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 주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해생 옮김 / 샘터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하루 종일 자신을 위한 일 보다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루, 일주일, 또는 한달 동안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는 일과가 되옴에도, 주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전에 가졌던 꿈과 목표는 어느 구석으로 밀려 났는지 기억도 못 한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굼벵이 주부라는 반성을 하고 있게 하는 것은, 우리 나라나, 독일이나, 다를 바 없는 현실이란 말인가.

그래도 저자는 구구절절 신세 타령 조의 글이 아닌, 간결하고 코믹한 필치로 평범한 주부의 일상을 책 한 권 속에 잘 그려내고 있다.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 아니어서인지, 금방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이 글 속에 여기 저기 숨어있었다. '누가 좀 해야할 일'이라고 불리는 일은 모두 주부가 해야 해결될 일이며, 가정내에서 그나마 주부의 위력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녀의 선택, 그녀의 차림새, 그녀의 취향을 무시하고 비하함으로써 가족들은 쾌감을 느끼며, 이 세상 어떤 일보다도 TV의 스포츠 중계에 열을 올리고 흥분하는 남편을 보며, 지금 이시간 내가 이혼을 하자고 하면 거들떠 볼까 생각한다. 그녀가 고양이를 키우며 오래 동안 별 탈 없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고양이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녀가 고양이에게서 특별히 뭔가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는 서글프지만 공감을 해야했으니.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이렇게 일생을 산 주부에게 댓가로 주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댓가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살아내자 하기에는, 다른 사람의 일상이라 할지라도 마음 한켠이 산뜻하지 못하다. 하물며 그것이 바로 나의 일상과 다르지 않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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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10-20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저의 일상과도 같아요. 요즘은 다람쥐 쳇바퀴같아요.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깨우고 밥 먹이고 허둥지둥 출근하고 퇴근후에도........ 굼벵이주부로 살고 싶어요.

hnine 2006-10-20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에 너무 변화가 잦아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너무 없어도 재미를 못느끼지요. 적당한 선을 유지한다는 것이 늘 어려워요. 그래도 세실님 페이퍼 보면 재미있게 사시는 것 같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