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겔만 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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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아버지께서 책 몇 권을 손에 들고 오셨다. 그 가운데 한 권이 '오 헨리 단편선'이었다. 꼬마였던 나는 그 책이 좋았다. 웃음 안에 따뜻함이 있었다.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은 많은 분들도 아시리라. 지금, 여기에서,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를 생각해본다. '경찰관과 찬송가'라는 이야기. 거리에서 생활하는 소피. 그는 감옥에 가려고 한다. 추운 겨울에 섬의 피난처라 부르는 그곳에서 지내려고 한다. 그 소피와 동병상련인 할머니가 계시다. 이분은 노인 요양소에 계신 분. 친구분들과 함께 감옥에 가고자 하신다.


 오 헨리의 '경찰관과 찬송가'에서 소피는 감옥에 가는 법으로 여러 가지를 실천한다. 음식점에서 돈 없이 식사. 거리에서 치한 수작. 길에서 풍기 문란 행위. 어느 신사의 우산 절도까지 모두 실패. 음식점의 웨이터는 내쫓기만 하고. 희롱을 당한 여인은 유녀(遊女)였고. 풍기 문한 행위는 승리 축하 소동이라 여기고. 절도한 우산은 원래 주운 우산이었고. 그런데, 우연히 들어간 교회. 그곳에서 찬송가를 듣는다. 찬송가의 울림으로 소피는 마음을 바꾸게 된다. 열심히 살겠다고. 일자리를 얻겠다고. 바로 그 순간, 경찰관은 그를 잡아가고. 결국 감옥에 가게 된다.


 79세의 메르타 안데르손 할머니는 스웨덴의 다이아몬드라는 노인 요양소에 계신다. 요양소의 원칙은 8시 취침, 간식 금지, 산책은 어쩌다 한 번만. 이것이 불만인 할머니. TV에서 감옥을 보게 된다.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시키는 감옥. 그 매력에 감옥에 가고자 하신다. 혼자가 아니라 요양소 합창단 친구분들과 함께. 그렇게 5인조 노인 강도단이 된 노인분들. 계획은 국립 박물관의 미술 작품 가져오기. 그림값 천만 크로나를 받으면 돈을 잘 숨겨 두었다가 그림을 돌려주기. 출소 후, 그 돈으로 행복한 노후 보내기. 그분들, 용감하게 모네와 르누아르의 작품을 가져온 후, 모작으로 위장. 그림을 호텔 방에 두신다. 그런데, 폭풍우에 돈의 절반을 소실. 게다가 호텔 방에 둔 그림은 행방이 묘연. 노인분들은 아연히 계시다가 경찰서에 자수. 그러나 아무도 믿는 이는 없고.


 '낙엽 지는 황혼기를 맞아 인생을 조금 즐겨 보고 싶은 노인들이 강도가 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면 그 사회는 분명 뭔가 잘못된 사회임에 틀림없다.' -208~209쪽.


 나무들 다 가을빛 지니는 이때. 삶에도 가을빛을 지니는 때가 온다. 그리고 오늘처럼 비바람이 있는 날. 낙엽이 지고. 그 낙엽 지는 황혼기를 맞은 노인분들. 메르타 할머니와 그 친구분들. 그 개성으로 해학이 묻어나는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오 헨리가 지은 '경찰관과 찬송가'의 소피도 웃음을 짓게 하고. 닮은 이 두 이야기의 큰 이야기는 감옥에 가는 법 실천. 그 웃음 안에 따뜻함을 남긴다.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나누며, 도움을 주게 되는 따뜻함. 어릴 적, 할머니께서 꼭 쥐어 주시던 손으로 이어지는 그 따뜻함. 소중히 간직하게 된다. 메르타 할머니. 그리고 친구분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웨덴의 노인분들은 그분들이 됐다. 아, 미국의 소피 아저씨도 잊지 않겠다.

 

 

김정희, <대팽고회> 1856년(71세), 129.5x31.9cm, 간송미술관 소장.

