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0년 만의 교통사고

나는 1990년 초가을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2020년 여름 다시 교통사고를 당했다. 두 교통사고는 인과관계는 없다. 단지 한 두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고, 공교롭게도 거의 30년 차이라는 시간 상의 우연이 존재할 뿐이다. 첫 번째 공통점은 사고가 크게 났다는 것과 큰 사고였음에도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고, 영구적인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이다. 쉽게 말해 사고가 난 것 자체는 운이 나빴지만, 불행중 다행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상태를 다른 말로 악운이 강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악운이 강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이상하게 운이 나쁘다고 여겼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아주 심각한 상황은 피해서 나중에는 원만하게 해결되곤 했다. 물론 이런 경험과 표현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어느 경우에나 대입해 볼 수도 있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알아볼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그 시기가 어떤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첫 사고를 당한 시점이 하필 중학생이어서 그랬겠지만, 그 사고 이후 많은 변화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 이후 나는 갑자기 키가 확 자라고, 근육량이 늘어 육체적으로 성장했지만(실은 그 전에 워낙 키가 작고 비쩍 마른 몸이어서 성장한 후에 간신히 평균적인 키와 몸무게가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도 가족들과 내 삶과 사회에 대한 인식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해 당한 두 번째 사고도 마찬가지다. 이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번 사고가 내 삶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갈 것이다.

이번에 당한 사고로 나는 엄청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다들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도 이번에는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사고 직후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때는 차라리 죽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로 힘들었다. 조금씩 회복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내 삶을 하나하나 돌아보기도 했고, 최근의 내 삶에 대해 짚어보기도 했고, 앞으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어떻게 살아보고 싶은지를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고 틈틈히 메모를 많이 했다. 퇴원 후 처음 할 일을 그 메모들을 정리해나가면서 몸과 마음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회복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건 개인적으로 보관만 할 용도의 아주 자질구레한 것들가지 다 기록한 것과 다른 사람들(특히 사고 이후 회복 경과를 궁금해하는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약간 다듬어진 것으로 나눠서 작성할 예정이고, 이왕 이렇게 글을 쓸 거라면 이곳, 알라딘 공간에 이어쓰면서 전자와 후자를 섞은 버전인 세번째 버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번 사고를 내 삶을 바꾸는 계기로 만드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회복 경과에 따라 달라지겟지만, 아주 천천히 적어나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2. 1990년의 교통사고

당시 중학생이었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깜빡이길래, 빨리 건너야지 싶어서 횡단보도 구획선에서 살짝 아래로 뛰어 건너다가 차에 치였다. 당시 가해 차량은 횡단보도 직전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중앙선을 넘어 버스를 추월하느라 신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차에 차량 우측 사이드미러 쪽 옆면에 부딪혔다가 몸이 공중으로 떠서 차량 반대편의 차도로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고 표현해야 하나. 그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뛰어왔고, 차에 치이는 걸 본 친구와 학생들. 버스 정류장에 계시던 어른들이 내 곁으로 동그랗게 모였다. 내 시야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하늘을 가리는 걸로 보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 쓰러진 사람 위로 얼굴들이 하나 둘 등장해 둥글게 에워싸는 장면이 정말 사실이구나. 내 시야에 정확히 그렇게 보였다. 아, 그리고 잠시뿐이긴 했지만 쓰러진 직후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운전자가 괜찮냐고 묻는 질문과 친구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 나는 차에 치인 줄도 몰랐다. 그냥 무언가 아주 빠르고 단단한 것에 부딪혀 몸이 튕겨 나온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빠르고 단단한 것이 무엇인지 엄청 궁금했는데, 달리는 차였다. 

운전자는 중학생이었던 나를 안아 들어서 차에 태웠다. 혹시 몰라서 옆에 있던 친구도 내 옆에 태웠다. 그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자와 내 친구는 내 상태가 무척 이상하다고 여겼는지 계속 이름, 학교, 집 등을 물어보며 제 정신이 맞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이제 들리기는 했지만, 말은 잘 나오지 않아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점점 감각이 돌아오고 손발 등에 힘이 들어가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몇 군데의 찰과상과 멍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픈 곳이 없다고 여겼다.

나는 2주 진단을 받고 꼬박 2주 동안 병실에 입원해있었다. 차에 치인 충격에 비해 정말 이상할 정도로 다친 곳이 없었다. 어디 부러진 곳도 없었고, 어디가 터지지도 않았다. 의사도 이상하다고 여겼고, 경찰들도 이상하다고 했다. 가끔 이유없이 머리가 아프긴 했다. 가족들과 의사는 혹시 뇌에 어떤 충격을 받았을지를 걱정했고, 혹시 나중에 후유증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머리를 다치긴 했는데, 결국 그로 인해 크게 어떤 손상을 입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후로 친구들은 가끔 농담을 하긴 했다. ˝네가 그날 머리를 안 다쳤다면 완전 천재였을텐데, 머리를 다쳐서 이런거야.˝ 뭐 이런 류의 농담들. 중,고등학교 시절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성적은 늘 상위권에 아슬아슬하게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아주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성적을 보고 말한 것이었으리라.

