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가즈오 이시구로의 2005년 작. 작품 배경은 1900년대 후반 영국이다.

장기 기증을 위해 태어났고 키워지는 이야기를 이렇게 문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또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 복제가 지금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이 소설이 발표될 당시 2005년에도 이미 복제에 대한 소재가 소설의 주제로 쓰인 것이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작가는 복제인간, 장기 기증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 그것을 소재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은 물론 처음엔 자기들이 어떤 목적으로 이 학교에 모여 교육을 받는지 모른다. 한 교사에 의해 기증에 대해 처음 언질이 주어지는 시기는 학생들이 열 세살때, 성교에 대해 가르치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로 타이밍을 맞추면서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기를 삼가해야할 어색한 주제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함께 주입시킨다. 소위 '들었으되 듣지 못했다'는 식.

기증할 후보 학생들의 성향 추적 자료로 다른 것이 아닌 이들이 그려온 그림을 선별하여 보관한다는 아이디어는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라는 차원에서 남과 다른, 가즈오 이시구로다운 발상 아닌가 싶다.

 

"선생님은 로이한테 그림이나 같은 건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다'고 했어. '영혼을 드러낸다'고 말이야." (245)

등장하는 아이들중 가장 어리숙해보이는 토미가 그것을 추론하여 캐시에게 야기하는 대목에선 '이 아이가 토미 맞나?' 했다.

나중에 루스가 토미의 이런 추론을 캐시로부터 전해 듣고서 토미 앞에서 일축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루스의 미묘한 심리, 즉 속마음과 다르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심리, 그걸 바라보는 캐시의 심정, 당황하는 토미의 마음 등을 끄집어 내어 루스와 토미, 토미와 캐시, 루스와 캐시, 이 각각의 관계를 작가는 매우 섬세하게 묘사했다.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이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작가의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장벽, 그리고 동시에 존재하는 연민이 이 셋을 어떻게 끌어안게 하고 어떻게 멀어지게 하는가를 표현하는 방식 말이다.

결말이 가까와오면서 (장기기증)집행 연기에 대한 희망의 뭉개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우리가 너희 작품을 걷어온건 거기에 너희의 영혼이 드러나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좀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그걸로 너희한테도 영혼이라는게 있음이 증명되기 때문이란 말이다. (357)

난 여기서 나름대로 가닥을 잡는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들이 단지 만들어진 기계같은 존재, 소모품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처럼 영혼이 있는 존재라는 것.

그러면서 괜히 북받쳐 오른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장기기증이라는 그들의 존재 목적을 학생들이 알게 해야한다는 루시 선생님과, 학생들이 알게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에밀리 교장선생님의 대립을 통해,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 과연 어떤 쪽이 나은지 스스로 물어보게 한다.

너희는 멋진 추억이 있고, 교육을 받았고, 교양이 있어. (358)

각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니? (367)

 

이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가히 숨을 참고 읽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끝까지 침착하게, 마지막 숨을 고르는 심정으로 절제하여, 그러나 아름답게 써낼 수 있을까.

 

눈물이 나오는대로 내버려둔채 책장을 덮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나는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았다. 다만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차로 돌아가 가야 할 곳을 향해 출발했을 뿐이다. (393, 이 책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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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1-2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노벨상 작가의 작품은 잘 안 읽는데
이번엔 일본 작가라 관심이 좀 가더군요.
일본 문학은 좀 읽을만 해서.
그런데 이 작가도 호불호가 있는가 보더군요.

이 작품 영화로 나와서 얼마 전 봤는데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책은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ㅋ

hnine 2018-01-24 19: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노벨상 작가 작품 특별히 챙겨 읽지 않고 더구나 일본 소설은 가뭄에 콩 나듯이 읽어요. 그런데 가즈오 이시구로 소설은 그냥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가즈오 이시구로 책은 일본어로 쓰이지도 않았고 작가가 어릴 때 일본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해서 지금은 영국국적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아요. 작품도 일본 문학에 포함시키지 않고 영미권 문학에 포함시키더라고요.
영화로 만들어진건 알고 있는데 저는 아직 못봤어요. 책은, 저는 참 좋던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