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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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대한 다른 분들 리뷰를 훑어보다가,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이 작품도 좋지만 아무래도 토니 모리슨의 작품을 능가하진 못한다는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토니 모리슨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는 동기가 충분히 차올랐다. 더구나 고등학생 아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 이 책을 함께 읽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잘되었다 싶어 읽어보게 되었다.

인상으로 사람을 짐작할 것은 못되지만 토니 모리슨의 사진만 봐도 나는 어떤 카리스마를 느끼곤 했다. 진지하고 깊이있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것 같은 거장의 모습이랄까.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처음 읽으면서도 약간은 긴장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기운이 괜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것이다.

한 개인의 경험이라고 해도 끔찍한데 흑인 노예의 삶은 대물림 된다. 나 하나로써도 저주 받은 것 같은 삶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자식에게도 되풀이 될 것이라는 것보다 절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것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세서는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을까. 그것이 그녀의 일생동안 어떤 결과를 가져오리란 걸 그녀도 몰랐을 것이고, 읽는 독자도 모르며 한동안 읽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머리속은 작품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얼마나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있어야 했을까. 아니, 작가 스스로 얼마나 여러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더구나 의식보다 더 끝을 알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 인간의 양심, 보통의 인간으로서 짐작할 수 없었던 인간의 다른 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가의 능력 등이 여지없이 증명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873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블루스톤 로드 124번지. 할머니 베이비 석스, 엄마 세스, 딸 덴버가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얼마 안되어 남편의 친구이자 예전에 켄터키에서 함께 노예로 일했던 남자 폴디가 세스를 찾아 이 집을 찾아온다. 그리고 또 한사람, 정체 모를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녀의 이름 빌러비드.

이 책의 첫문장은 다음과 같다.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다음 문장은,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갓난아이의 '독기'라니.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아픈 기억이 그 한도를 지나칠때, 그것이 한 개인도 아니고 인간의 역사를 이룰때 어떻게 되어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흔적을 남기는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고 행한 일들을 보며 인간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죽었으나 죽지 못한 영혼, 살았으나 죽은 이의 그늘 아래 살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 그래도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젊은 세대. 토니 모리슨은 삼대에 걸친 얘기를 통해 결국 그래도 나아가라고, 피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를 단죄하는 것은 신도 아니고 바로 그 인간인지도 모른다.

다 읽고 고등학생 아들과 얘기를 했다. 이 소설의 세서의 입장이 이해가 되더냐고. 아들의 말, 이해가 된다면서 자기라도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요즘도 가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도저히 구제될 수 없다고,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엄마가 자식들을 데리고 세상을 떠나는 뉴스 기사를 보곤 하는데 그것도 그럼 이해가 되냐고 했더니 그것과 비교가 안된다고 그런다. 나무마다 죽은이의 시신 (시신의 일부)이 무슨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흐뭇해하고 아름답다고 까지 하는 상황에서 자기 자식을 키우고 결국 같은 죽음을 당하게 하느니 그 아기가 아직 무엇을 느끼고 깨닫기 전에 그 경험을 안하게 해주자는 부모의 마음이라면서.

그래, 네 말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제목과 내용의 관계가 흔히 그렇듯이 빌러비드라는 제목이 참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마지막 결말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은 후에도 한동안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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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0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아드님이 벌써 고등학생이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겠네요. 청년이에요.ㅎㅎ
세월 참 빨라요.^^

hnine 2017-12-04 22:23   좋아요 0 | URL
자라는 모습을 줄곧 봐온 엄마 눈에도 얘가 언제 이렇게 자랐지 싶답니다.
어릴 땐 그렇게 조잘조잘 얘기도 잘 하더니 지금은 제가 열마디 하면 겨우 한마디 할까 말까 해요.
그래도 이젠 책도 같이 읽을 수 있고 대화가 될 때가 있으니 감사하지요.
맞습니다, 세월 참 빨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