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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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 조카가 있어요. 여자 아이에요. 조카가 어릴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많이 봤지요. 특히,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1937)를 좋아했어요. 덕분에 저도 여러 번 봤고요. 아는 내용이지만, 재밌더라고요. 상상하게 했고요.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가르침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런 동화의 인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든 이야기가 있네요. 바로,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이에요.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의 이야기들이지요. 신데렐라는 사이보그 정비공 신더, 빨간 모자는 우주선 조종사 스칼렛, 라푼젤은 인공위성에 갇힌 천재 해커 크레스, 백설공주는 여왕의 폭정에 맞선 혁명가 윈터라고 해요. 아쉽게도 저는 SF Romance Fantasy인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과 아직 대화를 나누지 못했네요. 그렇지만, 그 프리퀄(prequel)인 '레바나'를 만났어요. 대화도 나눴고요. 신더의 이모이자, 윈터의 의붓어머니인 레바나! 제가 '레바나'와 나눈 대화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해요.

 

 짝사랑하는 열여섯 소녀 레바나. 상대는 왕실 근위병인 에브렛 헤일 경이에요. 그런데 그는 유부남이에요. 그의 아내 이름은 솔스티스. 임신을 했지요. 안타깝게도 솔스티스는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요.

 

 '레바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온몸을 쾅쾅 때리며 울려대는 음악을 몰아내보려고 했다. 손님들의 조롱 섞인 웃음. 언니의 비웃는 말들. 채너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레바나는 단순히 에브렛의 죽은 아내를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헌신하고, 더 많이 신비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그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사랑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 것이다.' -98쪽.

 

 루나의 공주인 레바나. 부모님의 죽음으로 여왕이 된 언니, 채너리. 레바나는 에브렛의 마음을 얻고자 노력해요. 채너리는 이해하지 못하지요. 채너리는 남자들과 뒷소문을 만드는 여인이었으니까요.

 

 '레바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려고 했다. "모르겠나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원래 그런 거예요.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모순되는 감정과 휘몰아치는 격정. 늘 속이 뒤틀리면서 그 사람에게서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그 사람과 '함께' 도망쳐야 할지도 결정할 수 없는 그런 기분."' -104쪽.

 

 결국에는 레바나와 에브렛이 결혼하지요. 레바나는 윈터의 의붓어머니가 되고요. 그런데, 언니인 채너리가 질병으로 사망해요. 딸인 셀린을 놓고요. 그래서 레바나가 섭정 여왕이 되지요. 그런데, 얼마 후 셀린마저 화재로 사망 선고를 받게 되지요. 이제 레바나가 여왕이에요.

 

 '언니의 말이 되돌아와 레바나의 귀를 천둥처럼 울리고 가슴 속 빈 곳을 속속들이 채웠다.

 사랑은 정복이야. 사랑은 전쟁이라고.

 '이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야.'' -231쪽.

 

 레바나의 사랑을 놓아두는 에브렛. 그를 잃으며 레바나가 한 생각이에요. 사랑은 정복이고, 전쟁이라고요.

 

 '남자는 복종을 힘들어하고 여자는 뭔지 모를 결핍을 갖고 있다'

-자크 라캉(프랑스의 정신분석가)

 

 레바나에게는 사랑 결핍이 있었어요. 결핍은 욕망의 뿌리가 되었고요. 언니인 채너리가 어린 레바나에게 화상을 입게 했지요. 그래서 레바나는 마법으로 외모를 아름답게 했고요. 그렇지만, 거울에는 레바나의 민낯이 보이지요. 흉터 있는 레바나는 받지 못한 사랑을 반격했어요. 사랑 결핍을 과잉 보상받으려고 했지요. 그래서 이루기 힘든 유부남인 에브렛에게서 사랑받으려고 했고요. 또, 왕좌를 이어받아 백성에게 사랑받으려고 했어요. 에브렛과 왕좌, 둘 다 얻었지만, 불안정했어요. 기대치가 높았던 레바나. 불평과 원망이 일어났고 미움과 적대감으로 이어졌지요. 게다가 레바나의 사랑을 내려놓는 에브렛. 그를 잃으며 레바나는 악녀가 되었지요. 사랑은 정복이고, 전쟁이라고 하면서요. 사랑 결핍이 잘못된 욕망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자신을 파괴했어요.

