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리 내겐 일본 소설이 익숙하지 않니 뭐니 해도 도저히 이 책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두툼한 책 속에, 국제 피아노 콩쿨 얘기가 어떻게 그려져 있을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 소개글을 훑어 보니 콩쿨이 그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것이 아니라 콩쿨 과정이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구입해서 읽어보기로 결정!

 

3년에 한번씩, 2주 동안 열리는 일본 요시가에 국제 피아노 콩쿨이 이야기의 무대이다. 1차 예선에 참여하는 연주자가 90명. 2차, 3차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는 사람은 6명이다. 1차 예선부터 3차 예선까지는 지정곡 위주이지만 본선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연주 실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본선은 거의 각 참가자의 리사이틀 형식으로 한명당 1시간의 연주로 진행된다.

참여한 연주자들은 피아노를 수년간 연습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콩쿨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만 같을 뿐 성장배경, 음악의 색깔, 음악을 대하는 자세, 음악에서 추구하는 것 등은 모두 다르다. 이 소설은 주로 네명의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네명중 예선부터 모든 심사위원들을 충격과 혼돈에 빠뜨린 참가자는 '가자마 진'. 이미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열여섯살 가자마 진의 이력서는 깨끗하고 심지어 자기 피아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다른 참가자는 한동안 피아노 치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계기삼아 콩쿨에 참가한 '에이덴 아야'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해 피아노를 중단했어야 했던 경험, 잇달아 주위 사람들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늘 안고 있다. 라틴계 일본인을 어머니로, 프랑스인을 아버지로 둔 '마사루'는 완벽에 가까운 피아노 실력은 물론이고 훤칠한 외모에 발고 긍정적인 성격까지 흠잡을데가 없는 우승 후보이다. 그리고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워왔으나 과연 피아노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지 고민끝에 평범한 직장인의 길을 택했으나 그 꿈을 접을 수 없어 밤을 지새워 연습에 매진하여 콩쿨에 참여하는 '다카시마 아카시'. 이 넷중 누가 최고의 영예를 잡든지 이미 그들은 모두 천재성을 인정받을 경지의 사람들이다.

이쯤 되는 연주자들이라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기술적인' 완벽함은 이미 넘었어야 할 고개. 본문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랑랑은 한 명으로 족하다. 똑같은 타입이 한 명 더 있어봤자 무슨 소용일까. (151)

아무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라 할지라도 그것이 이미 누군가의 연주를 연상시킨다면 그건 아무 의미 없다는 말이다.

최근 조성진을 비롯해서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참여도와 성과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 가나데라는 여성이 일본, 한국, 중국 참가자들의 성격을 비교하면서 한국 참가자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부분이 나오는데 틀리지 않다고 본다. 격렬함과 동시에 처연함.

흔히 말하는 한류 스타를 볼 때도 드는 생각인데 가나데는 그들에게서 올곧은 정열과,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일종의 '처연함'을 느낀다.

그들이 민족적으로 갖는 '격렬함'과 '처연함'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음악과 궁합이 좋다. (184)

 

어째서 이 세상에는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 걸까.

절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째서 저렇게 태어나지 못했을까. 어째서 저런 사람과 같은 악기로, 같은 시대에, 같은 콩쿠르에서 승부를 겨루게 되었을까.

어째서, 어째서. (197)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의 절규를 연상시키는 대목인데, 위에 말한 네명의 참가자중 이런 고민을 했을 사람은 짐작하다시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뒤늦게 꿈을 펼쳐보고자 콩쿨에 참가한 다카시마 아카시이다. 뒤에 번역자의 글을 읽어보니 번역자는 개인적으로 작품 속 인물중 이 사람에게 가장 매력과 공감을 느낀다고 썼다. 이심전심. 나도 그렇다.

 

이 책 속에는 콩쿨에 참가하는 연주자들뿐 아니라 2주 동안 이들을 심사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고민과 갈등도 충분히 표현되어 있었다.