 

 푸짐하게 차린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각, 나물이고 大烹豆腐瓜薑菜

성대한 연회는 부부, 아들딸, 손자라네 高會夫妻兒女孫

 

 추사 김정희 할아버지의 대련이 있다. '대팽고회'라는 대련. 중국 명나라 문인 오종잠(吳宗潛)의 「중추가연(中秋家宴)」이란 시에서 연유한 것이라 한다. 성대한 연회는 부부, 아들딸, 손자라고 말씀하시는 추사 할아버지. 여백에는 이것이 시골 서생에겐 제일가는 즐거움이라 하셨고. 이런 것이 소확행. 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런지. 그것이 최대의 행복이고. 추사 할아버지도 깊게 느끼셨을 듯. 이런 행복을 많은 노인분들이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르타 할머니와 그 친구분들이 감옥 가기 계획을 세운 건 소박하지만 큰 행복에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웃음 안에 따뜻함으로 이런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 달리는 메르타 할머니와 친구분들. 나도 힘차게 응원을 한다. 이분들의 외침을 들으며. 언제까지나.  

 

'우리를 위하여! 최대한 행복해지려고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576쪽.

 

 이 글의 마지막에 갑자기 사진첩에서 외할머니 사진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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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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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이 있었다. 대체로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는 그 사람. 그 사람을 오랫동안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서서히 다가갔다. 더 좋아지고 싶어서. 그런데, 무반응. 그래서, 결심하고 확인했다. 마음이 악보처럼 접히지 않는다고. 마음을 서로 맺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큰 용기였다. 다음 날, 나에게 온 답은 거절이었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마음이 아팠고, 이어서 몸도 아팠다. 지금도 그 아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다시 시작되는 아픔. 비록 외사랑이었지만, 깊은 사랑이었기에 그런 듯. 이제 잊도록 해야 하겠지. 어떻게 놓아주어야 할지 몰라 볼 때마다 멀리하게 된다. 얼마 후면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 그 사람. 슬픈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 모질지 못한 나는 좋은 말만 하겠지. 눈물이 앞을 가리어 보이지 않아도. 사랑했지만, 보내주어야만 하는 나. 또 다른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공명(共鳴)했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7쪽.


 '이틀 전, 만약 누군가 그녀더러 남편을 사랑하냐고 물었다면 그녀는 "그럼."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사실, 누군가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던 순간 같은 질문을 했다면 그녀는 "그럼."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9쪽.


 사랑하지만, 남편에게 죽음을 선물한 여인, 레이철. 어쩌다가 그랬는지. 그녀는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와 살았다. 유명 작가이지만, 독단적인 어머니, 엘리자베스 차일즈와 함께. 어머니와 어긋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산 레이철. 그녀가 대학생 때, 어머니는 교통 사고로 생명을 잃는다. 이제, 유산을 받은 레이철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아는 건, '제임스'라는 이름. 대학에서 가르쳤다는 사실. 또, 그녀가 본 마지막 뒷모습. 사설 조사원 브라이언 델라크루아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받은 건 충고와 거절. 아버지는 과연 어디에. 그리고 몇 년 후, 레이철은 유능한 기자가 된다. 그녀의 이름을 듣고 찾아온 사람으로부터 아버지의 실마리를 찾고. 결국 제러미 제임스라는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그는 친부가 아니었다. 기자인 레이철. 특파원이 되어 7.0의 지진이 난 아이티로 향하고. 그곳의 참상. 그리고 강간, 죽음. 아픔의 소녀들을 보고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생방송에서. 유튜브로 널리 퍼진 영상. 그녀는 이혼과 해고를 당하고야 만다. 세바스찬과 이혼. 기자직에서 해고. 그리고 공황 발작과 대인공포증이 거칠게 찾아오고. 그런데, 우연히 브라이언을 다시 만나고. 그의 사랑으로 공황 발작과 대인공포증이 잠잠하게 된다. 그렇게 브라이언과 2년 동안 사랑의 힘을 느낄 때였다. 레이철이 그가 없어야 할 곳에서 브라이언을 본다. 이 남자, 뭔가 수상하다. 그의 비밀은 뭘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ㅡ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ㅡ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1925), 진달래꽃, 매문사, 190-191.


 이별의 정한(情恨).1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는 체념도 아니고,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님도 아니지만, 레이철은 남편 브라이언과 스스로 이별한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라는 사랑. 님의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이별의 슬픔을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또, 그 아픔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는 인고(忍苦). 사랑, 비애. 인고는 시 '진달래꽃'과 이어진다. 그 울림이 어울린다.


