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읽기 시작하자마자 사피엔스가 인류 진화 과정에서 가장 나중에 출현하여 현생하는 종이 아니라고 하는데서부터 충격이었다. 최종 진화종이 아니라 다른 Homo 속의 종들과 공존했다가 최종적으로 선택된 종이라니. 6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을 읽으면서 지루할 새가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이런 작은 놀람이 계속 터져주었다는 것이다. 내용도 그렇고 도무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글쓰기, 고리타분하지 않은 역동적 표현. 내용과 문장이 아무리 뛰어나도 번역이 제대로 그것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그 점에서도 아쉬움이 없었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세개의 혁명은 다음 세가지였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인지혁명이 70,000년전, 농업혁명이 12,000년 전에 발생한데 비해 가장 나중 일어난 과학혁명은 불과 5백년전. 그리고 이 과학혁명은 어쩌면 역사의 종말을 불러오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 모른다. 이 세 혁명이 인간에게,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 가면 생태계의 다른 생물들에게까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것이 이 책의 주제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는데, 더 나아가 진짜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사피엔스의 미래가 아닐까 한다.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이 역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며 유발 하라리의 의도도 그것이 아닐지.

 

진화와 멸종. 반대의 사건으로 볼 수 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이 둘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변화가 없는 평형 상태에서는 진화도 멸종도 없겠지만 생명체가 있는 계에서 이런 상태가 가능할리는 없을 것이고, 기존에 없던 변화에 시기를 맞아 어느 종은 진화의 길을, 다른 어느 종은 멸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인 셈이다. 나아가, 진화가 꼭 발전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 서적에서보다 더 실감나게 이 책을 읽는 동안 알게 될 줄 몰랐다. 예를 들어 소는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지만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동물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종교의 발생과 의의. 인간에게 종교가 왜 필요하고 종교는 인간에게 무엇을 주었나. 인간은 왜 종교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되었던가에 대한 그의 설명은 분명했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모여사는 인간의 집단 크기가 커졌고 이런 구조를 유지시키 위해 역할을 한 것은 종교와 돈과 제국주의. 이중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은 종교 말고는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취약한 구조로 인류의 질서를 유지시켜야 했던 인간. 거기까지만 얘기하면 인간은 그야말로 취약한 인간에서 끝났겠지만 기어이 초월적이고, 도전을 불허하는 종교라는 체계를 탄생시킨 이상 인간은 취약하지 않다. 유태인으로서 일신교를, 기독교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시각에 또 놀람.

 

밈 (meme)이라는 용어를 막연하게 알듯 말듯했는데 (이것은 즉 모르고 있다는 말), 유기체의 유전자와 대응하여 설명한 저자 덕분에 깨끗하게 머리 속에 정리할 수 있었다. 문화적 구성요소라는 정의만큼 새로왔던 것은 유전자가 유기체 진화의 기반이 되듯이  밈 역시 문화적 진화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즉 복제의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진화라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내 머리 속에 그것이 유전자와 같은 구성요소를 기반으로 복제되고 진화가 된다는 설명에 또 하나의 눈이 열리는 느낌.

 

근대 초기 유럽이 제국주의로 세력을 뻗쳐갈 당시 아시아의 대국이랄 수 있는 중국이나 페르시아는 왜 그러지 못했는가? 중국이나 페르시아가 세력 확장에 실패하게 된 원인은 영국이나 스페인 등의 유럽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기술적 낙후성도, 역사가 짧아서도 아니었다. 바로 현대과학과 자본주의에 대한 잠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명쾌한 설명. 중국도 다른 대륙으로 세력 확장을 위해 배를 보내어 시도는 하였으나 그야말로 시도에 그치고 말았다. 유럽의 스페인이나 영국이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러 갈때 그곳의 정복뿐 아니라 그곳에 대해 배워오기 위해 군사들 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동참시킨데 반해 중국은 땅을 정복할 생각만 했지 새로운 곳에 대해 뭔가를 배워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배에는 군사들이 전부. 이런 사고의 차이는 유럽에서 현대 과학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하였고 자본의 축적을 불러왔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답은 아니겠지만 결론이 무엇이든 그것을 유추하는 과정과 근거의 논리성과 통찰력에 설득 당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주의를 넘어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것으로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대대적인 변화를 겪어 왔는지, 페이지를 넘겨가도 흥미진진한 내용은 계속 된다. 부자가 소비의 주체가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 부자는 자신의 수익을 비생산적인 활동에 낭비하지 않고 투자하여 확장하는데 쓰고, 오히려 부자가 아닌 계층이 소비에 열올린다. 소비가 미덕이라며, 부자들의 부를 더 쌓아주는 것에 목숨 거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이것이 자본주의가 굴러가게 하는 근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해오고 있고 그러다보면 곧 에너지가 고갈될 것을 염려했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를 개발해 낼 것이므로) 정작 더 위협적인 것은 생태계의 전환이라는 주장을 위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들을 읽어보면 저자가 과학적인 지식도 상당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책의 마무리로 저자는 당연히 사피엔스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생명공학, 인간성, 행복, 삶의 의미 운운하며 마친 것은 단순히 <운운>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라고 본다. 행복, 삶의 의미 등은 그가 앞에서 실체 없이 개념만 있는 것이라고 하던 것들이 아닌가. 생물학적 행복, 화학적 행복, 계산된 행복 등을 언급하며 실체없는 행복을 실체화 하려고 하는건 사피엔스가 종말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체없는 것들이 결국 물질적 실체들 위에 있을지도.

 

호모데우스를 안 읽을 수가 없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17-06-22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지는 리뷰네요^^ 호모데우스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겁니다!

hnine 2017-06-22 08:18   좋아요 2 | URL
저도 제가 읽은 책에 대해 다른 사람이 쓴 리뷰 찾아 읽어보기 좋아해요. 더 와 닿더라고요 ^^
호모데우스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읽으신 분이 추천해주시니 의욕이 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