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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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대를 하게 되는 작가가 있다. 김숨 작가가 그렇다. 그녀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 팬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녀의 신간 소식은 늘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늘 기대만큼 못 미치더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은 어느 정도는 기대할 만 했다. 내가 읽은 그녀의 다음과 같은 전작들은 최소한.

 

 

 

 

세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딱 세편.

책 제목 <당신의 신>이라는 단편은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첫번째 단편 <이혼>중에 나오는 구절에서 책 제목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야.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신이 아니야. 당신의 신이 되기 위해 당신과 결혼한 게 아니야.

여기서 '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좀 과장일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결혼할때 비슷한 생각을 한번 씩 하는 것은 사실이다. 결혼함으로써 내 삶이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상대방의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보다는 내 삶이 업그레이드 되는데 상대방과의 결혼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기대하는 것. 결혼의 결과로 지금보다 더 바닥으로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대와 현실과의 엄청난 갭을 결혼 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 아마도 이 책에 실린 세 작품의 공통점을 찾아 내자면 그런 발버둥, 안간힘, 포기, 혹은 체념과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이혼>이라는 이 단도직입적인 제목의 단편은 어리버리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처음의 어리버리 상태.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 길지 않은 단편이라서 (이 책 전체 분량이라봤자 200쪽이 안된다.) 다시 읽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두번 읽어도 느낌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결혼의 이유가 커플마다 각양각색이듯이 이혼의 이유 역시 그러할텐데, 문장과 서사는 자연스럽게 진행되나 참신하진 않다. 위에 인용한 저 문장도 사실 전혀 새로운 문장이 아닌 것 처럼.

<읍산요금소>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스에서 일하는 정산원이라는 직업이 좀 특이할까, 이리 저리 번죽만 울리다가 끝나는 느낌.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바로 요양원과 납골당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의미를 붙이기에는 서사 자체가 약하고 뒷받침으로 역부족이다. 뫼비우스의 띠도 다른 작품들에서 너무나 자주 인용되어 식상하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마지막 작품 <새의 장례식>. 그러고보니 책 표지의 저 히끄무레한 것이 흰 천을 뒤집어쓴 새였구나. 이혼 전 부인의 현재 남편으로부터 새의 장례식에 초대된 전 남편. 여자는 빼고 전 남편과 현재 남편이 독대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폭력의 대물림. 폭력의 순환은 아무리 이성을 지닌 자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작가만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야기 설정, 풀어나가는 형식, 서사에 새로운 시도가 보였다. 앞의 두 작품이 각각 문학동네와 한국문학에 발표했던 것인데 반해 <새의 장례식>은 이 책으로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위해 쓰여진 작품이라고 해야되는데, 그렇다면 마감없이 시간 제약 없이 쓰는것이 더 작가를 작가답게 한 것일까?

이번 소설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반나절만에 후루룩 읽힌 것도 좀 아쉬운데, 요즘 기억력으로 머리 속에서도 그만큼 빠르게 잊혀질 것 같아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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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12-2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제 느낌도 그렇습니다. <국수>라는 단편집 너무 좋았었어요.

hnine 2017-12-20 12:03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아쉬워 다음 작품을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저는 그럼 망설임없이 <국수>를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