 '이게 어떻게 끝날진 모르겠어. 내 진짜 위치를 모르겠어. 그녀는 어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유일한 답은 더 깊은 어둠뿐이었다.
 하지만 위층에는 빛이 있을지도 모르고 다시 밖으로 나가면 분명 빛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운명의 장난으로 빛이 없다면, 세상에 남는 것이 밤뿐이고 빠져나갈 길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밤과 친구가 될 것이다.' -495쪽.


 레이철과 브라이언. 그들이 추락한 이유는 사랑의 어둠 때문이었을 것이다. 레이철로 인한 브라이언의 죽음. 서로 사랑했지만 생사의 강으로 이별했다. 그래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2 날개가 있기 때문에 날고 날기 때문에 추락할 수 있는 것이다. 레이첼과 브라이언은 사랑했기에 날았고, 또 사랑했기에 추락했다. 사랑이 날개였다. 이제 레이철은 사랑하기에 다시 날 것이다. 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녀이기에.


 몇 년 전, 우연히,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라는 영화를 보았다. 굉장했다. 그리고, 그 원작이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데니스 루헤인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 '우리가 추락한 이유'도 그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다른 듯하다가 역시 그였다. 힘차면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의 손. 달의 뒷면까지 비추는 듯한 그의 냉철한 눈. 잘 어우러져 있다. 차분히 이어지던 이야기가 급류를 만난 듯 몰아치고. 그와 함께 발자국을 남기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다. 사기꾼, 살인, 탐욕, 복수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AP)'라는 평. 정말 적절하다. 내 사랑의 아픔에도 깊은 위로를 받았다. 아, 갑자기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듣고 싶어진다. 이 작품을 되뇌며, 내 사랑을 보내며, 듣고 싶어진다.       

     


 

  1. 시 '진달래꽃'의 해설은 두산백과 참조.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4767&cid=40942&categoryId=32868 )
  2. 이문열의 소설 이름이다. 또 이 소설이 원작인 동명의 영화도 있다. 이 이름은 잉게보르크 바하만(Ingeborg Bachmann)의 시집 제목이자 시구에서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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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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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방불패(笑傲江湖 之 東方不敗: Swordsman II, 1992)'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옛 무림에 동방불패라는 분이 계셨다. 절대 고수셨지. 김용 선생께서 만드신 인물. 일월신교의 교주로 규화보전을 익힌 마성의 인물. 영화에도 나오신 동방불패. 그때의 많은 남정네들은 임청하 누님의 그 동방불패를 잊지 못했지. 충격이었고, 동경이었던 동방불패. 그렇게 많은 날을 설레며 보냈고. 지금, 맥베스를 그리며, 옛 동방불패, 그분이 다시 다가온다. 빗나간 야망을 품었던, 맥베스와 동방불패. 그 둘은 닮았다.  


 맥베스. 빗나간 야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파멸의 상징이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도 그렇고, 요 네스뵈의 맥베스도 그렇다. 사실, 옛 기억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얼개만 남아 있었다. 이제, 요 네스뵈의 '맥베스'를 통해 다시 조각이 이어졌다. 그렇게 '맥베스'의 흐릿한 얼굴이 분명해졌다.  


 ''맥베스'의 무대는 실업과 마약 조직, 부패한 정부, 산업 오염으로 신음하는 1970년대의 어느 도시다.' -'작가의 말' 중에서. (5쪽).


 그 도시에 새로운 경찰청장이 앉는다. 그 이름은 덩컨. 강직한 그는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특공대장이었던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장에 앉힌다. 이때, 이 도시의 큰 암흑인 헤카테는 덩컨을 없애려고 하지. '약쟁이나 도덕주의자보다 더 예측하기 쉬운 부류가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사랑에 홀딱 빠진 약쟁이 겸 도덕주의자야(131쪽)'라고 말하며, 맥베스의 칼을 덩컨에게 향하게 하려고 한다. 세 자매를 보내, 맥베스가 경찰청장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해서. 그 예언으로 맥베스의 애인인 레이디를 움직이게 해서. 결국, 덩컨은 맥베스의 칼에 쓰러지고, 맥베스는 경찰청장이 된다. 그러나, 공포, 불안과 악몽으로 무너지며 파멸하는 맥베스. 물론 레이디도 함께.  


