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심리학자로 살아 보니 - 대한민국 상처 치유 심리 에세이
이나미 지음 / 유노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의 말이나 글이라면 혹시 지나간 세대의 일침으로 여겨질 때도 있겠지만 이 저자는 나보다 연배이긴 하나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는 않는다. 최근에 나온 책이기도 하고, 신문 컬럼 등에 기고했던 글인지는 모르겠으나 근래 우리 나라의 정치, 사회 현상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들을 많이 담고 있어서, 평상시 사람들과 이런 내용들로 충분한 의견 토론의 기회가 없이 혼자 생각만 해오던 나로서는 내 생각과 공통점, 차이점들을 발견해가며 읽어가는 맛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 보는 눈도 깊어질 줄 알았는데 남들은 어떤지 몰라도 최소한 내 경우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그렇게 온 정신을 사로잡던 고민중 이제 더 유효하지 않은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그러면 뭐하나, 예전에 하지 않던 새로운 고민들이 나이와 함께 밀고 들어오는걸. 그중 대표적인 것이 노년의 삶의 가치를 어디다 두고 살아야 하나, 이것이다. 다람쥐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어떻게 보람있게 살까 고민하더냐, 그냥 눈 떠지면 주어진 하루를 사는 것이다, 라는 어느 스님 말씀도 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람쥐가 아니라 사피엔스이니 어쩌냐. 인생, 허무하지만은 않다는 쪽으로 마음을 몰아가려는 노력을 하다가도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자체가 인생은 허무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지 않냐고 자문하는 하루, 한달, 일년. 그러다보니 이 책 중에서도 다음 구절이 눈에 쑥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노인들이 정신 치료를 받거나 상담을 받으려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젊은 의사들이 인생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생각으로 아예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이가 들면 정신분석을 해 봐야 별 소용이 없다고 프로이트가 토로한 적도 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은 오히려 중년을 넘겨야 참된 자기 개성을 찾아간다고 강조한다. 외부와의 관계, 또 외부에 보여 주는 이미지에 집중하는 젊은 시절과 달리, 자신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융 심리학적 용어를 쓰자면 작은 자아 (ego)를 버리고 완성된 큰 자아 (self)를 지향하기 위한 정신의 축 (Egp-self axis)을 다시 회복해 보는 것이다.

노인이 되어 모두가 직면하게 되는 노화와 죽음의 문제인간의 현세적인 상황을 뛰어넘는 우주의 영원성에 대해 묵상하게 만든다. (56,57쪽)

 

이건 부의 정도와도 상관없고, 학식의 정도와도 상관없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한번 쯤 주어지는 문제이고 죽을 때까지 지고 가는 문제가 아닐까. 이 문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영성의 영역에서 가치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을 저자는 제시한다.

 

노년의 아름다움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 화려한 옷차림, 멋지게 꾸며 놓은 살림살이, 남들에게 과시할 만한 성취 같은 것을 훌쩍 뛰어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의 영역에서 나와야 한다. (57쪽)

 

저자의 이 말을 특정 종교 여부를 뛰어 넘어 이해한다. 나는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 안될 문제들을 붙잡고 있구나, 그래서 뒤늦게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있는거구나 하는 생각.

남을 화나게 만드는 이들은 사실 자신에게 몹시 화가 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평소 내 생각과 같다. 남을 화나게 만드는 이들치고 행복하고 만족한 사람은 없다고. 본인이 혼자 불행하면 억울하니까 남까지 화나게 만들어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전가하려는 무의식적 소망에 휘둘리는 것이라고 했다. 내 경우엔 남을 화나게 만든다고 해도 내 속의 화가 조금도 해소 되지 않던데.

상처는 상처다. 마음의 상처는 구체적인 언어로 다시 변환돼야 회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그렇게 소중히 잘 다루어져 회복된 상처와 고통은 에너지라고 했다. 

인공지능의 영역은 점차 늘어나고 사람이 필요한 영역은 점차 줄어갈 미래가 눈에 보이고 있지만, 인공지능보다 사람에게 우월한 영역이 공감과 상상력이고, 사람의 성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한다. 지능을 뛰어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창조적인 에너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은 사람에겐 아직도 정신이 중요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항상 행복하고 풍요롭게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고 아침저녁으로 연속극 꼬박꼬박 챙겨 보고 쇼핑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쓰는 삶은 창조적이기 어렵다, 창조적이려면 외로워야 한다는 말에 공감, 아니 위로받았다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늘 외로워야 한다는 말이 아닐 것이며, 고립된 생활을 한다고 모두 창조적이라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지 않고서는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앉아서 사유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좀 더 구체적인 예로, 앉아서 책만 많이 읽는다고 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노동은 영성의 지름길이다"라고 했다. 예전에 불가에서는 아무 의미없어 보이는 일 같지만 일정 시간 열심히 청소하는 것부터 하게 했고 간디, 테레사 수녀, 혜능조사, 성 프란치스코 같은 분들은 모두 몸을 아끼지 않는 근면성을 보여준 분들이라고 한다.

자신의 상처와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고 인정하여 잘 보살핌으로써 회복한 사람들이 있다. 자기 안의 어두운 면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작은 자아를 뛰어 넘어 큰 자기로 나아갈 수 있고, 아픔을 웃음으로 이끄는, 진정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서 뻗어나오는 따뜻한 기운, 곧 에너지. 물질적으로 더 갖고 외형적으로 더 갖춰서 뿜어나오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저자의 책을 꽤 읽어왔지만 저자 본인의 얘기는 간혹 할지언정 가족 얘기를 풀어놓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간간히 저자 가족 얘기도 하고 있었다. 남들이 걷는 길은 꽃길, 내가 걷는 길은 가시밭길, 이렇게 오해하고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일까? 내 경우엔 내가 걷는 길이 꽃길이 아닌 것을 물론이고 남들이 걷는 길도 꽃길이 아니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으니 더 중증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도 말랑말랑한 뇌, 고무공 같은 사고 능력, 세포막같은 semi-fluidity를 잃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그런 사람으로 사는 예시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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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7-03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티비에서 성신제씨 스토리를 보았습니다. 나이 70 에도 여전히 새로운걸찾아서 시도하고 열정이 넘치더군요. 잘 지내시죠 나인님.

hnine 2017-07-03 12:36   좋아요 0 | URL
그분 저랑 나이를 바꾸셔야겠네요 ㅋㅋ 저는 70될려면 멀었는데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데 말예요.
저는 고만고만 지낸답니다. 거의 매일 집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지내니까 제 친구들이 저보고 너 그러다가 치매온다고 걱정하기도 해요.
프레이야님 어찌 지내시는지도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