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
장현갑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학자의 인생실험실> 이라는 제목을 본다. 심리학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생은 일종의 실험 과정 아닐까. 계획과 예상 후 실험. 실험에 따른 결과. 결과에 대한 고찰.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 실험을 계획. 이런 과정의 되풀이가 곧 산다는 과정일테니까.

책 표지 맨 위 작은 글씨.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라고.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게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일어났던 일은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걸 평상시 의식하지 않고 살기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동안 인생은 희극이고, 나에게 막상 일어나버리면 인생은 비극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한국 심리학계의 거장이라는 저자의 나이 올해 76세. 30대에 대학교수직을 시작했으니 이른 성공의 길을 달렸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같은 30대에 정신의학과를 찾을 정도로 심리적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다. 

1997년 그의 나이 56세, 미국으로 안식년 휴가를 떠났고 방학을 이용해 미국을 방문한 가족과 함께 자동차 여행을 가던 중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 앞에서 부인과 딸을 보냈고, 아들과 저자 자신은 큰 부상을 당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경험. 그야말로 나에게 일어나리라 생각도 안했던 경험을 저자는 어떻게 극복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견뎌 오늘날 까지 왔을까. 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극복의 구체적 방법이라고 제시한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명상'이다. 가부좌 자세로 앉아 묵언 수행하는 모습은 이제 거둬내기로 하고.

명상에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집중명상 (止)과 통찰명상 (觀)이다. 독자에 따라 사마타 (samatha) 와 위빠사나 (vipassana)라는 말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집중명상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의도적으로 주의를 집중하는 방식의 명상으로서, 주문을 외우거나 참선을 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통찰명상이라는 설명 옆에 관(觀)이라는 한자를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내가 처음 접한 위빠사나에 관한 얇은 책이 생각난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관(觀) 이었다.

 

 

 

 

통찰명상, 즉 위파사나 수행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감각 느낌 또는 생각 등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고요히 관찰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 '마음챙김 (awareness)'라는 말로 번역되어 나와있기도 하다.

저자는 명상이라는 정신 활동과 그 치유효과를 개인적인 경험에서 그치지 않기 위해 과학적 효과와 근거를 제시한 국내외 여러 문헌들을 조사했고 이 책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 대부분이 대중적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고, 그럼에도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책 뒷편에 실제로 명상하는 구체적 방법을 따로 설명해놓기도 했는데 그리 복잡하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문제는 실천.

제행무상. 이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안정되기 어렵고 괴로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데,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러한 괴로움에 대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고해.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괴롭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리고 진화적인 측면에서도 인간의 뇌는 즐거운 경험보다는 고통의 경험을 더 잘, 오래 기억한다는 것을 안다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으리라.

이 외에도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 많았다.

  • 수처작주 입처개진 (어디에 있든 존재의 주인공이 되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진리) (15)
  • 일일시호일 (오늘이 좋아야 내일도 좋게 마련이다) (27)
  • 고통이 곧 의미 (29)
  • 신경가소성 (머리를 쓰면 쓸수록 머리가 좋아진다) (45)
  • 명상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기술 (46)
  •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라 해봐야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니, 오직 이것은 좋다느니 저것은 나쁘다느니 취사선택만 하지않으면 된다) (180)
  • 마음속 기억창고에 무엇을 저장할 것인가 - 긍정적 경험의 수집 (213)
  • 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 (223)

 

명백히 덜 괴로운 삶을 살게 하는 명상. 그렇다면 명상은 어떻게 하는가. 한줄 요약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보라' 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좋은 내용임에도 책의 별점을 세개만 표시한 것은, 위에 말했다시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어서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1-19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11-19 19:35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목에 인생 실험실이라고 했나봅니다. 실험 같기도 하고 모험 같기도 하고요.
낼 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저자는 이미 열살이 되기 전의 우울하고 불안했던 경험을 지금까지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겐 있다면서 ˝내가 그 증거다˝라고 하셨더군요.

nama 2017-11-20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이 아니라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기도는 내가 신을 향한 것이고 명상은 신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라 합니다. 응답없는 기도보다 명상이 더 인간적인 것 같네요.

hnine 2017-11-20 08:34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신에 의해서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 보다 내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저 말이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내 인생에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도 결국 내가 생각해서 판단하는 것이니까요.
위의 <관>이라는 책은 대학교 2학년때인가, 제 친구가 우연히 권해줘서 보게 된 책인데 그림 위주이고 글자는 몇줄 안되는 간단한 책임에도 생전 처음 보는 내용에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아있어요. 지금은 절판된 것 같아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