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우리시대 가족의 심리학
한기연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왜 우리는 굳이 가족을 이루어 사는가. 어떤 가정에서 어떤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내맘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성인이 되어 자기의 가족을 만드는 것은 충분히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꼭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가족만이 사회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최종적으로 기댈 곳,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가족이라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기도 하다. 왜 가족은 이렇게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족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만들어가는 가족에 대해서는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독이 아닌 약이 되는 보금자리로 만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의 저자도 말한다. 가족은 언제나 희망인 동시에 곧 고통이라고.

이 책의 전반부는 주로 사례 중심인데, 가족의 사례라는 것이 대개 좋은 예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익숙한 내용이기에 좀 진부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저자의 의견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책의 중반부터는 좀 더 집중이 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가족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다른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에서 <한계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

우리 나라 가족관계 형성 과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 있다.

"어디서 말대꾸야!"

 부모 말에 대해서 자식은 일단 복종해야하고 자식은 들어야 하는 것이 도리였음을. 부모에겐 편하지만 자식에게 그것처럼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은 없다. 그래서 자식 입장에서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마음 속에 쌓이는 것이 많아져 간다. 이래야만 할까?

무기력하게 부모의 뜻을 따르는 것, 아니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 이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기대에 존중과 이해를 보내면서도 나의 상황과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 또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48)

같은 말을 옆집 아저씨에게 들으면 넘어갈 수 있는 말을, 내 가족에게 들으면 불같이화를 내게 되는 것은 왜 그럴까.

가족 간의 대화는 바로 그 순간만의 대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간의 말이나 행동은 단지 현재의 맥락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해 온 과거의 경험을 포함한다. (67)

오랜 시간 누적해 온 경험의 두께때문에 갈등의 크기도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현명할까. 어디서 말대꾸야라는 윽박지름 말고. 참는 게 최선이라는 최악의 수동성 말고.

갈등 상황에서 잘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가족들을 살펴보면, 늘 상처 입은 그 자리에서 맴돌 뿐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들지 않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그런 상황에 빠진 현실 자체를 절망스러워 한다고 한다. 반면, 문제 상황에서 잘 빠져나오는 가족들은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며 누군가에게 상반되는 태도나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즉, 가족 모두가 같은 감정일 수 없다는 것, 또 복합적인 감정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가족의 부정적인 면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으로 해석한 에리히 프롬의 말을 빌어, 가족때문에 생긴 내면의 상처에 갇혀 사는 대신, 갈등을 해결하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이별하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부모는 우리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가장 많은 것을 베풀어 준 사람들이다. 하지만 부모에게도 실수는 있을 수 있고, 부모가 내게 준 것들이 사실은 매우 잘못되고 부당한 것일 수 있다. 부모가 내게 보낸 낡고 오래된, 부정적인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들과 과감히 이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태껏 돌아보지 못했던 미지의 땅, 나만의 대륙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만족스럽지 않은 내 인생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안에 파고든 부모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정하고 그 실체와 직면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118)

우연인가. 얼마전에 이 서재의 다른 카테고리에 더이상 부모 탓 하는 걸 그만 두게 되었을 때가 비로소 어른이 되는 때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남들만큼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시절 이후의 내 인생은 당연하게도 많은 부분이 내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 영향력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의 선택이다. 내게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그 기회가 있다.(262)

문제의 시작은 부모로부터 비롯되었지만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내 앞에 주어진 기회를 이용 못하면서 지나간 과거만 탓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 과거에 머무른 사람, 아직도 자기의 세계, 자기의 인생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내 삶에 대해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잠재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키워드를 하나 뽑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한계설정>이라는 단어를 뽑겠다.

관계는 나 혼자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계까지는 상대방과의 갈등 해소와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으나 그것으로 내가 원하는 관계로 완전히 바뀌기를 기대한다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에게 나를 어디까지 관여 또는 간섭하도록 허용할 것인지 그 경계를 설정하고, 필요한 상황에선 상대에게 그 경계를 알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상대방'이란 물론 가족의 한 사람을 말하는데 주로 부모를 말한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때 그 마음을 꾹 누를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곧바로 저항하거나 반대 의견을 쏟아낼 것도 아니고, 일단 상대방의 말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후 (예를 들어, 엄마 말이 뭔지 알겠어요. 엄마라면 그렇게 보실 수 있겠어요), 다음에 내 의견을 말하는데, '왜'라는 질문에 '때문에'로 답해야 한다는 데 집착하지 말고 그저 내가 알려야 하는 사실이 무엇인지만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내가 어떤 생각의 과정을 통해 이런 결론을 내렸고, 그것이 아버지나 어머니와 관점만 다를 뿐 어느 쪽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자식된 사람들이 부모 앞에서 내 의견을 조목조목 말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부모와 반대 의견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말없는 동조로써 억지로 내 의견을 누르는 것보다는 '시간이 필요하고 지금은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내가 이 관계에서 무력하지 않고 힘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거절하고 난 후에 왜 내가 싫어하는지 어떻게 설명할까 바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싫다는 것.

 

식상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가족 간의 갈등 해결엔 대화와 소통, 그 외엔 답이 없다. 단,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와 갈등이 다 해결되리라는 오해만 하지 않는다면.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을 결국 설득 시켜 내 뜻에 동조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했다는 것이라고.

 

다소 무겁고 냉소적인 것 같은 내용 같지만 읽어가다보면 저자의 의도가 전해진다. 원하고 노력하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가족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잘못된 관계와 쌓이는 갈등을 두고 보기만 하여 그것을 지옥으로 만들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다 읽고 동생에게도 권해주었더니 배송된 책 제목을 보고 동생의 중학생 딸이 무슨 책 제목이 이렇냐고 놀라더란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라는 말. 다 커서도 부모의 그늘 아래서 못 벗어나고 내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살지 말고 나만의 인생을 꾸려나가라는 뜻이다. 부모가 제공하는 울타리, 경제적이든 감정적이든, 그런 편리한 혜택도 내려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혜택도 누리면서 간섭에서도 자유롭겠다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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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8-27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맘에 안 들면 안 만날 수도 있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고, 맘에 안 든다고 안 만나고 살기가 어려우니 어려운 관계인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도 가족이란 이런 거죠. 내 아들 또는 내 동생을 때린 누군가가 있다면 가만 있지 못해서 복수해 주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 이 순간이야말로 (평소 못마땅하게 여긴 가족이었더라도) 가족을 사랑하는 순간인 거죠.

hnine 2017-08-27 16:17   좋아요 0 | URL
오자 수정하고 있는 중에 댓글을 주셨네요 ^^ 가족은 저에게 언제나 피할 수 없는 화두 같아요. 내 가정을 편안하게 할 수 있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개인적인 업적을 이룬다 해도 저는 별로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사랑과 증오가 백짓장 차이인 것 처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 가족. 저절로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서 늘 이런 책에 눈이 갑니다. 이건 내 얘기다, 밑줄 그으며 읽은 대목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