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다이애너 애실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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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소설 뒤에는 능력있는 편집자가 있다. 필립 로스, 존 업다이크, 잭 캐루악, 진 리스, 시몬느 드 보부아르, 마거릿 애트우드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작품을 다듬은 공으로 영국 국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편집자이자 출판사 사장. 이 책의 저자인 다이애너 애실 (Diana Athill) 이다. 요즘 말로 레전드급 편집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 1917년 생이니 올해로 100세. 이 책은 그녀 나이 아흔 되던 해인 2008년에 출판되었다. 90년이란 세월을 살아온 사람의 얘기라면 그가 유명한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귀기울일만 하지 않나. 근래 비슷한 제목의 책이 많아서인지 번역된 제목인 <어떻게 늙을까>보다는 원제인 <Somewhere towards the end>가 더 피부로 와닿는 것 같다.

표지의 고사리 그림. 예사로 봤는데 첫꼭지 글에 이 고사리 얘기가 나온다.

우연히 종묘 회사 카탈로그를 보다가 나무고사리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이국적인 식물이라고 생각했던 나무고사리를 영국의 정원에서도 키울수 있다는 말에 전화로 주문했다고 한다. 막상 도착해서 풀어보니 겨우 10cm도 안되는, 작고 여린 이파리 네개 달린 고사리인 것을 보고, 내나이가 지금 몇인데, 카탈로그에 나온 나무고사리로 키우려면 도대체 앞으로 몇년을 키워야 할지, 고사리가 다 자란 모습을 볼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워 산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책의 마무리도 이 고사리 얘기로 하는 것을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평생 결혼을 한적 없고 그래서 자식도 없지만 연애 경험은 모자라지 않아서 그 중 한 남자인 자메이카 출신 극작가와는 결혼만 안했다 뿐이지 결혼 생활 못지 않게 남편과 아내 처럼 오랫 동안 함께 살아오기도 했다. 결국 그 남자에겐 다른 애인이 생겼는데, 그 여자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고 저자는 자기 집으로 들어와서 살라고 권하기까지 하여 이른바 '삼자 동거'를 하기도 했단다. 이 정도의 쿨한 성격이다 보니 솔직히 이 책의 내용들이 다 내 얘기 같고 앞으로 나도 겪을 얘기 처럼 피부에 와닿게 공감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거침없고 주저함이 없다. 성, 종교, 인종, 가족, 낙태, 어느 것이든 그렇다. 자신감의 다른 모습일까? 아니면 자기 생각을 남에게 종용하는 것이 아닌 담에야 이렇게 솔직히 드러내는 것은 오히려 겸손함이라고 봐야 할까. 최소한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쓰지 않는 것 같아 글에 신뢰가 갔다.

"나이든 여자에게 외모는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가 아니라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 때문이다"

네, 동의합니다. 이유가 맘에 들어요.

한동안 사귀던 애인과 헤어진후 저자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주었던가?"

내가 손해였다거나, 네가 손해라거나, 그게 아니어야 한다. 연애를 할땐 그도 내 인생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나도 상대방에게 뭔가 주는게 있고 그의 인생에 보탬이 되는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가 젊었을 적보다 훨씬 세련돼서 대다수가 우리 때보다 손윗사람들과 훨씬 잘 지내는 것 같다. 하지만 장담하는데 그들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 할 거라 기대하거나 동년배 친구에게 청할 일을 그들에게 청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된다. 그들이 너그러이 베푸는 건 뭐든 즐겁게 받으시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112)

이말 잊어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20대 학생들과 함께 할 일이 나보다 더 많은 남편에게 나도 종종 말하곤 한다. 더 있다 가시라고 한다고 끝까지 자리에 붙어 있으면 안된다고. 요즘 말로 '낄끼빠빠' 라고 하나? 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남의 책을 만드는 일만 해오다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야 자기 책을 내면서 늦은 감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어떤 새로운 일을 함으로써 좋은 점도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들었다.

첫째, 뜻밖의 일이라서 더 가슴 벅차다. 아마 젊었을 때라면 당연한 결과로 여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 이젠 마음 깊이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모든 일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다.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는 것은 소소한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결과에 대해 담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세째, 더 이상 수줍음 때문에 고생하지 않게 되었다.

 

에필로그로 거창한 얘기를 하거나 가르치려는 말로 맺지 않는 것도 좋았다. 앞에서 말한 그 고사리 얘기. 10cm정도 이던 고사리가 이제 30cm 정도 자랐다면서, 처음에는 천천히 자라지만 갈수록 자라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자라더란다. 그것이 카탈로그에 나오는 것 처럼 나무고사리로 자라는 것은 보지 못할지라도 양치식물일 때의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은 과소평가했노라고. 사기를 잘했노라고.

살아있는 한 인생은 진행중인 것. 언제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면서 오늘 뭔가 시도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중의적으로 읽히는, 멋진 에필로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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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7-08-13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마음 깊이 어떤 것도 중요치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늙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지요. 긴 글 덕분에 책 한 권 읽은 것같네요.^^

hnine 2017-08-13 19:37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인가 이런 책이 자꾸 눈에 들어와요. 아이 키울땐 어린이책과 육아책이라면 뭐든지 눈에 들어오더니 언제부터인가 이런 책에 자꾸 눈이 가네요 ^^ 멋있게 늙어가고 싶어요.
책이 아담해서 금방 읽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