 동방불패. 이 또한 빗나간 야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파멸의 상징이고. 일월신교의 교주인 임아행을 가두고 새로운 교주가 되지. 그가 익힌 규화보전의 위력으로. 그런데,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서는 남성을 버려야 했다. 거기에 더해 동방불패는 여성이 되었고. 성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영호충에 대한 사랑. 동방불패 또한 무너지며 파멸하게 되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만 나를 해칠 수 있어! 버사만 나를 청장 자리에서 밀어낼 수 있어. 나는 불사신이다! 맥베스는 불사신이다! 죽은 인간들아, 나가거라!"' -430쪽.


 '동쪽에서 해가 뜨는 한 난 절대 지지 않는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동방불패의 대사 중에서.


 맥베스와 동방불패. 많이 닮은 두 사람. 가장 강력했던 그 둘. 그러나 그런 그 둘에게 가시가 있었다. 맥베스에게는 예언과 애인인 레이디. 동방불패에게는 규화보전. 그 가시는 빗나간 야망을 이루게 했지만, 계속 자라나 파멸을 불렀다. 불안의 씨앗이었다. 그렇게 비극이 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글은 질서와 안정에 가치를 둔다.1 그의 '맥베스'도 그렇고, 요 네스뵈의 '멕베스'도 그렇다. 욕망과 배신으로 뭉친 자는 자멸한다는 그것.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세 마녀, 요 네스뵈의 세 자매는 혼란, 무의식의 얼굴이다.2 모호한 언어로 예언을 전하며, 맥베스의 빗나간 야망에 기폭제가 되는 그들. 질서와 안정, 혼란과 무의식. 그 다름의 어울림. 그것이 우리에게 깨끗함을 더해 준다. 영화 '동방불패'도 그렇다. 규화보전은 동방불페에게 혼란, 무의식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그리며, 다다른 건 질서와 안정이고.


 '검정 혹은 빨강. 탐욕 혹은 공포. 밤빛 혹은 핏빛.' -'작가의 말' 중에서. (6쪽).


 요 네스뵈의 '맥베스'는 정말 '검정 혹은 빨강. 탐욕 혹은 공포. 밤빛 혹은 핏빛'이었다. 그 바탕은 새하얀 눈. 그렇기에 더욱 도드라진다. 새하얀 눈 위에 내린 깊은 어둠. 새하얀 눈 위에 핀 새빨간 꽃. 그것이 요 네스뵈의 '맥베스'였다. 가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아름답게 변주하여 연주해냈다. 그 선율이 영화 '동방불패'와 어울려 나에게 다가왔고. 그 무늬가 깊게 새겨졌다. 나의 곳곳에.





 덧붙이는 말.


 이 요 네스뵈의 '맥베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을 재해석하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의 일곱 번째 책이다.  

        


 

  1.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11쪽.
  2. 같은 논조.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12~13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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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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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오래된 사진첩이 있다. 그 안의 빛바랜 사진 하나. 작은 외삼촌 사진이다. 아마도 고등학생 때의 사진인 듯하다. 사진의 그분은 어린 나를 많이 귀여워해주셨다고 들었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있고. 그분이 지금은 하늘에 계신다. 하늘로 가셨을 때, 외할머니께서는 작은 외삼촌 사진을 여럿 지우셨다고 한다. 마음이 아프셨기에. 지금은 외할머니와 작은 외삼촌께서 함께 하늘에 계시리라. 그런 시련을 이겨내고 남은 사진 하나. 그 사진을 볼수록 친숙해진다. 내가 많이 닮은 작은 외삼촌이 담긴 그 사진. 이제 내가 그 사진을 귀여워해주고 있다. 처음, 그 사진을 사진첩에서 찾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많이 우셨다. 막내 이모도 많이 우셨다. 작은 외삼촌의 마음, 내 마음, 어머니의 마음, 막내 이모의 마음이 담긴 그 사진. 아직도 살아 있는 그 사진은 하나하나의 추억이 되어 따스한 품 안에 영원히 안기게 되겠지.


