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유럽은 사랑스럽고 그립다
박신형 지음 / 알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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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에는 ‘침묵의 숲‘이 있다. Silence forest. (중략) 숲 전체에 고요함이 흐르고, 바람 소리와 새 소리, 그리고 작은 웃음소리만이 들리는 아름다운 침묵의 숲. 때로는 끊임없는 설교나 말보다, 쓰다듬어지지 않는 소용없는 위로보다,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무수한 말들보다, 침묵이 무엇보다도 크고 단단한 위로임을 때때로 알고 있나 보다. (67쪽)

가보고 싶은 곳과 살고 싶은 곳에는 차이가 있다. 나에게 프라하는 살고 싶은 곳,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중략) 왜 하필 프라하냐고 묻는다면, 콕 찝어서 ‘이것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사실 좋아하는 데에, 사랑에 빠진 데에 명확한 이유를 대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려우니까. (136쪽)

좋아하는 것은 왠지 넉넉하지 않고, 다들 원하며,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아끼게 되고,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법칙인가보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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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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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모인 티셔츠 얘기로 책까지 내고 대단하다. 흔히 ‘계속하는 게 힘‘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그렇군. 뭔가 나 자신이 계속성에만 의지하여 사는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6쪽)

입지 못하는 티셔츠는 어떤 기준 같은 게 있나요? 에세이 내용 중에도 이건 입을 수 있고 이건 입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데, 어떠세요?
"있죠.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입지 못하는 티셔츠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결국 시선을 끌고 싶지 않은 거죠. 되도록 숨어서 조용히 살고 싶어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서점에 갈 때도, 디스크 유니온에 갈 때도 누구 눈에 띄는 게 거북해요. 티셔츠를 입는 건 괜찮은데 시선을 끌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제한적이에요. 티셔츠 자체는 멋진데 개인적으로는 입지 못하는 게 꽤 있습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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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답게 나이 들기로 했다 - 인생에 처음 찾아온 나이 듦에 관하여
이현수 지음 / 수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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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A. 싱클레어는 자신의 책에서 인체의 분자 규모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생각하면 "우리가 80세 이상 산다는 것은커녕, 아니 번식 연령기까지 산다는 것은커녕, 30초를 산다는 것조차 경이롭다"고 말한다. 그렇다는 것이다. (92쪽)

다시 말하면, 당신이 오늘 먹는 음식, 긍정적인 마음, 운동 등이 내일의 당신의 모습을 결정 짓는다는 것이다. (98쪽)

에릭 켄델은 ‘운동‘이 뼈의 질량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노화 관련 기억 감퇴를 완화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즉 기억 감퇴를 막는 것은 특정 물질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못박은 것이다. (107쪽)

인생 후반기에 자신의 존재감이 한번 크게 역전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역전의 주체는 아파트나 고급 차나 직업이 아니다. 자식의 성공은 더욱 아니다. 본인의 건강이다. (118쪽)

그래도 최대한 자연에서 난 그대로의 식품을 많이 먹고 그렇지 않은 것은 최소한으로 먹어야 한다. 그 이유는 영생하기 위해서도, 아주 오래 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저 사는 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다. (150쪽)

‘내가 늙었다‘는 것을 ‘객관적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현실‘이다. (210쪽)

음식, 운동, 스트레스 관리 외에 치매 전문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인지예비능이다. 인지예비능이란 뇌가 손상을 받았을 때 손상을 이겨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략) 인지예비능을 갖추기 위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것에는 새로운 언어 배우기, 악기나 댄스 배우기, 컴퓨터 프로그래밍 배우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전공분야 가르치기, 아이들 가르치기, 공예나 미술, 대학 수업 듣기와 같은 학습 활동이 대부분이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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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깊이 - 공간탐구자와 함께 걷는 세계 건축 기행
정태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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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전쟁과 폐허와 애도와 재건의 땅이다. 이제는 통일이 되어 분단국가가 아니지만 우리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나라다. 특히 베를린은 애도의 도시이다. 그러나 직접 가본 베를린은 우리처럼 휴전선 남쪽과 북쪽으로 나늰 절대적 경계가 아니었다. 또한 여전히 전쟁의 폐허 위에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최첨단의 새로운 현대 건축물이 즐비해 있는 사이사이로 추모공간들이 많다. 전쟁과 역사의 흔적을 없애버리지 않고 일상에서도 인식하려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도시의 공공 공간은 애도의 장소로 채워졌다. 애도의 공간을 일상의 공간과 접목하려는 건축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24쪽)