그 사고 이후 나는 그 전부터 느껴왔던 사회의 부조리를 보다 직접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나중에 교통사고로 인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실제로 나를 친 차량과 나중에 서류 상으로 확인한 차량이 달랐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사고 차량은 픽업이었다. 예전에 우리 집에 픽업이 있었기 때문에, 픽업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내민 서류에는 세단이라고 부르는 승용차였다. 아마도 보험 때문에 차를 바꿔서 신고한 것 같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횡단보도 위를 건너지 않고 횡단보도 구획선에서 몇 미터 아래를 건넜기 때문에 보행자인 나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가해 차량측 보험회사에서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 이슈는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 법적으로 횡단보도 인근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보행자 과실이 없는 것으로 법적 보완이 된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 당시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장소는 약간의 특수성이 있는데, 학교에서 나온 골목길과 그 옆의 산 아래로 내려가는 내리막길과 내가 건너서 올라가려는 임대아파트 진입로 길이 모두 횡단보도 보다 몇 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었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학생들과 어른들은 모두 횡단보도까지 가서 건너지 않고 그냥 그 몇 미터 아래의 차도를 건넜다. 오히려 횡단보도까지 몇 걸음을 걸어갔다가 횡단보도 구획선 안에서 걸어서 건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루종일 그 교차로에서 서 있어도 몇 명 발견하지도 못 햇을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아버지의 지시로 내가 그 사실을 터트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우리가 병원 치료를 원활하게 받으려면 보험이 필요하니 그냥 못 본척 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속으로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문제는 당시 지방법원 행정관으로 일하던 친척의 개입으로 해결되었다. 이런 식의 해결 자체도 나로서는 문제라고 느꼈지만, 나는 중학생이었고, 어른들의 일 처리에 대해 개입하지 못했다. 암튼 그렇게 고위직도 아니었던 친척이 전화 한 통 하자마자 상대측 보험사는 두말없이 이 부분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그 횡단보도는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위치로 내려왔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봐도 신기할 정도로 다치지 않았던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당시의 사고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30년이 지나 두 번째 교통사고는 이 사고와는 완전히 다르게 아주 크게 다쳤다. 아주 심각하게 다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고, 나 자신도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은 아무리 후회해도 다시 바꿀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얼마나 잘 회복하느냐 하는 일이다. 나는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고, 지금 쓰는 이 글은 그 회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일단 첫 글을 이렇게 시작하고 다음 글에서 사고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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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21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지금은 좀 괜찮으신거죠?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정말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교통사고는 휴유증도 크니까 모쪼록 잘 괸리하셔서 건강 회복하시길 빌어요

감은빛 2020-08-21 19:36   좋아요 0 | URL
네, 바람돌이님. 다행히도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요. 염려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조선인 2020-08-21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알라딘에 글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회복되신 거죠? 천만다행입니다. 부디 쾌차하시길.

감은빛 2020-08-21 19: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조선인님. 다행히 많이 회복되어 이렇게 알라딘에 글도 남겼습니다.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8-2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빠른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감은빛 2020-08-21 19:4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더 빨리 회복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2020-08-21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8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0-08-2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쾌유를 기원합니다.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감은빛 2020-08-28 20:0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안녕하세요.
덕분에 빨리 낫고 있나봅니다. 고맙습니다!

syo 2020-08-22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 이런 사연이.... ㅠㅠ
얼른 완쾌와 함께 만나요...

감은빛 2020-08-28 20:07   좋아요 0 | URL
쇼님.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그간 이런 일이 있었네요.
다 나으면 연락드릴게요.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8-22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는 이야기 같군요. 일단 이렇게 글을 쓰신 걸로 보아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읽으면서 명이 긴 분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 또는 경험이 그 사람의 미래 인생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걸로 믿는 저로선 감은빛 님이 보통 사람과는 다른 뭐가 있을 거라 여겨지기에 글을 쓰기로 한 것은 잘한 것 같습니다. 글 쓰면서 머릿속 정리도 하고 마음 치유도 되리라 봅니다.

얼른 완쾌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20-08-28 20: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말씀처럼 빠르게 낫고 있어서 이렇게 알라딘에 글도 쓰고 있어요.
이번 경험을 잘 갈무리해서 전환점으로 삼고 싶어서
그걸 정리하는 글을 폰에 계속 메모하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또 여기 알라딘에는 어느 정도로 내용을 정리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저 혼자만 보려고 정리한 글은 정말로 양이 많거든요.

덕분에 잘 낫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0-08-2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2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