 또 다른 사진 이야기가 있다. 아픔이 있지만, 따스함으로 감싸는 두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는 '고구레 사진관', 두 번째 이야기는 '세계의 툇마루'다. 이 이야기들의 시작은 사진관이었던 오래된 집에 이사한 한 가족이다. 고구레라는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사진관. 그 집에 들어간 그 가족의 형제 가운데 형. 16살, 에이이치. 그가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느 날, 어느 소녀에게서 한 사진을 받게 되는 에이이치. 사람들의 사진. 그리고 그 사진 안에 유령처럼 한 여인의 얼굴. 울고 있는 듯한 여인. 에이이치는 그 수수께끼에 다가간다. 그리고 여운(餘韻)이 남는다. 이 이야기가 '고구레 사진관'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인 '세계의 툇마루'는 이상한 소문으로 상급 여학생의 강제적인 부탁으로 출발한다. 역시 사진의 수수께기. 사람들이 있고, 툇마루에서 세 명의 가족이 우는 환영이 있는 사진. 이번에도 풀리는 사진의 수수께끼. 그리고 남는 또 다른 여음(餘音).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 다양한 일들도 생기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신기한 일도 있다, 나는 그런 세계관으로 이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107쪽.


 '세상에는 마음속에 떠올린 영상을 필름에 인화시키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염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185쪽.


 미야베 미유키 여사. 즉, 미미 여사. 글이 노란빛이다. 봄빛을 머금은 노란빛. 유채꽃, 개나리꽃, 병아리의 그 노란빛. 겨울 추위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따스한 노란빛. 여사는 추리 소설 안에서 모두의 아픔을 이야기하며, 여사만의 따스함으로 감싼다. 그 품에 안기는 게 정말 좋다. 마치 어머니의 품 같다. '고구레 사진관 (상)'의 두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다. 사진을 매개로 가족의 아픔과 따스함을 이야기한다. 첫 사진의 여인은 며느리였다. 이혼한 옛 며느리. 가족이 되었다가 나뉜 여인. 두 번째 사진을 촬영한 사람은 약혼자. 가족이 되려다가 멀어진 남자. 그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그 아픔들이 사진에 남았다. 염사였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일들 가운데 신기한 일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더욱 살아 있게 하는 건 에이이치의 가까운 이들이다. 그의 부모님, 동생, 단짝 친구. 또, 부동산 회사 사장, 우울한 부동산 회사 여직원, 탄빵이라고 불리는 동급 여학생 친구. 모두 자기만의 색으로 도움을 준다. 여기에 에이이치는 우울한 부동산 회사 여직원, 탄빵이라 불리는 동급 여학생 친구의 아픔도 놓치지 않는다. 따스함의 확장이다. 더 큰 날개로 아픔을 품는다. 사진을 매개로 가족의 아픔을 따스함으로 감싸니, 격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긴 잔물결이 남는. 추억이 되는. 가을의 늦은 밤에 마지막으로 책장을 덮으며, 나도 사진을 남기고 싶다. 고구레 사진관에서. 아픔을 따스하게 감싸는 사진을. 작은 외삼촌 사진처럼 마음이 담긴 추억의 사진을. 오랫동안 품에 안고 다닐 사진을.




 덧붙이는 말.


 1. 이 '고구레 사진관'은 개정판이다.    

 2. '고구레 사진관'은 상하권으로 나뉘는데, 상권만 읽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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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해리 세트 - 전2권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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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교회에 다닌다. 성가대를 하며, 가족과 함께 다닌다. 그런데, 난 이 교회를 나가자고 가족에게 계속 말한다. 다투면서. 어제도 그랬다. 이 교회의 전 담임 목사는 감옥에 갔다. 두 번째다. 횡령죄로 한 번, 모해위증죄로 한 번. 이렇게 두 번. 모해위증죄는 미성년자 성추행에 대한 명예훼손죄를 다투다가 그랬다. 세습 받았던 이 목사. 이제 교회를 떠나게 됐다. 사임했다. 그런데 원로 목사의 아내이자 이 목사의 어머니가 외치는 욕심을 보니, 정말 추했다. 또 목사 가족이 숨긴 그동안의 어둠도 여럿 드러나니, 정말 더러웠다. 왕이었던 목사. 그리고 그 곁의 간신들. 그 간신들은 이제는 갈 이 목사를 버리고 올 새 목사에게 아부한다. 그렇게 그 목사를 쇠사슬로 묶으려 한다. 지난 여러 해 동안, 그 간신들에게 당하고 있는 나. 그들의 검은 거짓으로 모함당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힘들다. 이 교회에 깊은 환멸을 느낀다. 하얀 가면을 쓴 그 검은 얼굴이 싫다.


