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지난 2월은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평소보다 짧은 달인데, 설 연휴까지 있었으니. 그래서 원고 마감에 대한 걱정과 압박도 컸다. 이번 마감은 정말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2월 15일쯤 대략적인 글의 주제와 소재를 잡아놓고, 20일까지는 글을 넘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이 안써졌다. 일과시간에는 일상업무로 바빴고, 집에서는 각종 집안일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주로 새벽에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으나, 빈 화면에 커서만 깜빡일 뿐. 도저히 자판이 두드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즈음부터 이유없이(아마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가 굳어져서) 골반이 아프기 시작해서, 컴퓨터 앞에 오래앉아 있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원고 마감일을 넘기고, 두번째 약속시한이었던 25일까지도 글을 쓰지 못했다.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최종 마감일이었다. 이날 오전까지는 무슨일이 있어도 글을 넘기기로 약속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면서, 오늘 밤에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일주일동안 쌓인 피로 때문인지. 아이들을 재우면서 잠들어버렸다. 토요일엔 약속이 있어서 나갔고, 밤에 처가에서 잠을 잤다. 일요일엔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을 했고, 밤이 되어서야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써야했으나,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결국 28일 아침까지 단 한줄도 쓰지 못한채 출근했다. 커피 한 잔을 타놓고 맹렬하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1시간 반 안에 끝내야 했다. 대략적인 틀을 머리속에 잡아놓고 있었기에 그냥 마음가는대로 두드렸다. 1시간 안에 정해진 분량을 채우고 다시 읽으면서 맞춤법을 점검하고, 맘에 안드는 문장을 버리고, 새로운 문장을 채워넣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시간이 채 안되어, 완전히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원고를 넘겼다. 최단시간 기록이다! 그렇다면 원고의 질은? 모르겠다. 일단은 그냥 잊어버리련다.
둘. 토요일 모임이 있어서 큰 아이랑 함께 집을 나섰다.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모임이 끝날 때즈음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집으로 바로 돌아갈지, 처가로 갈지 물었더니, 처가로 와서 데려가달란다. 출발할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겠다고. 알겠다고 하고 지하철을 타고 처가로 갔다. 지하철을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러 가는데, 꼼장어 집이 보였다. 갑자기 꼼장어가 무척 먹고 싶었다. 옛날에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 맛있게 해주셨던 어느 노점 할머니가 생각났다. 그맛이 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꼼장어에 소주 한잔이 간절했다.아내는 지금 짐을 다 싸놓고 기다리고 있을텐데. 전화를 해서 오늘은 자고 가자고 했다. 꼼장어와 장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막걸리를 사갈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를 먹이려고 일부러 양념이 아닌 소금구이로 샀다. 오랫만에 장모님과 아이와 함께 꼼장어를 참 맛있게 먹었다.
셋. 골반이 아픈 증상이 쉽게 낫지 않고 있다. 물론 처음 아픔을 느꼈을 때부터 쉽게 나으리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내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드디어 올게 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만 병원이나 한의원을 가라고 부추기는데, 원인을 아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럴 수가 없다. 나쁜 자세 때문에 생긴 증상은 자세를 바로잡아야만 고칠 수 있다. 자세를 바로 잡는 건 짧은 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고, 또 아주 어려운 일이다. 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의사가 대신 해줄 수 있거나,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 도움을 받긴 했지만, 여러모로 많이 아쉬운 점들도 있었다. 구체적이지 않다고 해야할까. 친절하지 못하다고 해야할까. 암튼 큰 틀에서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다지는 데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실제로 아픈 증상을 고치는데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아무런 기대없이 빌린 한 권의 책이 나를 살렸다!
제목이나 표지의 느낌만 보면 보디빌딩이나 운동경험을 쓴 책인 것 같지만,(나는 그런 내용이라 생각하고 빌렸다.) 실제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무술가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몸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잘못된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고, 어떻게해야 고관절과 척추를 바로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제는 이 책을 참고로 하여 바른 마음가짐과 자세로 고관절과 척추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운동을 조금 해보았다.
며칠동안 아침마다 골반이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나는게 무척 힘들었다. 오늘 아침에도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픈 정도가 훨씬 덜했다. 그리고 이을 닦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으면서도 계속 저자가 강조한 점을 생각하며 움직였더니, 통증이 덜했다. 출근길을 걸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만난 것이 대단한 발견이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번에 골반이 아픈 증상이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다. 덕분에 더 늦기 전에 내 몸을 돌아보고,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제부터는 힘들어도 매일매일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꽃샘추위와 함께 시작한 삼월. 모 서점의 부도로 시작한 삼월. 무엇하나 좋아보이지 않고, 오히려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깨달음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