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깊이 - 공간탐구자와 함께 걷는 세계 건축 기행
정태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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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전쟁과 폐허와 애도와 재건의 땅이다. 이제는 통일이 되어 분단국가가 아니지만 우리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나라다. 특히 베를린은 애도의 도시이다. 그러나 직접 가본 베를린은 우리처럼 휴전선 남쪽과 북쪽으로 나늰 절대적 경계가 아니었다. 또한 여전히 전쟁의 폐허 위에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최첨단의 새로운 현대 건축물이 즐비해 있는 사이사이로 추모공간들이 많다. 전쟁과 역사의 흔적을 없애버리지 않고 일상에서도 인식하려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도시의 공공 공간은 애도의 장소로 채워졌다. 애도의 공간을 일상의 공간과 접목하려는 건축가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24쪽)

일본은 자신의 원시 문화와 서양 문화를 섞어 특유의 현상학적 건축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오사카와 교토다.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동양의 사상과 전통에서 찾은 일본성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서양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와 빛고 물 등의 자연을 이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공간의 시를 만들었다. 인공미의 극치라는 일본 전통 건축과 정원 만드는 솜씨를 보면 자연을 다루는 것이 마치 스시를 만드는 칼을 다루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냉정하게 때로는 교묘하게 또는 화려하게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사용방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의 생각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자연과 같이 공생하거나 자연을 필요한만큼만 빌려 쓴다는 한국 전통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98쪽)

종합운동장의 햇빛 아래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관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등나무를 심어 그늘막을 만드는 것은 간단하고 단순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무주 종합운동장 같은 그늘막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건축가가 어떻게 사회를 바라보고 고민하고 애정을 가져야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되는 프로젝트이다. 자연을 개발하기보다 적절하게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필요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건축. 지식이 뛰어난 의사보다 애정이 있는 의사가 환자에게 필요하듯이 애정이 담긴 건축가의 손길이 우리의 사회 구석구석에 닿기를 바란다. (163-164쪽)

몇 번을 가도 다시 가고 싶은 곳이자 오렌지 꽃향기의 낭만이 흐럴넘치는 곳, 그곳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의 전통 디테일과 버금가는 것이 현대 건축의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다. 특히 프랙털 구조를 이용한 디자인은 작은 유닛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스케일이 커지고 그 자체가 구조와 공간이 된다. 지난 역사의 장식을 배제하는 것만이 현대 건축의 길이 아니다. 현대 건축가들은 장식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동시에 구조와 공간이 되는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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