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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라는 속담이 있잖아요. 마침, 요즘이 음력으로 오뉴월이네요. 이 물쿤 날에 서리가 내린다니요! 여자의 한(恨)은 기상 이변도 일으킬 수 있을 만큼 무서운가 봐요. 그 여자의 한(恨)이 서린 책이 있네요. 이름하여,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예요. 일본에서 온 이 책! 그 이름부터 확실히 각인되고 있어요.
2012년 2월 24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남편‘으로 검색’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고 해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서 ‘남편’을 입력하면 첫 번째 연관 검색어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와서요.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됐다고 해요.
'"출산 후로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과할 일밖에 없어요.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그렇게 잘못인가요?" (중략) 육아를 이해해 주지 않는 직장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며 빨리 퇴근했고, 늦게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면 보육 교사에게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외로워서 우는 아이에게도 "엄마가 늦게 와서 미안해"라고 말했다.' -「2장.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 1화. 경력이 단절된 아내의 한」 중에서 -76~78쪽.
'"좀 도와줘요!"라고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려도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된 거니까 당신이 해야지. 난 돈 버느라 피곤해"라고 할 뿐이었다. 게다가 집에서는 혼자 맥주를 마시며 푹 쉬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자는 척했다.' -「2장.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 4화. 2세대 주택이라는 감옥」 중에서 -116쪽.
'한 면접관이 "자네 말이야, 육아휴직이라니 무슨 여자들이나 하는 소리를 하는 건가? 남자가 느긋하게 육아휴직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여름휴가도 고작 일주일인데. 자네, 일할 마음이 있기나 한가? 우리 회사는 전근도 가야 하네"라며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우연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싶다'고 말한 기업에서 모조리 떨어졌다.' -「4장. 남편이 살아갈 길?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의 현실과 이상」 중에서 -217~218쪽.
'아내가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으려면 애초에 사회보장과 같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친정이라는 존재가 사회보장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5장.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이 죽기를 바란다」 중에서 -240쪽.
지은이가 취재한 14명의 기혼 여성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어요. 여자의 한이 고스란히 느껴지더라고요. 이 책의 작은 이름인 '독박 육아,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아내들의 속마음'이 그대로 보여지고요.
詞中有誓兩心知 사중유서양심지
七月七日長生殿 칠월칠일장생전
夜半無人私語時 야반무인사어시
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연리지
天長地久有時盡 천장지구유시진
此恨綿綿無絶期 차한면면무절기
두 마음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높은 하늘도 드넓은 땅도 다할 때가 있으련만
이 슬픈 사랑의 한은 끊길 때가 없으리.
- 백거이(白居易:772~846) '장한가(長恨歌)' 중에서
'장한가(長恨歌)'의 한(恨)은 슬픈 사랑의 한이지요. 그런데, 이 책의 한(恨)은 곪은 상처의 한이에요. 아내들의 은결들은 한(恨)이지요. 이 한을 어떻게 끊고, 풀어야 할까요? 장한가에서 말하는 것처럼 비익조가 되고, 연리지가 되어야 해요.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는 거예요. 남편과 아내가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고요. 일과 가정도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해요. 또, 인식과 제도도 올바르게 함께 해야 하고요. 독박 육아와 독박 가사에 고통받는 아내들! 아름다운 비익조, 연리지가 되어 그 한을 끊기를 바랄게요.
결혼을 하지 않은 저는 육아와 가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아이는 없고요. 부모님께서 계시니까요. 그런데, 아내 혼자 육아와 가사를 한다면요. 한이 서릴 것 같아요. 아주 지독한 한이 서릴 것 같아요. 이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요. 그 한이 잘 담겨 있어요. 농축이 돼서요.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할 한이지요. 그리고 그 한풀이를 위한 도움말도 잊지 않고 있고요. 한이 서린 아내들을 위해 세상을 올바르게 변하게 할 디딤돌의 하나가 될 책이에요.
북폴리오 2017 하반기 서포터즈로서 읽고 씁니다.
- 여자의 원한이나 복수심은 매우 무섭고 깊이 사무침을 이르는 말.
- 물쿠다: 날씨가 찌는 듯이 더워지다.
- 은결들다: 1. 상처가 내부에 생기다. 2. 원통한 일로 남모르게 속이 상하다.
- 1.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 2. 남녀나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1.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것. 2. 화목한 부부나 남녀 사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