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실수 


등기소에 등기변경신청을 하러 갔다. 등기변경신청서류를 다 작성해 왔기 때문에 서류를 제출만 하면 되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류만 바로 제출하는 방법이 없어졌다. 무조건 상담 창구에서 상담을 받아야 서류 접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상담창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접수창구보다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게다가 창구 수도 적다. 상담 창구는 8번부터 10번까지 단 세 개밖에 없다. 게다가 10번은 상담직원이 없이 비어있고, 8번과 9번에는 아까부터 오랫동안 상담이 진행 중이다. 나는 상담창구 번호표를 뽑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예전 같으면 그냥 접수 창구에 서류 접수만 하면 끝이었지만, 이젠 언제 끝날지도 모를 상담이 어서 끝나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바뀐 방식에 대해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해야 할 지 모르니. 그냥 참고 기다릴 수밖에.


뒤에 일정이 두 개나 더 있었고, 그날따라 모든 일정이 예상보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어서 조금 조급한 마음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7개의 일반 창구에서는 계속 딩동 소리가 들리며 새로운 번호들을 호명하고 있었지만, 상담 창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내 번호가 불렸는데, 상담 창구가 아닌 일반 창구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래 기다린 사람을 위해 일반창구에서 상담창구 번호를 불러 준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 용건을 들은 직원은 내가 기다리고 있던 상담 창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게 뭔 소리? 나 방금까지 상담창구 앞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번호를 불러서 여기로 온 건데? 황당해하는 나에게 그 직원은 본인이 번호를 잘 못 누른 것 같다고 말하며, 다시 가서 번호표를 뽑으라고 했다. 나는 어이없다는 뜻으로 헛웃음 지으며 방금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 온 거라고 말했다.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마치자마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뭔가 더 따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번호표를 뽑으러 갔다. 이 여성은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상담 창구 번호표를 뽑으니 내 앞에 대기자가 3명이나 있었다. 방금까지 나는 바로 다음 번호였는데, 다시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수도 없는 상태로 더 기다려야 한다니.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까 창구로 다가가 언성을 높였다. 방금까지 다음 번호였는데 선생님 때문에 지금 내 앞에 대기자가 3명이 늘었다. 이거 어떻게 하실 거냐고 따졌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리 오시라고 하면서 비어있는 6번 창구로 나를 불러 서류를 달라고 했다. (그는 3번 창구 직원이었음) 그러더니 다른 사람 서류를 접수 중인 7번 창구 직원에게 이 건 접수 좀 받아 달라고 말했다. 아마 자신이 나이가 더 많거나 직급이 더 높은 듯 아무렇지 않게 명령하는 말투로 들렸다. 그런데 내게는 그 태도가 너무나도 거슬렸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나와 7번 창구 직원에게 피해를 준 것인데, 마치 나와 7번 창구 직원이 자신에게 뭔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걸 지적하는 사람 같은 태도였다. 이 여자 뭔가 정상이 아닌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더니 나한테는 여기서 접수하세요. 라고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로 얘기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끝까지 사과는 없었다. 


아마 조금 더 어렸을 때의 나였다면, 참지 않고 다시 그 직원에게 가서 끝까지 따지고 사과를 받아냈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 내가 따지는 것을 오히려 황당해 했을 것이고, 오히려 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처럼 말했을 것이다. 끝까지 사과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더 따지지 않고 그냥 잠자코 7번 창구 앞에서 서류를 접수 중인 사람이 볼일을 마치기를 얌전히 기다렸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7번 창구 담당자인 남성은 앞 사람 용무가 끝나자 나를 불러 서류를 살폈고 금방 접수를 완료했다. 등기소를 나서며 다시 한 번 일어난 일을 곱씹었다. 혹시 내 언행에 잘못은 없었는지 기억을 되짚어봤다. 내가 한 일이라곤 헛웃음을 지으며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내 처지를 설명한 말과 화가 나서 약간 언성을 높이며 따지듯 한 말이 전부였고, 이후로는 그가 명령하듯 한 말들을 얌전히 따랐을 뿐이다. 그는 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했을까? 


어찌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 일일 수 있는데, 이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기분을 완전히 망쳤다. 이후 일정 때문에 지하철 역으로 바삐 걸음을 옮기면서 화를 누르려 애썼다. 다음 일정 장소에서도, 그 다음 일정에서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타 단체의 활동가와 업무 상담을 하면서도 내 생각은 계속 등기소의 그 여성 직원에게 가 있었다. 당연히 내 앞에 앉아서 얘기 중인 활동가에게 집중할 수 없었고, 그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제대로 답을 했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일이 자꾸 꼬인다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이후로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인 걸까?


일상에서 가끔 어이없는 일들을 겪곤 하는데, 유독 이 일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뭘까? 며칠 안에 또 등기소를 방문할 일이 있는데, 이게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미안하지만, 그 일은 후배 활동가에게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과거의 오늘 역시


어제 북플이 알려준 과거의 오늘 쓴 글에 대한 글을 휴대폰 자판으로 열심히 두드렸었다. 그 글을 올리고 나서 살펴보니 과거의 어제 쓴 글이 네 개였다. 그 글들을 하나씩 읽었다. 그중 하나에 알라딘 중고 서점에 책을 팔고 중고 책을 산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 중고 매장의 직원 실수로 내가 사려던 책을 못 사게 된 일에 대해 적어 놓았더라. 그 일 때문에 나는 며칠 동안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데, 그 직원을 찾아서 그 실수에 대해 따지고 싶었지만, 누구였는지 기억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직원의 사소한 실수가 내게는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혔는데, 그 직원 입장에서는 정말 별것 아닌 실수였을 것이다. 이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오늘도 북플은 과거 오늘 쓴 글이 있음을 알려줬다. 오늘은 하나였다. 그런데 그 글에도 알라딘 중고 서점에 책을 팔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같은 해는 아니었다. 나는 어느해 4월 20일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방문해 책을 팔았고, 또 다른 어느해에는 4월 21일에 같은 매장에서 책을 팔았다. 같은 날이 아니라서 대단한 우연은 아니지만, 연속된 날이라서 신기한 우연이란 생각은 든다. 