 

 '레바나는 마법으로 완벽한 미모를 만들어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자신의 어머니보다, 채너리보다, 루나의 왕좌에 앉았던 그 어느 여왕보다 아름다운 여왕이 되려고 했다.' -184쪽.

 

 '그의 말이 맞을까? 내가 마법으로 만들어낸 이 아름다움과 완벽함 뒤에 숨어 있으면, 그는 나를 결코 알 수 없고, 신뢰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걸까?' -153쪽.

 

 이 책 '레바나'의 원제는 'Fairest'라고 해요. 여기에서는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뜻이겠지요. 레바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름답지 못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사랑받고 싶었으니, 가장 아름답고 싶었고요. 가장 아름다운 아내, 가장 아름다운 여왕이고 싶었지요. 마법으로요. 그런데, 이루지 못했어요. 그리고 깊은 수렁에 빠졌고요. 그 마법에는 진실이 없었으니까요. 레바나를 신뢰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사랑받지 못했으니까요.  

 

 루나 크로니클(Lunar Chronicle) 이야기들의 프리퀄(prequel)인 '레바나'는요. 제게 감탄사였어요. 감탄에 또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동화가 가진 상상력, 감동, 가르침을 품고 있었고요. 또, 거기에 매혹하는 힘까지 갖고 있었어요. 좋네요.

 

 

 

 

 

 

스토리콜렉터스 2017로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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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2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결핍이 심하면 집착이 심해져요.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월하게 보일려고 상대방을 통제합니다.

사과나비🍎 2017-07-22 18:5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cyrus님의 말씀! 맞는 것 같아요~^^* 그럼,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랄게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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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성경, 전도서 3장 2절 상반절


'생자필멸(生者必滅)1', '회자정리(會者定離)2'

 

 가까운 분들이 하늘로 가셨어요. 언제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분들. 한 분, 한 분 떠날 때 마음이 아팠어요. 떠나시기 전, 이별을 준비하시던 분들도 계셨지요. 저를 바라보시던 그분들.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 아버지께서 암 수술을 하셨어요. 췌장과 직장의 암을 수술하셨지요. 특히, 예후(豫後)3가 좋지 않다는 췌장암. 재발과 전이의 위험이 아직 남아 있어요. 아버지와 저의 이별이 가까이에 있을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네요. 그 이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가 많아졌는데요. 이제 노인이 되신 아버지. 아버지께 드린 게 너무 없더라고요. 너무 부족한 저예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생자필멸', '회자정리'라고 하지만, 이별은 너무 아파요. 그런데,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은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와 그의 손자,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주고받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다. (……중략……) 쓰다보니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서서히 잃는 심정,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아이들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짧은 글로 발전했다. (……중략……) 이것은 거의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 여러분께 (7쪽).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그의 이별 학습 이야기예요. 사랑스러운 손자에 대한 아쉬움.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데면데면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할아버지의 여러 감정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요.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74쪽.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80~81쪽.

 

 "머릿속 말이에요. 머릿속이 아프냐고요."
 "아픈 느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건망증이 하나 좋은 게 그거야.
 아픈 것도 깜빡하게 된다는 거."
 "어떤 기분이에요?"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103~104쪽.

 

 기억과 놓음. 사랑과 두려움의 이야기예요. 또, 시간의 이야기고요. 여럿이 어우러지며,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지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가 되지요.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1926'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문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4 것은 다 님이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님의 침묵'의 님은 조국, 절대자(부처, 진리), 연인5이라고 하지요. 저도 '님의 침묵'의 님을 그리운 분들로 더 넓게 생각해봤어요. 하늘로 가신 가까운 분들로 생각해봤어요. 곁에 계시지만 그리운, 암 수술하신 아버지도 생각해봤고요. 또, 이 책의 기억을 읽어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봤어요. 생각하니,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어를 되뇌게 되네요.

