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비극을 연출한다

저기 햄릿이 점잖을 빼며 걷고 있다, 저기엔 리어 왕이,

저기엔 오필리아가, 아니 저기엔 코딜리아가.

그러나, 비극이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려면,

그래서 거대한 무대의 막이 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연출이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배우는 흐느껴 울며 대사를 망쳐서는 안 된다.

비극의 주인공임에도, 햄릿과 리어는 즐겁다.

두려움을 모두 즐거움으로 바꾸어 버리는 환희,

인간은 누구나 추구하고 찾아내고, 잃어버린다.

소등하라! 하늘은 불타며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햄릿이 어슬렁거리고,

리어가 분노를 터뜨리고, 온 세상의 비극이

한꺼번에 막을 내린다 해도, 비극은

단 한 치도, 단 한 온스도 커지지 않는다.

 

 

= 예이츠의 시 <청옥 부조 (Lapis Lazuli)> 중에서 =

 

 

 

 

 

 

 

 

 

 

 

 

 

 

 

 

 

 

 

 

 

 

 

 

 

 

 

이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에서 위의 예이츠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슬픈 운명의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어떤 비극과 맞닥뜨릴 때, 울어서 대사를 망쳐 버린다면 비극은 예술로 막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의 아픔은 어떤 즐거움 (gaiety)도 주지 못하고, 마냥 아픔만을 주고 끝나게 될 것이다.

존재 속에서의 슬픔은 언제나 그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예기치 못한 큰 기쁨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비극을 맞는 자가 울어서 자신의 대사를 망가뜨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역을 끝까지 수행해 슬픔 속에 담긴 기쁨을 찾을 때, 비극은 하나의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비극적 삶의 아름다움을 심미적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237, 238쪽)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예기치 못한 큰 기쁨을 ...'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어떤 책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빨리 읽기 보다 제대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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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8-04-0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치는 표현입니다. 짧은 한 줄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hnine 2018-04-01 14:13   좋아요 0 | URL
저 지금 nama님 서재에 다녀오는데...^^
저 문장에 nama님 처럼 공감해주시는 분을 찾고 싶었어요. 누구실까 궁금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