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고 독설같은 느낌의 시가 어디 최영미 시뿐이랴마는

어쩐지 그녀의 시는

그 독설이 독설로만 읽히지 않고

그동안 표현되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숨어있던 어떤 감정을

있는지조차 의식 못하고 있던  내 감정을

시인이라는 그녀의 눈부신 능력은

이렇게 시로 구체화시켜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했다.

 

위의 책들은 그동안 직접 구입해서 읽은 최영미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이지만

구입하지 않은 그녀의 다른 책들도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까지)

도서관에서 빌려서 다 읽어왔다고 생각한다.

 

2005년 11월에 출판된 시집 <돼지들에게>를 그해 12월에 구입하여 읽었는데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첫 페이지의 시 <돼지들에게>를 포함해서

포괄적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구체적 대상을 비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돼지, 여우, 진주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누구를) 가리킬까

생각하며 읽게 만들었다.

지금 읽었다면 담박에 알았을텐데.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하나 그건 금이 간 진주.

그는 모른다.

내 서랍 속엔 더 맑고 흠 없는 진주가 잠자고 있으니

 

(중략)

 

그가 가진 건

시장에 내다 팔지도 못할 못난이 진주.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나 쓰이라지.

떠들기 좋아하는 돼지들의 술안주로나 씹히라지.

 

(중략)

 

나의 소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는 피 흘리며 싸웠다.

때로 싸우고 때로 타협했다.

두 개를 달라면 하나만 주고,

속이 빈 가짜 진주목걸이로 그를 속였다.

그래도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도망쳤다.

나는 멀리,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도망갔다.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기차를 타고 배에 올랐다.

그들이 보낸 편지를 찢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그 탐욕스런 돼지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늙고 병들어,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는데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제발 한 번만 달라고 ......

 

 

 

= 최영미, 시 <돼지들에게> 일부 발췌 =

 

 

 

 

 

13년이 지난 지금

 

바뀐게 없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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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2-10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지런히 읽으셨군요.
저는 그 유명하다던 <서른 살 잔치...>도 읽지 못했어요.ㅠ

hnine 2018-02-10 20:52   좋아요 0 | URL
제가 편집증 증세가 좀 있나봐요.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그 사람 것은 다 찾아 읽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
최영미 시인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지요. 위에 <시대의 우울>이라는 산문집은 아마 스무번도 더 읽었을거예요.
stella님도 그렇게 애정하는 작가가 있지 않으세요? ^^

stella.K 2018-02-11 19:37   좋아요 0 | URL
와우, 20번?! 대단하심다.
다 꿰고 계시겠내요.
없는 건 아니지만 두 번 이상 읽는 경우는 많지 않죠.
애정한다고 해도 꼭 그 작가의 책을 전작하게 되지도 않고.
김훈이나 신영복님 같은 분은 애정하죠.

아, 알라딘엔 독서 고수들이 넘 많아 저 자신 부끄러워질 때가 많습니다.
h님은 그중 숨은 고수십니다.
존경함다.ㅠ^^

hnine 2018-02-11 23:21   좋아요 1 | URL
스무번도 더 읽은 이유가 뭐냐하면요, 그때 제가 국외에 있었는데 한국말로 쓰여진 책은 딱 그 책 한권 가져갔거든요. 그래서 한국말 책이 그리우면 그 책만 줄기차게 읽는 수 밖에 없었답니다. 물론 책 내용이 좋게도 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