 

 

 또,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제는 울지 않을래. 이별은 너무 아파요. 다시 떠난다 해도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슬픔 뒤 밀려드는 그리움. 세월이 변한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줘요.'라는 노랫말. 사랑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겠지만요.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도 그 뜻이 이어지네요. 이별은 너무 아프지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 거고요.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을 읽으며, 이 노래를 읊조렸어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요. 글은 짧지만, 여운은 길어요. '피플 매거진'의 글처럼 '씁쓸하고도 달콤'해요.​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해서 아름다워요. 그 아름다움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제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만요. 어느덧 찾아온 이별의 날. 저도 제게 남은 사랑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世皆無常 會必有離(세개무상 회필유리) 세상은 모두 무상하나니,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도다. -<유교경遺敎經>​

 그리고 이제 저도 세상의 무상함을 알고, 슬프지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요. ​

나나흰 6기로서 읽고 씁니다.



 

  1. <불교>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 존재의 무상(無常)을 이르는 말이다.
  2. <불교>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짐. 모든 것이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3. 1 .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전망함. 또는 그런 병의 증세. 2 . 병이 나은 뒤의 경과.
  4. 기루다: [방언]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다(전북).
  5. 님의 침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161&cid=46645&categoryId=46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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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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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1'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마침, 요즘이 음력으로 오뉴월이네요. 이 물쿤2 날에 서리가 내린다니요! 여자의 한(恨)은 기상 이변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무서운가 봐요. 그 여자의 한(恨)이 서린 책이 있네요. 이름하여,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예요. 일본에서 온 이 책! 그 이름부터 확실히 각인되고 있어요.


 2012년 2월 24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남편‘으로 검색’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고 해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남편’을 입력하면 첫 번째 연관 검색어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요.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고 해요.


 '"출산 후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할 일밖에 없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그렇게 잘못인가요?" (중략) 육아를 이해해 주지 않는 직장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며 빨리 퇴근했고, 늦게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보육 교사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외로워서 우는 아이에게도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2장.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 1화. 경력이 단절된 아내의 한」 중에서 -76~78쪽.


'"좀 도와줘요!"라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려도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된 거니까 당신이 해야지. 난 돈 버느라 피곤해"라고 할 뿐이었다. 게다가 집에서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푹 쉬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는 척했다.' -2장.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 4화. 2세대 주택이라는 감옥」 중에서 -116쪽.


 '한 면접관이 "자네 말이야, 육아휴직이라니 무슨 여자들이나 하는 소리를 하는 건가? 남자가 느긋하게 육아휴직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여름휴가도 고작 일주일인데. 자네, 일할 마음이 있기나 한가? 우리 회사는 전근도 가야 하네"라며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우연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한 기업에서 모조리 떨어졌다.' -4장. 남편이 살아갈 길?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의 현실과 이상」 중에서 -217~218쪽.


 '아내가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으려면 애초에 사회보장과 같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친정이라는 존재가 사회보장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5장.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죽기를 바란다」 중에서 -240쪽.


 지은이가 취재한 14명의 기혼 여성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여자의 한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이 책의 작은 이름인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아내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보여지고요.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두 마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도 드넓은 땅도 다할 때가 있으련만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길 때가 없으리.


- 백거이(白居易:772~846) '장한가(長恨歌)' 중에서


 '장한가(長恨歌)'의 한(恨)은 슬픈 사랑의 한이지요. 그런데, 이 책의 한(恨)은 곪은 상처의 한이에요. 아내들의 은결들은3 한(恨)이지요. 이 한을 어떻게 끊고, 풀어야 할까요? 장한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익조4가 되고, 연리지5가 되어야 해요.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는 거예요. 남편과 아내가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고요. 일과 가정도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해요. 또, 인식과 제도도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고요. 독박 육아와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아내들! 아름다운 비익조, 연리지가 되어 그 한을 끊기를 바랄게요.

