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엄마에게 봄날 약수터에서 처음 만난 노랑나비처럼 가볍던 영주의 발걸음을, 숲 속 어느 나무 아래선가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같이 청량하던 웃음을, 비가 많이 온 여름날 인와산의 물소리 같이 풍성하던 그 아이의 재능을 이야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더라면 엄마는 울었을 것이고, 그 아이가 있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떠올렸을 것이고, 그 아이가 엄마와 아버지 인생에 가장 멋진 성공작이었음을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엄마는 문득 아버지이 얼굴에서 영주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를 끌어안았을 텐데. 그러면 아버지는 엄마에게 엄마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성공이 오로지 영주 하나만은 아니었고, 앞으로도 많은 것에서 희망은 찾을 수 이을 것이라고, 무엇보다도 영주는 우리 식구들이 이렇게 서로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입 안의 모래알처럼 서로를 못견뎌하는 것을 절대 원치 않을 것이라고 그때 이야기해도 늦지 않았을텐데.-2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