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 (Sigmund Freud; Mourining and Melancholia)

 

 

저자 자신이 우울증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꼭 어머니의 자살 직후에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슬픔을 극복한 후 느닷없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울증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 많고, 생각보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저자는 잡지사에 특집 기사를 투고한 것이 계기가 되어 우울증에 대한 책을 본격적으로 써볼 것을 제의한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의 전공이 무엇인가, 읽으면서 저자 소개 다시 들춰보기를 몇번을 했을 정도로 그는 여러 분야에 걸쳐 마치 해부하듯이 우울증을 파헤치고 분석하고 정리해놓았다.

참고문헌과 주석 리스트만 70여쪽, 본문이 650쪽이 넘는 이 두툼한 책을 읽으며 과연 나는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일까.

"이 고통에 이른 것을 환영하노라. 그대는 이것으로부터 배움을 얻으리니" (오비디우스) (59쪽)

 

우울증을 정도에 따라 두가지로 나누면 경증 우울증과 중증 우울증이 있다. 경증 우울증을 이루는 것이 삶의 덧없음과 한계에 대한 예리한 인식이라면 중증 우울증은 붕괴의 원인이 되는 정도의 우울증을 말한다. 그렇다면 중증은 아니더라도 경증 우울증으로 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울증이란 과연 삶을 갉아먹는 벌레 같은 것인가. 한번 빠지면 평생 헤어나오기 어려운 늪, 올가미 같은 것일까. 우울증은 결국 자살이나 그에 준하는 상태로 가는게 맞는가. 우울증은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 특정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우울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과 싸울 능력도 있는 것이고, 끔찍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며 사는 경우도 있고 가벼운 우울증에도 완전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지 않은가.

우울증에서 벗어났다고 할때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랑, 통찰력,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급함을 버리고 꾸준한 노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유전자에 의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다른 대부분의 질병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요소도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반적인 우울증의 경우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비율은10~50%라고 한다). 하지만 우울증의 요인들은 오랜 세월에 거쳐 대개는 평생 동안 누적된 것이라고 하는게 맞다 (75쪽).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것은 치료를 위해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이며,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1년 이내 재발률이 80%, 약물 치료를 하면 회복률이 80%라고 한다 (123쪽).

전체 열두장 중 두 장에 걸쳐 저자는 실제 이용되고 있는 여러 가지 치료 방법에 대해 자세하게 조사하여 정리해놓았다. 네가지 그룹의 항우울제는 물론이고 ECT (electroconvulsive therapy), 수술, 최면 요법, 아프리카 줄루 족의 민속적 요법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법이 최적이고 최선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치료 방법이든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는 것은 다른 질병의 치료 방법들과 마찬가지 이다. 치료 방법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좋은 치료사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치료사를 찾으려면 우선 여러 치료사들을 만나볼 것을 저자의 경험에 바탕하여 권하고 있다.