 결혼을 하지 않은 저는 육아와 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아이는 없고요. 부모님께서 계시니까요. 그런데, 아내 혼자 육아와 가사를 한다면요. 한이 서릴 것 같아요. 아주 지독한 한이 서릴 것 같아요. 이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요. 그 한이 잘 담겨 있어요. 농축이 돼서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할 한이지요. 그리고 그 한풀이를 위한 도움말도 잊지 않고 있고요. 한이 서린 아내들을 위해 세상을 올바르게 변하게 할 디딤돌의 하나가 될 책이에요.








북폴리오 2017 하반기 서포터즈로서 읽고 씁니다. 



 

  1. 여자의 원한이나 복수심은 매우 무섭고 깊이 사무침을 이르는 말.
  2. 물쿠다: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지다.
  3. 은결들다: 1. 상처가 내부에 생기다. 2. 원통한 일로 남모르게 속이 상하다.
  4. 1.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 2. 남녀나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5. 1.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2.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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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7-17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책 제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오해를 부르기 십상인 말이기도 하고요.

사과나비🍎 2017-07-17 12:42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책의 이름이 추리소설?에 나올 듯한 무서운 이름이에요...^^; 저도 처음 책을 처음 만나고 놀랐었어요~^^;
아무튼 五車書님~ 댓글 감사하고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랄게요~^^* 아, 점심 식사도 맛있게 하시고요~^^*

알콩달콩맘 2017-07-17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책 제목이 너무 살벌하네요.그런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사과나비🍎 2017-07-17 12:42   좋아요 0 | URL
아, 예~^^* 책의 이름이 너무 그렇지요?...^^; 저도 그랬어요~^^; 그나저나 프로필의 나비! 예쁘네요~^^*
그럼, 알콩달콩맘님~ 댓글 감사하고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랄게요~^^* 아, 점심 식사도 맛있게 하시고요~^^*
 
법정 행복은 간장밥 - 그립고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 샘터 필사책 1
법정 지음, 샘터 편집부 엮음, 모노 그림 / 샘터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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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법정 '무소유' 중에서.


 법정 스님의 글을 학창 시절에 처음 읽었어요. 수필 '무소유'였지요. 소유가 얽매임이라는 깨달음.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었어요. 그리고 법정 스님의 글들을 계속 만났고요. 종교를 떠나서, 스님의 말씀들은 풍경(風磬) 소리 같았어요. 바람의 목소리인 풍경 소리. 물쿤1 날, 간들바람2이 불어 깊이 울리는 풍경 소리. 바람의 목소리였어요. 법정 스님이 들려주시는 바람의 목소리. 그 목소리로 귓맛3이 좋은 바람의 이야기가 그려졌어요.

 

(사진 출처: 샘터 네이버 포스트)

 

 

 여기, 법정 스님이 남기신 말씀들과 아껴 읽으신 경전, 불교 명언 등을 엮어서 필사(筆寫)하도록 한 책이 있어요. 이 책은 '01 그날 스님이 주신 씨앗과 모종만이 남아', '02 인간 법정 : 나같이 이나 잡고 홀로 살더라', '03 스님의 글쓰기', '04 스님이 아낀 말과 침묵'으로 엮어져 있어요.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필사를 이렇게 해보라고 해요. '01 마음을 비우고', '02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03 바다를 바라보듯', '04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해보라고 해요.  


 오두막에서 온 편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기적 같기만 하고

 둘레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앓고 나면 철이 든다더니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2009년 무자년 입하절 강원도 수류산방에서 법정 스님이 이해인 수녀님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68쪽.