일본은 자신의 원시 문화와 서양 문화를 섞어 특유의 현상학적 건축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오사카와 교토다.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동양의 사상과 전통에서 찾은 일본성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서양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와 빛고 물 등의 자연을 이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공간의 시를 만들었다. 인공미의 극치라는 일본 전통 건축과 정원 만드는 솜씨를 보면 자연을 다루는 것이 마치 스시를 만드는 칼을 다루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냉정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또는 화려하게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사용방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의 생각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자연과 같이 공생하거나 자연을 필요한만큼만 빌려 쓴다는 한국 전통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98쪽)

종합운동장의 햇빛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등나무를 심어 그늘막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고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무주 종합운동장 같은 그늘막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가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고민하고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는 프로젝트이다. 자연을 개발하기보다 적절하게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필요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 지식이 뛰어난 의사보다 애정이 있는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하듯이 애정이 담긴 건축가의 손길이 우리의 사회 구석구석에 닿기를 바란다. (163-164쪽)

몇 번을 가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자 오렌지 꽃향기의 낭만이 흐럴넘치는 곳, 그곳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전통 디테일과 버금가는 것이 현대 건축의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다. 특히 프랙털 구조를 이용한 디자인은 작은 유닛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스케일이 커지고 그 자체가 구조와 공간이 된다. 지난 역사의 장식을 배제하는 것만이 현대 건축의 길이 아니다. 현대 건축가들은 장식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동시에 구조와 공간이 되는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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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말들 -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겨울 지음 / 유유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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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박해졌다.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고, 작은 글씨를 무리 없이 볼 수 있고, 좋은 자세로 앉아 있을 수 있고, 활발하게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몇십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hide in plain sight‘라는 영어 표현처럼 늘 같은 자리에 존재했으나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종류의 진실이었다. (27쪽)

글은 쓴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일부를 보여 준다. 그것은 전부가 아니며 또한 외면이 아니다. 책은 저자가 아니라 저자가 가진 일부를 뽑아내 차근차근 꿰어 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모두가 허구인 것도 아니다. 그러한 내용은 분명히 그의 안에 존재한다. 혹은 그 내용이 그의 핵심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책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저자에게서 분리되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동시에 저자의 핵심적인 일부로 존재한다는 아이러니 상태에 처해 있다. (95쪽)

살아가는 일은 몸에 갇히는 일과 다름없다. 몸이 썩어 없어지리라는 확신, 무슨 짓을 해도 늙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 더럽게도 말을 들어 먹지 않는 장기와 근육과 온갖 액체를 무사히 먹이고 재우고 이끌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움직인다. 그것이 그토록 지난한 일인데도 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몸이 곧 인간이며, 몸을 지겨워하는 것이 인간이고, 몸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이므로. (123쪽)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탐구하고 수도하고 가르친다는 일이 아직도 이렇게나 남자의 몫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변하리라는 느슨한 낙관만으로 참고 기다리기에 세상은 이미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루빨리 더 많은 여성이 철학과 종교에 깊숙이 관여하기를 바란다. 그럼으로써 철학과 종교는 무너지는 대신 더욱 깊어질 것이다. (125쪽)

우리는 자연을 자원화해 왔고, 인간의 육체노동을 자원화해 왔고, 정신노동을 자워노하해 왔으며, 마침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자원화하기에 이르렀다. 취미와 취향과 신념과 원칙은 이제 상품이 된다. 내가 나라고 믿는 것은 알고리즘의 재료가 된다. (중략) 우리는 상품으로 태어나 상품으로 죽을 것이다. 우리는 지구를 먹어 치우는 거대한 동물인 동시에 낱낱이 파헤쳐지는 거대한 광산이다. 아니, 우리는 낱낱이 파헤쳐지기에 더욱 먹어 치우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133쪽)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으니까, 좀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사회에서 규정한 ‘낭비‘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 나를 여러 번 타일러야 했다. 사실은 ‘그럴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오랫동안 세뇌된 한국 사회의 가치관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진짜 낭비, 그러니까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연습도 하지 않고 공연도 하지 않고 맥주만 마시는 그런 시간 낭비를 하면서, 진은영의 ‘대학시절‘ 같은 시를 읽으면서, 침대에서 구르며 갑갑해했더랬다. (151쪽)

책은 저자의 경청과 독자의 경청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 지쳤을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바쁠지도 모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에는. 그래서 ‘영화 결말 포함 줄거리‘와 ‘노래 후렴 모음‘과 ‘소설 줄거리 요약‘의 힘을 빌려 재미를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179쪽)

책이 암호며 퍼즐이며 도랑이며 죽비가 된다는 사실은 늘 놀랍다. 책의 바다에 빠져 어리석게 죽을까 봐 책은 책일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책은 책만이 아니라고 자꾸만 말하고 싶어진다. 삶보다 못한 것을 삶보다 위대하다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그래도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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