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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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성경, 전도서 3장 2절 상반절


'생자필멸(生者必滅)1', '회자정리(會者定離)2'

 

 가까운 분들이 하늘로 가셨어요. 언제나 함께 계실 줄 알았던 분들. 한 분, 한 분 떠날 때 마음이 아팠어요. 떠나시기 전, 이별을 준비하시던 분들도 계셨지요. 저를 바라보시던 그분들.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 아버지께서 암 수술을 하셨어요. 췌장과 직장의 암을 수술하셨지요. 특히, 예후(豫後)3가 좋지 않다는 췌장암. 재발과 전이의 위험이 아직 남아 있어요. 아버지와 저의 이별이 가까이에 있을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네요. 그 이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가 많아졌는데요. 이제 노인이 되신 아버지. 아버지께 드린 게 너무 없더라고요. 너무 부족한 저예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생자필멸', '회자정리'라고 하지만, 이별은 너무 아파요. 그런데, 이별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났어요.

  

 '이 책은 기억과 놓음에 대한 이야기다. 한 남자와 그의 손자,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 주고받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다. (……중략……) 쓰다보니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서서히 잃는 심정, 아직 내 곁에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내 아이들에게 그걸 설명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짧은 글로 발전했다. (……중략……) 이것은 거의 한 쌍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랑과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독자 여러분께 (7쪽).

 

 기억을 잃어가는 할아버지. 그의 이별 학습 이야기예요. 사랑스러운 손자에 대한 아쉬움.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데면데면한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두려움. 이렇게 할아버지의 여러 감정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어요.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 -74쪽.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80~81쪽.

 

 "머릿속 말이에요. 머릿속이 아프냐고요."
 "아픈 느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단다. 건망증이 하나 좋은 게 그거야.
 아픈 것도 깜빡하게 된다는 거."
 "어떤 기분이에요?"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 -103~104쪽.

 

 기억과 놓음. 사랑과 두려움의 이야기예요. 또, 시간의 이야기고요. 여럿이 어우러지며,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지요. 연서이자, 느린 작별 인사가 되지요.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려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1926'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문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4 것은 다 님이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어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님의 침묵'의 님은 조국, 절대자(부처, 진리), 연인5이라고 하지요. 저도 '님의 침묵'의 님을 그리운 분들로 더 넓게 생각해봤어요. 하늘로 가신 가까운 분들로 생각해봤어요. 곁에 계시지만 그리운, 암 수술하신 아버지도 생각해봤고요. 또, 이 책의 기억을 읽어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봤어요. 생각하니,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는 시어를 되뇌게 되네요.

 

 

 또, 장혜리의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제는 울지 않을래. 이별은 너무 아파요. 다시 떠난다 해도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 기억하지는 않아도 지워지지가 않아요. 슬픔 뒤 밀려드는 그리움. 세월이 변한다 해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러줘요.'라는 노랫말. 사랑의 이별을 노래한 것이겠지만요.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도 그 뜻이 이어지네요. 이별은 너무 아프지요.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 거고요. 언제까지나 그대로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을 읽으며, 이 노래를 읊조렸어요.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요. 글은 짧지만, 여운은 길어요. '피플 매거진'의 글처럼 '씁쓸하고도 달콤'해요.​ 슬프지만, 부드럽고 따뜻해서 아름다워요. 그 아름다움이 깊은 울림을 주네요. 잃고 싶지 않은 분들이 언제까지나 그대로 제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만요. 어느덧 찾아온 이별의 날. 저도 제게 남은 사랑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世皆無常 會必有離(세개무상 회필유리) 세상은 모두 무상하나니,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도다. -<유교경遺敎經>​

 그리고 이제 저도 세상의 무상함을 알고, 슬프지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고요. ​

나나흰 6기로서 읽고 씁니다.



 

  1. <불교>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음. 존재의 무상(無常)을 이르는 말이다.
  2. <불교>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짐. 모든 것이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3. 1 .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고 전망함. 또는 그런 병의 증세. 2 . 병이 나은 뒤의 경과.
  4. 기루다: [방언] 어떤 대상을 그리워하거나 아쉬워하다(전북).
  5. 님의 침묵,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4161&cid=46645&categoryId=46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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