 

 저는 얼마 전에 아팠어요. 여름 고뿔이었지요. 그래서 이 글이 더욱 마음에 닿았어요. 그래서 필사를 했지요. 그랬더니, 행복해지더라고요. 저도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니, 행복해진 거였어요. 이제는 간장밥의 행복한 맛도 알게 됐고요.

 

(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이 책의 작은 이름은 '그립고 그리운 법정 스님의 목소리'예요. 그립고 그리운 스님의 목소리는 저에게 풍경 소리가 되었어요. 즉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의 목소리가 되어 제게 다가왔어요.

 얼마 전, 어느 분의 풍경(風磬) 그림을 봤어요. 바람의 목소리로 다가오는 스님의 목소리. 그것을 필사하는 것은요. 풍경(風磬)을 그리는 것과 같을 거예요. 그리우니, 그리게 되니까요. 그렇게 바람(風)의 목소리는 바람(望)의 목소리가 되고요. 스님의 바람(望)이 저에게 바람(風)이 되어 지금도 다가오네요. 그 바람(風)은 저에게 또 바람(望)이 되고요.

 스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필사할 수 있는 소중한 이 책.  저의 그리움과 스님의 그리움이 만나 이 책으로 이어졌나 봐요. 스님을 그리워하는 다른 분들께도 스님의 그리움이 이 책으로 이어졌으면 하네요. 이 책은 그렇게 많은 그리움을 부르며 자랄 책이에요.






샘터 네이버 공식 포스트 URL http://post.naver.com/isamtoh 

 
 
 
 


물방울 9기로서 읽고 씁니다.


 

  1. 물쿠다: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지다.
  2. 간들바람: 부드럽고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
  3. 귓맛: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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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
윤정인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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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아침,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어요. 지난 6월 24일이었지요. 차 안이었고요. 부산의 '추리문학관' 이야기였어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 귀가 라디오 소리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Arthur Conan Doyle의 Sherlock Holmes라는 설레는 이름이 제 마음까지 들렸지요. '노중훈의 여행의 맛'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의 저자 윤정인 작가가 제 아침을 열었어요. 그리고 곧 낭랑한 목소리로 저에게 파고들었고요. 6월 17일부터 토요일마다 3회에 걸쳐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1 저는 그 두 번째 시간에 우연히 만났네요. 이미 만난 책이지만, 대화를 미룬 책을 라디오에서 듣는다는 것. 색다른 느낌이었어요.


 '"유럽의 아름다운 서점 같다." "미국 도서관과 비슷하다." 서점에 들어서면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서점은 두 개의 층을 터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뒤로 젖혀야만 볼 수 있는 높은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벽에는 단이 열 개 정도 있는 책장이 천장 끝까지 이어져 있다. 한쪽에는 음악회가 열릴 때 사용할 법한 그랜드피아노가 있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이 서점 안에 잔잔하게 흘렀다. 창이 크게 나 있어 빛이 가득 들어왔는데, 자연광이 책을 더 우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 '인생의 물음에 책으로 답하다, 최인아 책방' 중에서, 120쪽.


 '영국의 헤이온와이 마을처럼 책마을 언덕이 되길 꿈꾸며 시작한 추리문학관이다. 이 달맞이 언덕이 헌책방, 갤러리, 고서 전문점으로 가득한 문학의 언덕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한 사람만의 바람은 아닐 테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바다색과 비슷한 푸른빛 안개가 서리는 언덕길을 오르며 책을 찾아 헤맬 수 있는 서점 거리는 얼마나 낭만적일까.' - '추리소설에 파묻히고 싶을 때, 추리문학관' 중에서, 158쪽.


 '"어떤 분이 책을 찾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 책에 대해 아는 정보가 전혀 없다는 거였어요. '어제 그 책을 그냥 지나쳤는데, 갑자기 떠올라서 꼭 읽고 싶다'는 거였죠. 표지에 여자 일러스트가 있다는 것, 삽화가 많다는 것. 이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어요. 결국 추리를 해가며 그 책을 찾아야 했고, 그분과 문자로 이 책이 맞는지 아닌지를 계속 주고받았죠. 나중에 그 책이 타샤 튜더의 《타샤의 정원》이라는 것을 알아냈어요. 굉장히 기뻐하시더라고요." -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살아 있는 마을 도서관, 느티나무 도서관' 중에서, 187쪽.


