 뻥쟁이 매스 매슨,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연상시키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빌리암 등등 당장이라도 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실감나는 인물들 덕분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1년에 한번 들어오는 수송선을 타고 방문하는 개성 넘치는 손님들까지 더해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들어있다.

 

책 뒷날개에 보면,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총 10권이라고 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것은 3권까지이고, 4권 이후의 출간은 독자의 요청에 달려있다는 작은 글씨가 아래쪽에 적혀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출간압박용 이메일 주소를 적어놓았다. 즉 만약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다면 4권부터는 출간이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일단 1권이 무척 재미있었으니, 2권, 3권도 재미있으리라 생각된다. 어서 읽고 출간압박용 이메일을 한번 이용해볼까 고민해봐야겠다.

 

하필 폭염이 며칠씩 이어지는 이상기후에 너나없이 모두 힘들어하는 시기에 이 책 덕분에 잠시 더위를 잊고 재미있는 이들의 일상에 흠뻑 빠져들게 되어 좋았는데, 검색을 하다가 무서운 소식을 들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약 40% 정도의 얼음이 녹고, 나머지 60%의 얼음은 전혀 녹지 않는 그린란드에 올해는 97%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위성사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서울만 유난히 더운 게 아니었구나.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 일이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그린란드의 저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이 사냥하고 술 마시며 생활하는 일상의 터전이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재미있는 책에 어울리지 않는 위기감을 느끼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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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무 2012-08-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위에 건강 유의하시길^^

감은빛 2012-08-08 15: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봄나무님께서도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8-0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울 정도로 덥네요.
에어컨을 꺼야 한다는 불안감과, 끄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 사이에서 고민을...
살다 살다 지구가 걱정되는 더위는 처음이네요.
건강 유의하세요.^^

감은빛 2012-08-08 15:09   좋아요 0 | URL
죽을 만큼 덥다고 생각되네요
회사에서는 사장님이 하루종일 에어컨을 켜 놓아서 오히려 추운데,
집에 오면 도저히 이 더위를 견딜 수가 없어요!

현맘님께서도 건강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2-08-0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더운 여름에 읽기에는 딱 어울리는 책이네요. 출판사 열린책들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조르주 심농 시리즈 총 75권 출간을 야심차게 준비했다가 독자 반응이
그리 높지 않아서 몇 십 권만 발간하는 걸로 끝맺어버린 뼈아픈 일이 있었죠.
사실 열린책들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않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기로
유명한데 요번에 나온 시리즈의 출간압박용 문구에 나름 열린책들만의 고심이 묻어나 있네요. 저도 읽어보고 재미있으면 압박 메일 한 번 보내봐야겠습니다. ^^

감은빛 2012-08-08 15:11   좋아요 0 | URL
아, 조르주 심농 시리즈 처음 나올 때 한번 살펴봤었는데,
그게 중단되어버렸나봐요. 안타깝네요!
출간압박용 이메일을 기재해놓은 것이 좀 재밌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약간 서글프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출판사의 심정이 너무너무 이해가 되어서 말이죠.

시루스님께서도 동참해주시와요! ^^

굿바이 2012-08-07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고 있어요^^ 2권 읽고 있는데 점점 주인공들에게 빠져들어요 ^____^

감은빛 2012-08-08 15:12   좋아요 0 | URL
벌써 2권을!
저는 7월달에 질러놓은 책들 때문에 조금 여유를 두려구요.
굿바이님께서는 어떤 평을 남기실지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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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화 지음 / 북센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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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아침. 전쟁을 치르듯 아이 둘을 준비시키고, 옷을 껴입고 집을 나선다. 바지를 입고 나면 항상 챙기는 것이 있다. 바로 핸드폰과 지갑이다. 어쩌다 핸드폰을 두고 나온 날에는 무척 불안하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갔다가도 다시 되돌아온다. 만약 버스나 지하철을 탄 후에 핸드폰을 두고 온 사실을 깨닫는다면 하루 종일 온갖 상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를 급하게 찾고 있으면 어떡하지? 게다가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부터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전화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하고, 채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나 드라마 혹은 야구 중계를 본다. 전자책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핸드폰.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을까?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1994년 친구 명의로 된 무선호출기(삐삐, Pager)를 처음 쓰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일상이 크게 바뀌기 시작한 게 말이다. 그 전까지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집 전화를 이용하거나, 편지를 쓰거나,(이때는 아직 이메일도 없었다) 그가 주로 다니는 곳에서 시간 맞춰 기다려야 했다. 가령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만나기 위해 그가 다니는 교회 주변에서 얼쩡거리거나, 헤어질 때 미리 정해둔 시간(주로 밤이었다)에 그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쓰기 위해 밤새도록 공책을 찢고 또 찢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삐삐라는 것을 갖게 되면서부터 아무 때나 연락이 가능해졌다. 물론 삐삐는 핸드폰처럼 바로 통화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연락을 받으면 공중전화로 가서 전화를 걸거나,(그러고 보면 당시엔 공중전화도 참 많았고, 커피숍 같은 곳엔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놓이기도 했다) 녹음된 음성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숫자로 된 비밀 암호를 읽으며 혼자 즐거워하기도 했다. 삐삐는 직접 통화가 아니기에 묘한 즐거움과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수업 중이나 회의 중에 음성메세지가 도착하면, 누가 보낸 것일까? 뭐라고 남겼을까?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공중전화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참아야 했다. 메시지를 받고 급하게 공중전화로 달려갔는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면 다른 공중전화를 찾거나, 당장 확인을 포기하고 나중에 집에 가서 확인해야 했다. 술 한 잔 살 테니 나오라는 선배의 메시지를 집에 와서야 확인한 순간에는 땅을 치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리고 숫자로 만든 다양한 메시지가 통용되었다. 대표적으로 급할 때는 누구나 전화번호 뒤에 8282를 붙였다. 사귀는 여자 친구와는 정해놓은 암호를 주고받기도 했다. 1111은 지금 당장 네가 보고 싶어! 1004는 나의 천사! 등등 창의력을 발휘한 다양한 숫자들이 연인들 사이에서 오늘날의 문자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핸드폰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아마 1999년 혹은 2000년쯤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핸드폰을 쓰기 시작한 것이 겨우 십 수 년밖에 되지 않았다. 요즘은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부터 초등학생까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핸드폰의 역사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언뜻 보기에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핸드폰과 고릴라의 관계를 풀어놓으며, 핸드폰이 일상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도록 변해버린 모습들도 지적한다. 그 외에도 산에 올라 “야호!”하고 지르는 소리와 산새들의 숫자에 대한 관계. 북극곰과 지구온난화의 관계, 귀신고래와 유전개발, 해양오염의 관계 등 생태계 문제. 물 부족, 합성섬유, 비닐쓰레기 등 환경문제. 내복 입기, 일회용품 쓰지 않기, 손수건 사용하기, 아껴쓰기, 다시쓰기 등의 생활 속 실천의 문제. 음식물쓰레기, 도시 조명(빛공해),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 사용 등 살림살이 문제 등의 다양한 환경, 생태 문제들을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2006년 초판 발행 후에 지금까지 여러 기관이나 단체로부터 추천도서로 선정도 많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 아이들은 부디 지금의 어른들처럼 멍청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아이들과 나아가 그들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덜 망가진 상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지금 당장 이 책을 구해 읽으시라. 그리고 여기에 나온 내용들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시라. 우리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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