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 -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혜진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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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인간의 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사유 그 자체이기도 해서 어떤 유행보다 더 빨리 소모되고 교체된다. 그럼에도 기어코 소모되거나 교체되지 않는 작가를 우리는 문호라 부른다. (12쪽)

원문에 대한 집착에이라는 함정에 빠지려 할 때면 문득 편집자의 감각이 깨어난다. 원어를 그대로 옮기려는 번역자로서의 나와, 좀 더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우리말 읽듯 번역서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 사이 어디쯤에서 말이다. (39쪽)

좋은 글이란 빼어난 글솜씨로 쓰인 문장들의 묶음이 아니라 정돈된 사유를 탁월하게 표현한 글이고, 좋은 책이란 존재 이유가 명확한 책이다. (46쪽)

자신의 진실성에 대한 책임을 자질로 거론할 수 있는 드문 직업이 편집자다. 한편 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눈에 비치는 현실이 폐허라면, 그것을 냉철히 응시하고 묘사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의무와 편집자의 의무가 다르지 않다. (52쪽)

결국 책을 통해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 삶을 바꿀 이야기와 만난다는 것은 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지길 기다리기보다 훈련을 거쳐 인생 문장과 의미를 찾아 나서는 행위에 가깝다는 메시지다. (76쪽)

널리 읽히고 많이 팔린다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니며 좋은 책이라도 안 읽히고 안 팔릴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내가 참여한 책은 내재적 가치는 물론이고 대중적 호응도 뛰어나기를 바라는 욕심이 생겼다.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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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처음 만난 산문집, 표지의 사진이 강렬하다.

최승자 시인의 1976년부터 1989년까지, 1995년부터 2013년까지 기록을 읽었다.

노정이 들어 있다. 가위눌림으로 시를 형성하고, 정신분열증에서 문학으로까지... 

개인의 오래된 기록물에서 무엇을 알고자, 얻으려고 했을까. 

어쩌면 시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기록일 수도 있다.

시인은 이 수필집을 내고 싶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출판사에 대한 채무감을 말하고 있지만, 

시인의 보드랍고 깨질듯한 감성으로는 아예 거절은 어려웠을 거라, 맘대로 짐작한다.  

시인에게 살아 갈 힘, 사랑하는 게 아직까지 남아 있기를 바란다. 시인이 쓴 소설로 만나길...


189쪽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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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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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내 인생을 눈치챘다. 그래서 사람들이 희망을 떠들어댈 때에도 나는 믿지 않았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언제나 확실한 절망을 택했다. 그러나 애초에 나는 내가 백조라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미운 오리 새끼라고 손가락질할 때에는 나는 속으로 코웃음만 친다. 그리고 잡균 섞인 절망보다는 언제나 순도 높은 희망을 산다. 생각해보면, 우우, 지겹고 지겹다. 눈 가리고 절망하기, 눈 가리고 희망하기. 아옹! 아옹! (1981)(22쪽)

존 스타인벡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떠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떠나는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그것이 특히 정신적 현실로부터 떠나는 것일 때에는, 몹시 어렵다. 왜 떠난다는 것은 그처럼 어려운 일일까? 글쎄, 시인 이성복의 시([다시 정든 유곽에서])를 인용하자면, ‘철들면서 변은 변소에서 보지만 마음은 변 본 자리를 떠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984)(58쪽)

인간은 강하되, 그러나 그 삶을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아주 떠나지는 못한 채, 그러나 수시로 떠나 수시로 되돌아오는 것일진대,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은가 한 번 물으면 어느새 비가 내리고, 그 삶을 위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하였는가 두 번 물으면 어느새 눈이 내리고, 그사이로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캘린더가 한 장씩 넘어가버리고, 그 지나간 괴로움의 혹은 무기력의 세월 위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어놓고 보면, 사랑인가, 작은 회한들인가, 벌써 잎 다 떨어진 헐벗은 나뭇가지들이 유리창을 두드리고, 한 해가 이제 그 싸늘한 마지막 작별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1984)(59-60쪽)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죽음을 보고 겪게 되고, 그리고 그때마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점검하게 된다. 나 역시 앞으로 더 많은 죽음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을 수시로 되돌아보게 되리라. 마침내 내가 나 자신의 죽음을 보게 될 때까지. (1986)(96쪽)

앞서 나는 1980년대는(그리고 1970년대는) 내게 가위눌림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가위눌림을 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이 그것을 구체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가위눌림에 대하여 시적 저항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저항은 강한 비명과 비탄, 과격한 에너지를 가진 어휘들과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앞서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많이 기대어 왔다고 고백한 것은. 나를 짓누르는 그 가위눌림에 관하여 그것의 실체나 구조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거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한 채, 무섭다고 싫다고 비명을 지르기만 했다는 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89)(140쪽)