 지은이가 라디오 방송에서 자세히 알려준 곳들이에요. 물론, 책 안에도 있고요. 이 세 곳의 보물뿐만 아니라, 책에는 몇 곳의 보물이 더 있어요. 책은 '골목 속 반짝이는 책공간_헌책방 및 동네서점', '취향의 책방_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 서점 및 도서관', '집 앞 도서관으로 가자_진화하는 도서관', '한국의 헤이온와이를 꿈꾼다_우리나라의 책마을'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자세하게 다룬 23곳과 함께 모두 79곳의 보물을 알려주고 있어요. 헌책방, 동네 서점, 도서관을 바라본 지은이의 빛나는 눈길들이지요.  


 '집 앞 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본 후 나는 살아 있는, 책이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책방을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거나, 책방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책방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 '책마을 가는 길' 중에서, 9쪽.


 '팍팍한 세상살이에 책 읽을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렇지만 때론 책이 어려운 현실의 또 다른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더군다나 요즘은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독서 가이드를 제시하는 책방도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을 계기로 자신만의 반짝이는 책방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 '책방이 자라나는 숲을 거닐다' 중에서, 273~274쪽.


 어릴 때, 저는 동네 서점의 단골이었어요. 방과 후에 서점 한구석에서 책을 살피고는 했지요. 친구와 함께 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동네 서점이 사라졌어요. 안타까웠지요. 친구와 함께 모은 책의 추억이 담긴 동네 서점. 어린 단골로서 주인 부부의 귀여움을 받았던 추억이 깃든 동네 서점. 지은이도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책방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작가의 이야기로 제가 갖고 있는 추억이 다시 힘차게 숨을 쉬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추억을 이루고 싶어지네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가 있어요. 이 광고를 보면 떠나고 싶어지더라고요. 떠난다면, 저는 책이 있는 곳으로 하고 싶어요. 책과의 추억을 다시 이루고 싶어서요. 광고에서처럼 '가는 곳마다 즐거움'일 거예요. 윤정인 작가의 안내로 그럴 거예요.


 '저 멀리 떠나는 여행의 경이로움은 출발하기도 전에 열광이 시작된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지도책을 펼쳐놓고 가고 싶은 나라며 고장의 지도를 바라보며 몽상에 잠긴다. 또 낯선 도시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어 본다.'


- 조제프 케셀


 '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은 보물 지도예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요. 그들에게 좋은 책과의 추억이 보물 상자잖아요. 보물을 찾아나서는 첫걸음을 내딛기 전부터 열광이 시작되겠지요. 애서가의 보물 지도인 이 책을 펼쳐놓고 가고 싶은 곳을 바라보고 몽상에 잠길 거예요. 또 그 헌책방, 동네 서점, 도서관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이겠고요.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 될 보물 지도, '책들이 머무는 공간으로의 여행'은요. 이렇게 추억의 아침을 여는 찬란한 날개가 되어 언제나 빛나고 있어요.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 



 



 

  1. 윤정인 작가의 블로그에 보니, 녹음 방송이었다고 해요. (http://mimilub23.blog.me/22103601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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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1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 가면 80년대 초중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나온 추리소설(저작권을 무시한 해적판)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알라딘 도서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번역의 질이 떨어지지만, 내용면에서 좋은 추리소설도 있습니다. 이 책들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이 없으면 잊히게 됩니다.

사과나비🍎 2017-07-11 23:53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헌책방에 가면 옛 책들이 있지요. 아, 알라딘 도서 데이터베이스에 없나 봐요... 그러게요. 이 책들의 존재도 기억해야 할 텐데요... 아무튼~ cyrus님~ 댓글 감사해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