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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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지 않았더라면 제목만 보고는 스스로 고르지는 않았을 책. 2005년에 출판된 책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책 속의 언어들은 고답적이고, 민속적이랄까, '우리 것 스러움'이 담뿍 묻어나는 어체였다. 남도 사투리속에 녹아 있는 삶의 고단한 여정과 동시에 해학, 애환 등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첫 페이지의 저자 소개를 자꾸만 다시 들춰보게 만들었다.

'부용각' 이라는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기생집의 구성원들, 부엌어멈 타박네로부터 대표 기생격인 오마담, 춤기생, 기둥서방, 집사, 간판 기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판소리 이야기로 풀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엮어갔다. 그 어느 누구의 삶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어느 한 구석 아름답지 않은 인생이 없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져서 어떤 일생을 보내는가 하는 이야기처럼 소설에 있어서 흔하지만 기막힌 주제가 또 있겠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의 어린 영준이 엄마로부터 떨어지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로 뒤엉킨다.

... 두 여자는 가지 않겠다고 뻗대는 영준이를 끌다시피 해서 부용각을 나섰다. 엄마! 엄마! 엄마! 양손을 붙들린 채 끌려가던 영준이가 뒤를 돌아보며 엄마, 하고 울부짖을 때마다 영준이와 눈이 마주친 기생들은 바닥에 푹푹 주저 앉았다 ...이 지붕, 이 마루, 이 기둥.....영준이 넌 기억할 것이다. 부영각의 안뜰과 바깥뜰에서 철마다 피고 지던 꽃들을, 별채와 뒤채의 낮은 꽃담을, 안중문과 바깥대문의 당당한 위용을...저 깊은 곳에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날 왈칵 밀고 올라와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게 우리네 추억이고 기억이지 않더냐...널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내가 죽고 오마담이 죽고 미스 민이 죽더라도 또다른 미스 민이 부용각에 남아 널 맞이할 것이다. 영준이 네가 생전에 오지 못한다면 너의 아이 너의 손자, 너의 증손자가 찾아오는 그날까지 부용각은 무너지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건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적어도 폐허에 한줌 재로 변해 부용각을 돌아보는 너의 발길 쓸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시름없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부용각의 안뜰로 구물구물 풀어지고 타박네의 옴팡눈엔 살금 눈물이 돈다. "니가 날 닮았으면 호랭이지 고양이가 되지는 않았을 꺼이다. 호랭이 새끼는 누가 뭐래도 호랭이가 아니더냐, 암만." ...

사람마다 태어나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걷게 되는 길은 사람의 수 만큼의 길이다. 누가 어느 누구의 삶을 가볍게 말할 수 있으랴, 자기가 걸어보지 못한 그 길에 대해.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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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9-1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장면 정말 눈물 나지요?
기생들의 끈끈한 동료애도 참 좋았어요.^^

hnine 2006-09-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좋은 소설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씩씩하니 2006-09-18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님 리뷰 읽으니..읽고싶어져요...
요즘 각 분야를 초월한 우리 것에....울 기관의 관심이 총 집중되어 있는데....

hnine 2006-09-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리뷰도 읽어보시면 아마 더 하실거예요.
거기 나오는 타박네 역할로 저는 탤런트 김지영을 추천하겠어요 (김지영 아실라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