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내 주위에 아직 코로나에 걸려본 적 없는 지인들이 몇 명 있다. 최근까지는 나도 그 중 하나였는데, 지난 주에 나도 드디어 확진자 대열에 합류했다. 몸이 좀 안 좋다고 느낀 건 2주 전 일요일 오후였다. 바로 다음날에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중요한 문서 작업도 남아있어서 사무실에 나갔다. 일을 하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밤늦게까지 문서를 붙들고 씨름했다. 새벽에 좀 졸다가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와서 마시고 다시 일했다. 잠깐씩 졸기는 했지만, 암튼 밤새 일을 했다. 월요일 오전에 일터 동료가 출근하자마자 내 몰골을 보고 밤을 샜다는 걸 눈치챘다. 급한 문서 작업을 대충 마무리하고 중요한 일정을 다녀오고, 오후에 좀 일찍 퇴근해서 쉬고 싶었는데, 일이 꼬여서 그러지 못했다. 일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나와서 약 30시간 가량 일을 하다가 월요일 저녁 9시쯤 퇴근했다. 월요일 저녁때부터 급격하게 몸 상태가 안 좋았다. 그냥 좀 피곤해서 그런가 생각했고, 감기 몸살 기운이 좀 있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저녁에 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화요일 오후에 출근하기로 하고 오전을 쉬었는데, 딱 감기몸살 기운이라고 여겼다.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잦고, 목이 아팠다. 어쨌든 오후에 출근해서 저녁때까지 일을 했다. 회의를 마친 시간은 대략 10시쯤이었다. 같이 회의를 한 선배들이 배도 고픈데 간단하게 뭘 먹자고 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따라갔겠지만, 그날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냥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고 했다. 마치 다음날인 수요일이 삼일절이라 약 먹고 하루종일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배들이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여서 보내고 싶다고 나를 붙잡아서 결국 따라 나섰다. 맛있는 연포탕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전부터도 친했지만, 최근 서너달 사이에 부쩍 친해진 이 분들이 그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팬하기 너무 힘드네. 우리가 서퍼터즈가 되어서 열심히 밀어줄테니 맘껏 날개를 펼쳐봐라.˝ 이런 얘기였다. 즉, 본인들이 내 팬이 되어 열심히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제서야 최근 유난히 자주 챙겨줬던 일들이 떠올랐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었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서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삼일절에 집에서 감기약을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이날까지만해도 그냥 감기몸살이겠지 했다. 설마 코로나일 줄은 몰랐다. 다음날 목요일 아침에도 증상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열이 나고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코로나를 의심한 건 발열 때문이었다. 집에 있던 자가진단키트를 찾아서 검사해보니 양성이 나왔다. 곧바로 보건소로 연락했더니, 오후에 와서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화요일 저녁에 같이 회의했단 분들에게 알리고 특히 따뜻한 국물을 사주셨던 분들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말씀드렸다. 팬이라고 서포터즈를 자처해주시는 분들에게 코로나를 전염시키면 너무나도 죄송한 일이 아닌가! 다행히 이 분들은 모두 코로나 확진 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별 증상이 없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오후에 보건소를 향해 출발하면서 버스를 타면 안 될 것 같아서 걸어가기로 했다. 평소 걸음으로는 30분 정도 걸릴 거리인데, 몸이 아프니 한 45분 넘게 걸린 것 같았다. 피씨알 검사를 받고 나오는데, 검사 결과는 다음날 오전에 문자로 통보한다고 했다.
정말 너무너무 바쁜 시기에 이렇게 코로나에 걸리니 답답했다. 다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무실에 잠시 들러 노트북을 챙겼다. 내가 자가격리로 자리를 비울 일주일 동안 사무실과 매장을 지켜야 할 일터 동료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집 근처 마트들 중에 평소 제일 사람이 없는 곳에 들러 일주일치 먹을 거리를 챙겼다. 간편식 위주로, 간단히 요기하고 약 먹기 편하게 데워먹는 죽 제품들을 주로 골랐다. 코로나를 핑계로 아무 생각없이 푹 쉴수 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럴 상황은 아니었다. 일 년 중에 제일 바쁜 시기라서. 나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문서 작업들을 하면서 남은 오후 시간을 보냈다.
