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 않은 땅덩이에도 어디는 눈이 왔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비롯, 어디는 아직 눈이 오지 않았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는 것을 자꾸 깜박하고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향한다.
아이가 어제 산 공룡색칠그림책을 오늘 다 끝내겠다고 열심히 크레파스를 칠하고 있는 것을 봐주다가 호빵을 사다달라고 남편에게 졸랐다. 저녁까지 잘 먹고서. 내가 혼자 졸랐으면 움직이지 않았을 사람이, 아이가 자기도 먹고 싶다고 하자 우산을 받쳐 들고 사러 나간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 딱 한가지 있었는데 무슨 대단한 음식도 아니요 바로 이 호빵이었다. 달달한 이 호빵이 그렇게 먹고 싶었더랬다. 한국에서라면 내가 내손으로 사서 먹으면 되었겠지만, 그 당시 우리가 살던 곳에서 호빵을 사려면 약 한 시간을 운전하여 큰 한국수퍼까지 가야만 했는데, 한 시간 운전이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남편에게 몇 번을 얘기했지만 결국 못 먹고 말았다. 그 생각을 해가며 오늘 저녁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아이랑 먹었다. 그림 그리다 뛰어나와 열심히 먹는 아이를 보는 것이 호빵을 먹는 것 보다 더 흐뭇하고 기분이 좋았다.
벌써 나왔어야 했으나 미루고 미루어지다 오늘 받은 결과 통보, 지원하신 자리에 모실수 없음을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매우 예의바른 메일. 사실, 고생문이 훤한 자리, 또다시 시작될 두마리 토끼 잡기가 눈에 보여, 꼭 되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으나, 이번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방향키를 조정하리라 다짐하고 지원한 자리였기에 서운하면서도 후련하다. 그래도 잠깐 동안은 머리속이 멍...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대충, 무계획적으로 살지 않는 것, 열심히 부끄럼없이 사는 것, 그것 아니겠나. 또 하나의 문이 저기 열리고 있지 않는가. 빗소리를 친구삼아 혼잣말 하고 있다.
단 것 좋아하셔서 호빵도 좋아하셨던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전화 드렸더니, 혼자 계시단다. 엄마는 친구분 댁에 놀러가셔서 주무시고 오신다고, 나보고 무슨 일 있냐고 하신다. 전화를 바꿔든 아이가 할아버지한테 어제산 그림그리기 책 벌써 다 끝냈다고 자랑을 한다. 통화를 끝내고 돌아서는 녀석 얼굴이 스마일. 잘 했다고 다음에 만날때 상주신다고 하셨단다.
새벽 한시가 다 되어가는데, 잠은 이미 달아났다.

--- 2년전 이맘때 태안 신두리 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