일하기 싫은 날


오늘은 유난히 일하기 싫은 날이다. 그래서 틈틈히 알라딘에 들어와 이웃들 글을 많이 읽었다. 알라딘에 머문 시간이 길었다. 일하기 싫으니 일찍 퇴근하고 싶은데, 일하기 싫어서 딴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직 일이 남았다. 일하기 싫다는 기분의 결과로 오랜만에 재밌는 글들을 많이 읽어서 좋았지만, 덕분에 이렇고 오늘도 글을 하나 남겼다. 이젠 빨리 일을 마치지 않으면 저녁 약속에 늦을지도 모른다. 일하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여러 번 쓰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 일이 하기 싫은 모양이다. 자판 그만 두들기고 빨리 일하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려보지만, 내 손가락은 여전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일하기 싫기 때문이다. 하! 이제 진짜 그만하고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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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4-21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되돌아 보니 일하기 좋았던
시간은 1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 하기 싫었더라는.
일이 끝도 없이 밀려 드는군요.
심지어 프린터까지 고장이 나서
말썽을 부리네요.
오늘 고치기는 틀린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닌 타인
의 실수로 살 책을 사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노폭팔~ 공감합니다.

감은빛 2022-04-22 21:40   좋아요 1 | URL
일하기 좋은 시간은 정말 별로 없죠.
아주 가끔 재밌는 일도 있으니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요.

프린터 고장.
어우!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레삭매냐님 많이 힘든 날이셨겠어요.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청아 2022-04-2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등기소에서 일 때문에 하루가
온통 먹구름 속처럼 답답하셨을듯해요.
그분이 사과만 하셨어도 상황은 달랐을것 같은데...

살면서 이런 일들은 마치 예상못한 지뢰를 밟듯이
감정을 뒤흔들어 놓더라구요. 생각나는 일들도 있고
공감 만땅입니다.

마지막 문단은 그 와중에 재밌어서 웃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날은 감은빛님에게 맑고 화창한
날이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2-04-22 21: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미미님.
오늘은 화창한 날은 아니었지만,
미미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화창한 날이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

미미님께서도 뭔가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으셨죠?

세상에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저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는
가능석이 높은 가설을 배경에 깔아두는 걸 잊지 말아야하겠지요.

금요일 야근을 마치고 이제 집에 갑니다.
주말 내내 뻗어서 잠만 잤으면 좋겠지만, 또 일정이 있네요.

희선 2022-04-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기다리셨는데, 다른 쪽에서 번호를 불러서 갔더니 거기에서는 안 된다고 하다니... 그럴 때는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런 말도 안 해서 더 기분이 안 좋으셨겠습니다 그 일 때문에 그날 기분이 안 좋으셨군요

책을 못 산 것도 기분 안 좋으셨겠습니다 그건 지나간 일이라 해도, 그때는 정말 기분이 안 좋았을 듯합니다 저도 별거 아닌 일로 기분이 안 좋으면 그것만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건 시간이 가야 덜 생각해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희선

감은빛 2022-04-30 16:44   좋아요 0 | URL
희선님.
두 일 모두 당시에는 엄청 화가 나고 기분이 나빴어요.
글로 쓰면서 화를 좀 풀었던 것 같아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얄라알라 2022-04-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데 저의 경우는 대기를 몇 시간 내내 했는데, 서류 미비였어요^^;;
다음에 기회가 있었는데 감은빛님께서 적으셨듯, 그 상황에 스스로 화가 났던 걸 소화 못시키고 담아놨는지 기회를 그냥 지나가게 했네요.


대기 오래 하시면서 많이 답답하셨겠어요

감은빛 2022-04-30 16:46   좋아요 1 | URL
아,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서류 미비였다니! 너무 안타깝네요.
그날 따라 일정이 많아서 마음이 급해서 더 답답했어요.
그래도 당일 해야할 일정을 모두 잘 마쳐서 다행이긴 했죠.
고맙습니다! 알라님.

페크pek0501 2022-04-27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경우 저 같으면, ˝저 잠깐만요, 이런 경우 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 기분 상한 저에게 위로가 될 것 같은데...˝라고 정중하고 친절한 말투로 그러나 속으로는 이를 갈며 말했을 것 같아요. 속으로는 부글부글 하는데 참아야 하는 상황. 참 싫지요. 또 하나의 문제는 참고 돌아서는 사람의 너그러움을 그런 종류의 사람은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속상한 일이죠...

감은빛 2022-04-30 16:47   좋아요 2 | URL
네, 페크님.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말하는 편이었어요.
당시에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는 순간 그렇게 말을 해도 소용이 없겠구나
하고 판단했죠. 예전에 그런 경우를 많이 겪어서 판단이 빨랐나봐요.
정말 속상한 일입니다.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