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농장을 탈출하는 것은 곧 존재의 근본 원칙을 이탈하는 것이었다. 불가능했다. (17)

 

콜슨 화이트헤드. 나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고등학생 아들아이는 책을 보더니 대뜸 이름을 알아본다 들어본 적 있는 작가라면서. 관심서적으로 눈여겨 보고 있던 중 마침 즐겨듣는 팟캐스트에서 선물로 보내주어 읽어보게 되었다.

중학생때였나,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를 몰래몰래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그때 TV외화로 방영되기도 했었던 것 같은데, 책으로 읽으면서도 어찌나 잔인하고 끔찍한 묘사가 많던지.

책 제목을 보고는 짐작되지 않지만 이 책 역시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그린 작품이다. 1800년대, 미국에 아직 버젓이 합법적인 제도로서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남부의 노예들은 조금이라도 자유가 있는 곳을 찾아 목숨을 걸고 북쪽으로 도망가는 시도를 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바로 이런 노예 해방 조직 이름이었다. 여기에 작가의 작가적 창의력 발동하여 조직의 이름뿐 아니라 노예들을 비밀리에 이동시키는 지하철도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닌가 싶다.

중심 인물은 어린 흑인 소녀 코라.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농장에서 할머니 대부터 엄마, 그리고 코라에 이르기까지 노예로 일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자유를 찾아 도망가는데 드물게 다시 붙잡혀 오지 않게 되자 혼자 남은 어린 코라는 더욱 심한 감시와 핍박을 받으며 엄마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그 엄마를 언젠가 찾고 말겠다는 꿈을 키우며 고생을 견뎌낸다.

백인 농장주들의 노예를 다루는 정도는 이미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다.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를 다루는 수준도 못될뿐 더러, 공식적으로 물건으로 취급한다. 어느 악덕한 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런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지,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성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치를 떨다가, 그래도 그 극단에 있는 부류가 있지 않은가를 생각해낸다. 같은 백인이면서 노예들의 탈출을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분명히 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흑인이어서 백인이어서 잔혹하다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종이 워낙 극에서 극으로 다양한 특성을 나타낸다는 말이 되나보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그 멀고 고단한 코라의 여정에서, 어느 한 순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멈추지 읺았다는 것은, 결말이 어떻게 되었든지 그 자체로 뭉클하게 한다.

 

유명한 상의 후보로 여러번 올랐고 수상도 여러번 한 작가 콜슨 화이트 헤드. 이 책이 아마도 우리 나라에 번역된 첫작품인 듯 하다.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여 훑어보다가 데뷔소설인 <The Intuitionist> 의 내용을 보니 이것도 읽어볼만 한 것 같다. 엘리베이터 검사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흑인 여성이 알수 없는 부패한 정치 세력에 휘말리고 엘리베이터에 대해 상반되는 두 이론인 실험주의자파와 직관주의자파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이 내용이라는데 엘리베이터라는 물체와 직관주의라는 생각으로 저자는 현대 우리 사회의 무엇을 상징하여 표현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진다. 아마 누군가 열심히 번역을 하고 있을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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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11-0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코라가 행복했던 때 있잖아요. 처음 정착했을 때, 너무 마음을 놓아버린 거 있죠.
다시 잡혀갈 때, 제 머리털을 뽑을 뻔 했어요. 막 울고 싶기도 했구요.

저도 찾아봤더니 콜슨의 다른 소설은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더라구요.
번역하시는 분들, 부지런히 힘내주시길^^

hnine 2017-11-02 06:02   좋아요 0 | URL
아, 그 부분이요! 그런데 어쩐지 책의 남은 분량으로 보아 그렇게 행복한 정착으로 끝나지 않을것 같더라고요.
코라가 대단해요. 저 같으면 몇번의 시련 끝에 꿈을 포기한채 살은 듯 죽은 듯 숨만 쉬며 살지도 모를텐데요.
번역본이 또 나온다면 직관주의자와 존헨리의 나날들 (맞는 제목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것이 더 먼저 번역되서 나올까요... 상상하며 즐거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