 여기, 무진에도 하얗지만 속이 검은 안개를 머금은 악의 꽃이 피었다. 난만(爛漫)했다. 특히 큰 두 악의 꽃. 이해리와 백진우라는 악의 꽃이다. 해리는 가톨릭 신자, 백진우는 가톨릭 신부다. 해리는 과부로 장애인 단체를 이끌고 있다. 이름하여, 엔젤스 윙 장애인 주간보호 센터. 벌을 이용한 봉침을 놓기도 하는 이해리. 백신부는 필요한 돈과 사람을 그 시설에 보내고 있고. SNS에서 인기인인 그들. 많은 돈을 모금하고 있었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인 한이나. 화가인 어머니가 암 수술을 해야 하기에 무진에 왔다. 어머니가 계신 무진에. 어릴 때 이해리의 친구인 그녀. 고등학교 1학년 때, 백진우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한 그녀. 그리고 무진을 떠났던 그녀. 다시 돌아온 그녀가 길을 지나다가 한 여성을 만난다. 1인 시위를 하는 최별라라는 여성. 딸이 자살했다고 한다.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를 이야기하면서 억울해한다. 그렇게 한이나는 거대한 악의 꽃밭으로 들어가게 된다. 백진우 신부와 이해리의 악행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여럿 만나게 되고. 교구가 운영하는 무진 소망원의 어둠도 알게 되고. 또 다른 악의 꽃도 알게 되고. 그리고 무진 인권 센터의 서유진 센터장과 강철 변호사의 도움도 받게 되고.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영화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가 있어요. 흔히 '상식적으로' 사고하고 늘 '좋은 쪽으로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 이게 이들의 토양이에요. 이게 이 사람들 먹이예요. 그래서 상식을 가지고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당해내기가 힘들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 안 돼요. 아무리 작은 하나라도 다 의심해야 해요. 그래서 싸움이 정말 힘들어요.' -1권 246쪽.


 '"이 세상에 우리가 남기고 갈 것은 우리가 사랑했다는 사실이에요."' -2권 267쪽.


 영화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5)'와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 1996)'가 있다. 가톨릭의 어둠을 밝혀내는 기자인 한이나의 얼굴에서 '스포트라이트'의 얼굴도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기자가 여럿이었지만, 그랬다. 또, 해리로 상징되는 악의 꽃들의 두 얼굴에서 '프라이멀 피어'의 얼굴도 보았다. 해리라는 이름이 '해리성 인격 장애'에서 비롯됐다고 하니, 더 절묘하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두 얼굴의 대주교를 죽인 피의자는 두 얼굴을 보이며 무죄를 받는다. '해리'에서는 악의 꽃들뿐만 아니라 그 꽃들의 가시에 찔린 꽃들도 몇몇은 두 얼굴을 가졌다. 검은 거짓으로 점철된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 그 가면에 당한 사람들마저 가진 두 얼굴. 그렇지만, 악의 꽃들의 두 얼굴은 너무나 무거웠다. 무진의 검은 안개를 머금었기에. 난만해서 많은 사람을 현혹했기에. 그런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사랑의 부재가 그 시작이었으리라. 내가 다니는 교회도 사랑이 없고, 욕망만 난무하고 있다. 그 민낯. 그것을 가린 가면만이 보인다. 무진의 검은 안개를 머금은 악의 꽃들에게. 교회의 검은 얼굴들에게. 속지 않기를. 아프지 않기를. 그들을 위해. 나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피어오르게 한 '해리'에게 감사한다.




 덧붙이는 말.

 

 공지영 작가의 구설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이 소설만 읽고 쓴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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