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불법 주민투표의 강행과 허점
어제 출퇴근길에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둘씩 모여서 주민투표 안내 및 무상급식을 비방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인원을 풀었는지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이나 주요 교차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그다지 많이 오가지 않는 교차로에서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이었다. 간혹 젊은 여성과 남성도 눈에 띄었다. 몇몇은 무표정하게 서있었지만, 대개는 피켓으로 얼굴 아랫부분이나 얼굴 전체를 가리고 서 있었다. 그 앞을 스쳐지나가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저들이 저기 서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다섯살 훈이의(오세 훈이) 의견에 동조해서 혹은 한나라당의 정치적 입장에 찬성하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돈 때문에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 젊은 남녀들은(아마도 대학생이거나 청년실업자들이 아닐까?) 동생들이나 사촌들 중에서 무상급식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중년의 여성들이라면 자신의 자녀들이나 조카들 중에 분명히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서살 훈이의 말도 안되는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돈이 얼마가 나오는지 알수 없지만 정말로 단순히 그 돈 때문에 거기 서 있는 것일까? 생각이 진행될수록 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 분들이 한번만 더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대채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한동안 바빠서 못 읽었던 '창비주간논평'을 한꺼번에 읽다가 이범씨가 쓴 주민투표에 대한 글을 읽었다. 이번 주민투표가 워낙 말도 안되는 짓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부분들까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무척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이번 주민투표는 절차적으로 불법이었다. 이범씨가 쓴 논평에 의하면 주민투표법 7조 2항에 의하면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급식은 당연히 서울시교육청이라고 하는 엄연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사무영역에 속한다고 한다. 또한 주민투표법 7조 3항에 명시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회계·계약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에도 위반되기 때문에 명백한 위법이라고 한다. 서울 시장이라는 작자가 앞장서서 법을 위반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 하나의 문제는 주민투표에 부쳐지는 1안과 2안 중 어느 것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안과 일치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투표용지에 기재될 1안은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고, 2안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안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4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방안은 곽노현 교육감의 취임 초인 2010년 8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으로서, 중학교의 경우 2012년 중1을 시작으로 무상급식 대상을 매년 1개 학년씩 확대하여 2014년에 정책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가지 안은 완전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작 무상급식의 원조격인 교육청의 정책안을 누락시키고, 자기 맘대로 엉뚱한 안을 내세워 투표에 부친 것이다. 이래서야 애초에 투표를 붙이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없는 거 아닌가?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짓인가!
아라뱃길이니, 디자인서울이니, 한강예술섬이니 온갖 뻘짓에 예산을 떠 써놓고 정작 수해방지예산은 1/10 수준으로 줄여버린 사실이 드러나서 곤경에 빠진 다섯살 훈이가 이번 주민투표를 통해 과연 얻고 싶은게 무언지 궁금하다.
둘.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도서 선정 취소에 대해
창비 주간 논평과 더불어 한동안 창비에서 보낸 뉴스레터도 안 읽고 쌓아두었다가, 이제서야 하나씩 열어봤는데, 그 중에 딱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천안함의 진실을 파헤친 책이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었다가, 뒤늦게 취소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창비측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건의 진행과정이 참 우습고, 어처구니 없는데,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무척 심각한 사건으로 보여진다. 출협에서는 이미 자체 기관지 <출판문화> 2011년 6월호와 홈페이지에서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던 내용을 번복하고 선정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쯤되면 외압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 외압이 보통이 아닌 매우 힘있는 곳에서 떨어진 압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만약 출협의 외압에 굴복하여 이미 공표까지 마친 선정결과를 번복하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늘어놓은 게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한 문제로 보여진다.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당연하고, 그것을 드러내놓고 한 게 아니라, 교묘하게 뒤에서 출판단체를 움직여서 탄압한다는 점이 무척 우려스럽다. 자세한 사항은 창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