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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ㅣ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영화 '동방불패(笑傲江湖 之 東方不敗: Swordsman II, 1992)' 중에서.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옛 무림에 동방불패라는 분이 계셨다. 절대 고수셨지. 김용 선생께서 만드신 인물. 일월신교의 교주로 규화보전을 익힌 마성의 인물. 영화에도 나오신 동방불패. 그때의 많은 남정네들은 임청하 누님의 그 동방불패를 잊지 못했지. 충격이었고, 동경이었던 동방불패. 그렇게 많은 날을 설레며 보냈고. 지금, 맥베스를 그리며, 옛 동방불패, 그분이 다시 다가온다. 빗나간 야망을 품었던, 맥베스와 동방불패. 그 둘은 닮았다.
맥베스. 빗나간 야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파멸의 상징이고.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도 그렇고, 요 네스뵈의 맥베스도 그렇다. 사실, 옛 기억으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얼개만 남아 있었다. 이제, 요 네스뵈의 '맥베스'를 통해 다시 조각이 이어졌다. 그렇게 '맥베스'의 흐릿한 얼굴이 분명해졌다.
''맥베스'의 무대는 실업과 마약 조직, 부패한 정부, 산업 오염으로 신음하는 1970년대의 어느 도시다.' -'작가의 말' 중에서. (5쪽).
그 도시에 새로운 경찰청장이 앉는다. 그 이름은 덩컨. 강직한 그는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하고, 특공대장이었던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장에 앉힌다. 이때, 이 도시의 큰 암흑인 헤카테는 덩컨을 없애려고 하지. '약쟁이나 도덕주의자보다 더 예측하기 쉬운 부류가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사랑에 홀딱 빠진 약쟁이 겸 도덕주의자야(131쪽)'라고 말하며, 맥베스의 칼을 덩컨에게 향하게 하려고 한다. 세 자매를 보내, 맥베스가 경찰청장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해서. 그 예언으로 맥베스의 애인인 레이디를 움직이게 해서. 결국, 덩컨은 맥베스의 칼에 쓰러지고, 맥베스는 경찰청장이 된다. 그러나, 공포, 불안과 악몽으로 무너지며 파멸하는 맥베스. 물론 레이디도 함께.
동방불패. 이 또한 빗나간 야망의 상징이다. 그리고 파멸의 상징이고. 일월신교의 교주인 임아행을 가두고 새로운 교주가 되지. 그가 익힌 규화보전의 위력으로. 그런데,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서는 남성을 버려야 했다. 거기에 더해 동방불패는 여성이 되었고. 성 정체성의 혼란. 그리고 영호충에 대한 사랑. 동방불패 또한 무너지며 파멸하게 되고.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만 나를 해칠 수 있어! 버사만 나를 청장 자리에서 밀어낼 수 있어. 나는 불사신이다! 맥베스는 불사신이다! 죽은 인간들아, 나가거라!"' -430쪽.
'동쪽에서 해가 뜨는 한 난 절대 지지 않는다.' 영화 '동방불패'에서 동방불패의 대사 중에서.
맥베스와 동방불패. 많이 닮은 두 사람. 가장 강력했던 그 둘. 그러나 그런 그 둘에게 가시가 있었다. 맥베스에게는 예언과 애인인 레이디. 동방불패에게는 규화보전. 그 가시는 빗나간 야망을 이루게 했지만, 계속 자라나 파멸을 불렀다. 불안의 씨앗이었다. 그렇게 비극이 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글은 질서와 안정에 가치를 둔다. 그의 '맥베스'도 그렇고, 요 네스뵈의 '멕베스'도 그렇다. 욕망과 배신으로 뭉친 자는 자멸한다는 그것.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세 마녀, 요 네스뵈의 세 자매는 혼란, 무의식의 얼굴이다. 모호한 언어로 예언을 전하며, 맥베스의 빗나간 야망에 기폭제가 되는 그들. 질서와 안정, 혼란과 무의식. 그 다름의 어울림. 그것이 우리에게 깨끗함을 더해 준다. 영화 '동방불패'도 그렇다. 규화보전은 동방불페에게 혼란, 무의식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그리며, 다다른 건 질서와 안정이고.
'검정 혹은 빨강. 탐욕 혹은 공포. 밤빛 혹은 핏빛.' -'작가의 말' 중에서. (6쪽).
요 네스뵈의 '맥베스'는 정말 '검정 혹은 빨강. 탐욕 혹은 공포. 밤빛 혹은 핏빛'이었다. 그 바탕은 새하얀 눈. 그렇기에 더욱 도드라진다. 새하얀 눈 위에 내린 깊은 어둠. 새하얀 눈 위에 핀 새빨간 꽃. 그것이 요 네스뵈의 '맥베스'였다. 가히,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아름답게 변주하여 연주해냈다. 그 선율이 영화 '동방불패'와 어울려 나에게 다가왔고. 그 무늬가 깊게 새겨졌다. 나의 곳곳에.
덧붙이는 말.
이 요 네스뵈의 '맥베스'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그의 대표작을 재해석하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의 일곱 번째 책이다.
-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11쪽.
- 같은 논조.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테리 이글턴 지음,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12~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