시험당하는 것 바로 우리야 (319)

심사 내용으로 그 사람의 음악성이나 음악에 대한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에 자신들 역시 시험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심사위원들.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겠다고 이해를 하게 된다.

그를 진정한 '기프트'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재앙'으로 삼을 것인지 (579)

기존의 룰과 형식을 전혀 개의치 않고, 어떻게 보면 '자기 멋대로' 연주하고 내려가는 한 참가자를 놓고 심사위원들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 내용을 소설 속에 끌어들인 작가의 아이디어를 높이 사고 싶다.

329쪽에, 국보급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이 자기는 나무 안에 담겨있는 불상을 꺼내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천사를 풀어준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인용한 것인가? 그런데 이 일화가 이 소설의 주제와 꽤 상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왜 그대로 미켈란젤로의 일화로서 인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본선을 하루 앞두고 자기는 음악을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피아노를 친다고 말하는 가자마 진에게서 에이덴 아야는 어떤 영감을 얻는다. 그동안 계속 자기 자신에게 물어오던 질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이 세상에 음악은 원래부터 존재했고 갇혀 있는 음악들을 이 세상으로 꺼내어 보여주는게 피아니스트로서의 사명이라는 뜻인데 읽는 나도 순간 멈칫하게 만든 대목이다.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 자기 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에이덴 아야가 가자마 진의 말에 정신의 눈을 뜨고 한발 더 높은 곳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무대로 나가는 장면을 묘사한 두 페이지 (682, 683)는 읽으면서 벅차고 감동적이어서그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손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국제 콩쿨의 최고의 자리를 향한 참가자들끼리의 뻔한 경쟁, 질시, 반목, 이런 내용이 아니어서 참신했고, 그래서 좋았다. 작품 전반 어느 참가자를 막론하고 다른 참가자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서로에게서 배울점을 찾는 태도는 이 소설이 가진, 억지스럽지 않은 미덕이하고 생각한다.

 

콩쿨이 막바지로 가면서 각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해답을 찾아간다. 콩쿨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면서.

문득 가슴속에 답이 훅 떠올랐다.

음악, 아마도 음악은 인간을 다른 생물과는 다른, 영적인 존재로 진화시키기 위해 인간과 함께 태어나 함께 진화해온 게 아닐까? (653)

어째서 나는 연주할까, 어째서 음악은 이렇게 진화했을까 하는, 마사루의 의문에 대해 그가 스스로 찾은 답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7-10-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피아노를 오래도록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강제로 시킨 것이 저에겐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했고, 그나마 클래식을 꾸준히 들어왔더라면
거부감을 조금 일찍 벗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벗어난지가 얼마 안 되요.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피아노는 정말 테크닉이더군요.
그걸 몰랐을 땐 별 감흥이 없었죠.
백건우나 조성진 연주를 들으면 어떻게 저 긴 곡을 다 외워서 할까?
놀랍더군요.
언젠가 백건우 연주 실황을 본적이 있는데 손가락이
무슨 시가나 비엔나 소세지 같아 굵더라구요.
그러니 연습을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ㅋ

일본 소설 별로인 h님께서 별 4개를 주실 정도라면 이 소설은 성공한 거네요.
저도 옛날 일본 소설은 관심이 많지만 요즘 소설은 관심이 없는 편인데
이 작품은 하도 여기 저기서 좋다고 해서
저도 기회있는 대로 한 번 읽어 볼까 합니다.^^

hnine 2017-10-08 18: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 그것이 그림일수도 있고, 글쓰기일수도 있고, 인생에 목표로 하는 무엇이든 대입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거예요. 저에게는 그것이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나 했을까 생각도 해보았어요.
이 책에 보면 실제로 조성진에 대한 언급도 있답니다 ^^
그리고 작가가 4년 동안 취재하여 공들여 쓴 소설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도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피아노 콩쿨이 아니라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많더라고요. 제가 제대로 잘 찾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요. 일단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