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인터뷰 모음집
5월에 인터뷰 기사에 대한 글(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2630823)을 여기 알라딘 서재에 썼고, 여러 이웃분들이 인터뷰 기사 링크를 원하셨는데, 그때의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링크를 거는 행위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때 그 인터뷰 기사는 사회복지 분야 활동가(과거에는 흔히 빈민투쟁이라 불렀던) 였던 기자가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짧게 들여다본다는 기획으로 이어오던 활동가 인터뷰 연속 기사에 포함되는 글이었다. 활동가라는 단어의 뜻과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런 주제로 연속 기사를 쓸 생각을 했다니 신기한 일이다. 아마 기자 자신이 활동가였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흔히 시민사회 진영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판 안에서도 이미 유명한 사람들은 제외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잘 보이지 않는 활동가들을 만나겠다는 기자의 기획의도도 참 공감이 간다. 특히 기자 본인이 몸 담았던 분야 자체가 이 운동판 안에서도 무척 마이너한 분야이고, 그런 경험과 인맥 덕분에 정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꾸준히 노력해 온 여러 활동가들의 삶을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인터뷰 기사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제목은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라고 지었던데, 글의 주제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여서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부제를 보면 확실히 이 책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써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사실 인터뷰 글은 매우 쓰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옮겨야 하는 것이고, 그 안에 원하는 주제와 흥미로운 글감을 잘 녹여내야 하며, 내 주관도 살짝 그러니까 도드라지지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정도로 넣어야 한다.
인터뷰 글은 기본 시작부터가 힘든 작업이다. 인터뷰이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먼저 정리해야 하고, 그 내용들을 잘 끌어내기 위한 질문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사전 준비를 잘 했다고 해도, 인터뷰 당일 현장의 진행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되도록 인터뷰이가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를 위해 적절한 대화의 스킬도 필요하다.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 질문들을 적절한 순서로 던지고, 그 답이 원하는 방향과 흐름으로 나오는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체크해야 한다. 만일 현장에서 원하는 답이 잘 나오지 않으면 급하게 질문을 바꾸거나 방향을 선회하는 임기응변도 필요하다. 사전 준비를 아무리 잘 했어도 현장에서 순간 방심하면 결국 원하는 만큼의 정보는 얻지도 못하고 인터뷰 시간만 허비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인터뷰 하기 전에 함께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하면서 조금의 친분을 쌓고 본격 인터뷰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가 끝나면 이제 녹취록과 메모와 기억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여기가 제일 난감하고 어렵다. 제일 쉬운 방법은 질문자의 질문과 답변자의 답변을 분량에 맞게 옮기는 것인데, 이 경우에도 분량에 맞게 조절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불필요한 표현이나 첨언한 부분들 등을 넣고 빼는 등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답변자의 말투나 늬앙스를 그대로 살려야 하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이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대부분의 경우 전체 글의 구성을 먼저 그린 다음 답변한 내용들을 잘 배치하여 매끄러운 글을 다시 써야 한다. 중간중간에 답변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서 삽입하는 것은 괜찮지만, 기본 글은 인터뷰어가 직접 써야 한다. 이 부분이 참 어렵다.
물론 이건 내 개인의 경험에 따른 평가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나는 한동안 잡지에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는데, 그 몇 달이 너무 힘들었다. 그 후로 절대 인터뷰 글은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 글이 어렵다는 걸 이렇게 길게 나열하며 강조하는 이유는 이 인터뷰를 쓴 기자가 아니 이제 책을 냈으니 이 책의 저자라고 불러야겠군. 암튼 이 저자가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글을 상당히 잘 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 인터뷰만 해도 그렇다. 나는 인터뷰 시간 내내 엄청나게 많은 내용들을 떠들었는데, 나중에 인터뷰를 마치고 과연 이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실은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봤지만, 나중에 기사를 보면 꼭 뭔가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미묘하게 왜곡된 경우가 많았고, 아예 내가 하지도 않았던 표현이나 내용이 들어가있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기사를 읽어보고 내가 만족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번이 거의 유일하게 만족한 경우였다. 정리한 초고를 읽으며 조금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내가 그렇게 어려워하는 인터뷰 글을 이 사람은 참 잘 쓰는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로부터 책이 알라딘에 등록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책을 주문했다. 아직 책을 받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 표지를 보여줬더니, 아이들은 곧바로 내 이름을 찾아냈다. 비록 저자로 이름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인터뷰이로서 올라간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책 표지에 내 이름이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그 전에 공저자로 참여했던 두 권에 책에서는 책 표지에 조금은 유명한 대표저자의 이름만 넣고 나머지 다수의 저자들은 '등' 혹은 '외'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두 번의 경우 모두 여러 명의 '등' 혹은 '외' 중 하나였을 뿐, 표지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다.
공저자로 참여해 짧은 글을 실었던 두 번 모두 여기 알라딘에 책을 소개했을 때, 여러 이웃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반응을 보여주셔서 무척 기쁘고 행복했다. 덕분에 이 알라딘 서재에 정을 붙이고 아직도 이렇게 가끔 들어와 글을 쓰고 또 그리운 이웃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후 언젠가 내 이름을 걸고 책을 낼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늘 이런저런 핑계로 한번도 책으로 엮을만한 글을 써보지 못했다. 기획안을 출판사에 내봤다가 서로 의견을 조정하거나, 출판사를 운영하는 선배가 먼저 기획한 내용을 검토해 본 적은 있었지만, 매번 조율하는 단계에서 더 나가지를 못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댈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내 삶에 책을 쓸 만큼의 여유는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첫 책을 낸 이 책의 저자에게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한다.
이 활동가 모음집은 18명의 활동가들을 소개한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나이도 성별도 활동경력도 활동분야도 제각각이다. 그 다양함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그 각각의 삶을 들여다보기에는 글이 너무 짧다는 한계도 있다. 게다가 글의 촛점은 활동가 개인의 삶에 맞춰져 있어서 관심이 가는 활동을 더 소개해주지 않는 것도 아쉽다. 다만 이 건 저자가 의도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개인적인 취향일 뿐, 글의 완성도와는 관계 없다.
이 책에서 소개한 활동가들 모두 다 훌륭한 분들이라, 여러가지 느낀 점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라 그 삶의 고단함에 대해 무척 공감이 가고, 그 현실의 무게감에 마음이 내려앉기도 한다. 그럼에도 혹은 그래서 더욱 이런 글이, 이런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잘난(돈 많은, 외모가 멋진, 큰 힘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드러나고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전해지면 좋겠다.
※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이웃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제 이야기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맞지만, 꼭 제 이야기를 읽어주십사 추천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훌륭한 활동가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