자가격리
다음날 아침 일찍 확진 통보 문자가 왔다. 자가진단키트 양성 나왔을때 이미 각오하고 있어서 놀랍지는 않았다. 드디어 나도 걸렸구나. 이런 마음이었다. 미리 사둔 감기약을 먹고 보건소 연락을 기다렸다. 다른 건 안 궁금했지만, 약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는 궁금했다. 작년에 걸렸던 지인 말로는 전화로 증상을 말해서 약을 지은 후 심부름 업체 통해 약을 배달받았다고 했다. 집에 있는 감기약은 이틀 분량이라 계속 증상이 안 좋으면 추가로 약이 필요할테니, 그 부분은 꼭 미리 알아둬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 보건소 연락을 받았는데, 돌아온 답은 좀 허무했다. 코로나 전담 병원 뭐 그런 병원이 정해져있어서 그 병원에 그냥 다녀오면 된다는 것이다. 7일 자가격리하고 그 다음엔 다른 절차 없이 그냥 일상생활하면 된다고 했다. 코로나도 4년차라 이제 거의 끝물이라는 느낌을 확 받았다.
여러 거래처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때에도 다들 그런 반응이었다. 이제서야 걸렸냐? 뒤늦게 걸렸구나. 남들 다 걸릴 때 뭐하고 이제서야. 뭐 이런 반응들. 앞서도 말했듯 엄청나게 바쁠 때라서 각종 증상들이 제일 심할 시기에 쉬지 못하고 일을 했다. 감기약으 독해서 약 먹으면 엄청 졸리는데, 졸음을 참아가며 억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휙 시간이 지났다.
주말에는 좀 맘 편히 쉴 수 있었다. 준비해뒀던 감기약을 다 먹고, 집안을 뒤져서 언제 사먹었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감기약을 찾아냈다. 유통기한도 확인하지 않고 그 약을 그냥 먹었다. 주말 이틀은 이걸로 해결했다. 월요일에도 계속 증상이 심하면 그때 병원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죽과 간편식만 먹었더니 좀 지겨웠다. 토요일 저녁에 뭔가 맛난 걸 먹고 싶어서 배달 앱을 켰다.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이 많아서 뭘 고르기가 어려웠다. 배는 고픈데 보는 음식들마다 다 먹고 싶어서 자꾸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고룬 음식은 돼지국밥과 파전이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도 하나 보고 나니 이제 좀 쉬는 것처럼 쉬는구나 싶었다.
주말을 지나면서 발열도 사라지고, 여러 증상들이 나아졌다. 주말에 일부러 안 먹고 남겨준 감기약이 2번 분량 남아있었다. 병원을 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루 더 상황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좀 하고 좀 여유있게 쉬기를 반복했다.
다른 증상들은 거의 나았는데, 기침이 낫지 않고 계속 나왔다. 게다가 한번 기침이 시작되면, 그치지 않고 계속 나왔다. 이렇게 기침이 안 그치니 목도 계속 아팠다. 거기에 업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이 같이 와서 좀 힘들기도 했다.
어쨌든 자가격리 후반 이삼일 가량은 그래도 조금 쉬면서 잘 보냈다. 코로나 확진이 아니었다면, 이 바쁜 시기에 꿈도 못 꿀 휴식이었을 것이다.
다시 일상
격리 중에도 집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암튼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일주일을 지냈다가 다시 출근하려니 뭔가 엄청 어색하고 낯선 느낌이었다. 당연히 엄청나게 출근하기 싫었다. 그렇지만 나 없이 이 바쁜 시기를 보낸 일터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서둘러 나갔다. 역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겹고 지긋지긋한 업무들. 이제서야 바쁜 시기에 확진이 되어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좀 안 바쁜 시기에 다시 확진이 되어 아무 생각없이 좀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몸이 안 아파야 놀 수 있겠지만.
다들 후유증은 없는지 묻곤 하는데, 잔기침이 조금 남아있는 걸 제외하면 다른 증상은 없다. 기침은 좀 더 오래갈 것 같다. 앞서 코로나를 경험한 여러 지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니 기침이 안 멈추고 좀 오래갔다는 이야기들이 많더라.
혼자 살아서 편한 점도 많지만, 역시 혼자라 제일 서러울 때는 아픈 때라는 걸 또 한번 깨달았다. 물룬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차라리 혼자인 경우가 편하긴 하다. 작년에 확진 판정을 받은 친한 후배는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다가, 확진되자 본인이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고, 다른 가족들(부모님과 형제)이 호텔방에 임시로 머물렀다고 했다. 호텔 일주일이면 그 비용도 참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자가격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주일 넘게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코로나 소식을 전했을 때에도 아이들은 아빠 아프지 말라고, 얼른 나으라고 같이 걱정을 해줬다. 같이 살지 않으니 평소에도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은 늘 크지만, 아플 때에는 유난히 더 보고 싶었다. 문득 언젠가 아이들과 영영 이별해야 할 때가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이지만, 언젠가는 닥칠 일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죽음과 이별은 평등하니까. 주말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월요일을 앞둔 지금 이 시간이 제일 우울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힘내서 씩씩하게 잘 지내야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를 아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도 힘을 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