내 병의 정식 이름은 정신분열증이다. 거진 다 나았어도 아직은 약을 먹어야 한다. 12년째 정신분열증과 싸우다보니 몸도 마음도 말이 아니다. (중략) 정신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은 한 5년. 퇴원하여 두세 달 후에 보면 약을 안 먹고 밥도 안 먹고 있는 꼴을 보게 된다. (중략) 이 짓을 최근 몇 년간 되풀이하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2010)(172-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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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박한 밥상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특효약이 되는 것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리라. 우리가 경험하는 '양가감정, 자존감, 분노, 열등감, 후회, 불안, 허영, 획일화, 애착, 권태, 몰입, 승화, 자기실현 등등'의 감정들을 그녀 또한 느끼면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면서, 추억 속의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으로 치유한 글이다. 물론 공부했기에 연결하고 통찰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음식은 중요하다. 인간의 욕구 중 하나이기도 하니.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달라진다고 본다. 먹고 자란 음식은 곧 삶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가끔 70년대 여고시절, 도시락에 샐러드를 싸 온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계란, 소세지, 멸치, 김 등이 최대치였던 나는 그 샐러드가 너무도 신기했다.

엄마의 생신으로 모였다. 뷔페식으로 불러서 먹었다. 엄마는 남의 음식을 잘 드시지 않는다. 음식 솜씨가 워낙 좋으셔서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었던 이들은 만날 때마다 추억을 들려준다. 매년 김장김치와 무말랭이 김치는 공수받고 있다. 갈 때마다 고등어조림, 코다리조림, 미역국, 나물무침 등등은 과식에 과식을 부르니, 당신에게 식당 음식은 도저히 입에 맞을 수가 없으리라. 엄마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정성을 쏟아 부은 음식이 지금 우리가 살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아빠는 매 순간 진실과 성실 그 자체였다. 가장 큰, 기도 손도 있다.

나의 부엌은 퇴직 후에 시작된 것 같다. 이러이러한 음식에 대한 추억을 말하는 아들과 남편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긴 했구나, 하는, 어쩌면 그리하여 자꾸만 뭔가를 만들려는 모드로 변해있다. 무의식적으로 주문한 재료를 대하는 순간, 후회가 밀려오지만 벌써 재료를 다듬고 있고, 오늘도 새벽배송으로 온 닭으로 백숙을 하려하니. 

음식은 온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만든 이의 정성이 먹는 이의 마음을 녹이고 다독이는 역할을 하는구나. 그래서 '밥은 먹었니'를 묻게 되고, 밥상에 둘러 앉아 먹으면서, 개개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감정들이 하나씩 치료받게 되는구나. 어떨때는, 마음이 아주 불편할 때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하니... 어린 시절 삐쳐있을 때, 엄마가 한 숟가락씩 먹여 준 일도... 일단 밥은 꼭 먹도록, 먹이도록, 해야겠다.ㅎ          


May your Christmas be happ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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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유하는 부엌 - 삶의 허기를 채우는 평범한 식탁 위 따뜻한 심리학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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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 인생이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는다. 모와 도 사이에는 둘을 이어줄 개와 걸, 윷이 필요하고 흑과 백 사이에는 다양한 색들이 존재한다. 슬픔과 기쁨은 분열되어 대치 상태에 놓인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극단적 슬픔에 빠졌을 때는 훌훌 털고 일어날 힘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감정이 필요하다. 주체하기 힘들 만큼 기쁠 때도 자칫 판단력을 잃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감정을 추스르고 누그러뜨릴 수 있는 냉정함이 필요하다. (25쪽)

우리는 나의 선택이 스스로의 이성과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무의식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한 행위다. 어떻게든 그때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선택을 아쉬워하는 후회는 감정 소모에 지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후회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두 배로 불행하고 두 배로 무능하다"라고 말했다. (108쪽)

삶은 수많은 변수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들을 변칙이 아닌 지극히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 살아가는 과정임을 깨우친 것은 나이 들어가며 얻은 큰 수확이다. (126쪽)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삶의 연장선에서 너무도 중요한 시간이다. 나는 과거에 엄마의 집밥을 먹으며 성장했고, 앞으로 남은 깃털처럼 많은 날 동안 수많은 음식을 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나의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것은 이 순간 내 입과 혀로 온전히 느끼며 경험하는 현재의 음식이다. 그렇기에 매 순간 정성 들여 차린 밥상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187쪽)

"나는 언제쯤이면 이 모든 것을 초탈할 수 있을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생각지 못한 일을 겪고 나니 별일 없이 무탈하게 반복되는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에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고 행복한 그 일상에 파묻혀 한껏 즐기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완전히 고유한 ‘나다움‘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초탈의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선을 긋고,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또는 삶‘이라 거부하던 모든 것들과 마주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서서히 나에게 스며드는 것이었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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