우울증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데 어려움은 예상하다시피 우울증이 일어나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아직 외부 조작으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울증의 의학적 치료에 대한 연구가 신경전달물질에 집중되는 이유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나마 외부 조작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발병율은 성별, 계층, 나이에 따라 골고루 분포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린다는 것은 호르몬의 든든한 (!) 배경이 있다는 생물학적 이유 외에도 사회적인 차이도 있다. 즉 남성보다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고, 산후우울증, 남녀 성 역할 차이 등 사회적인 압박을 더 받고 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신 질환은 오랫동안 남성들에 의해 정의되어 왔다는 점도 주목하자).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경우 최근엔 남녀 우울증 발병율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어린이의 우울증 치료는 곧 부모의 치료가 수반된다는 것과 어린이 우울증은 성장, 성격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 노인 우울증은 발견이 쉽지 않은데 (당연시 하는 경향때문에), "감정실금"이라는 용어가 등장! 감정의 조절 기능 장애로 사소한 일에도 웃거나 울기만 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울증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말은 곧 사람들의 수 만큼 다양한 우울증이 존재한다는 뜻도 될 것이다. 모든 우울증이 유일하다는 것. 그래서 환자들의 케이스 얘기를 읽다보면 아무리 읽어도 중복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중독와 우울증 사이의 관계도 빠뜨릴 수 없다. 둘 중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가. 아니면 서로 독립적으로 걸리는 것인가. 둘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중독 하면 도파민, 우울증 하면 세로토닌. 이렇게 알려져 있는게 일반적이고 이 둘이 각자 독립적인 수용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수용체 이전, 혹은 이후의 어떤 단계에서 얽혀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알콜 중독자에게 항우울제를 투여하면 알콜을 끊기가 더 쉬워진다는 최근 연구 결과들도 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최근이란 이 책이 출판된 2004년일테니 지금은 얼마나 더 업데이트 된 결과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자살에 대한 것이 한 장 (chapter), 그것도 다른 장에 비해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라는 것이 오히려 의외다. 실제로 자살 성향은 우울 성향과 독립적으로 취급되는 것이 맞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저 공존할 뿐이라고. 우울증의 심각성과 자살 가능성 간에는 커다란 상관 관계가 없음에도 왜 이 둘이 독립적으로 진단되지 못하고 서로 중복되는 것일까 물음으로 시작한다. 앨버레즈라는 수필가는 삶을 통해서는 점차적으로 무디어질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귀신을 쫓아내듯 몰아내려는 시도가 자살이라고 했고, 쇼펜하우어는 삶의 공포가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고 했다.

지루할까봐 그랬을까? 우울증의 역사가 책의 앞부분이 아니라 중반 이후에 한 장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혔다. 우울증을 지칭하는 말이 지금은 Depression (디프레션)이지만 이것은 19세기 중반부터 쓰였고 이전에는 Melancholia (멜랑콜리아)라고 했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울증의 역사,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고 우울증 환자들을 사회에서 어떻게 처우하고 치료해왔는지 설명해놓았다. 이 책의 제목 <한낮의 우울>은 원제는 <한낮의 악마>, The Noonday Demon 인데 이것은 성경 시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이 있는 곳을 싫어하고 타인을 혐오하고 경멸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한낮의 악마" 라고.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중세는 우울증을 신과 관련지어 도덕적으로 설명했다면 르네상스기는 우울증이란 곧 심오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미화하였으며, 그런 경향은 17세기에도 계속 되다가, 모든 것을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18세기에는 우울증과 정신장애자를 가혹하게 대접하였다. 18세기 말, 낭만주의가 들어서면서 우울증을 수용하는 분위기로 전환되었으며 19세기는 원인별, 증세별, 분류의 시대. 20세기는 중요한 두가지 운동이 일어났는데 우울증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정신분석학과 생화학적 설명을 하려는 정신생물학이다. 현재 (역시 이 책이 쓰여진 2004년 상황) 정신의학계에서는 이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는 중이라고 한다.

뒷장에 빈곤과 우울의 관련성에 관한 내용은 그야말로 우울하게 한다. 그럼에도 극복한 사례들이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 빈곤층을 대상으로 우울증 검진을 하는 것은 광부들 대상으로 폐기종 검진하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우울증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들도 충분히 일리있고 재미있다. 결국 이기적인 댓가가 발생하니까 우울증도 유발한다는 것인데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설득력 있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 리뷰의 시작에 인용한 프로이트의 "우울증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셀리 테일러는 가벼운 우울증을 지닌 사람들은 정상인들에 비해 자신과 세계와 미래를 정확하게 보는데 그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고 실패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환상>이라고 했다. 즉 우울증 환자들은 세상을 너무도 명료하게 보기 때문에 맹목성이라는 선택적 이점을 상실하고 마는 것이라고 (639쪽).

저자는 우울증을 긍정적으로 이용한 여러 가지 예를 들어보이며 (저자 입장에서 그랬어야 했을 것이다) 생산적 우울증이라는 얘기도 한다. 이 모든 긍정적인 예는 우울증을 잘 치료하고 극복했거나 최소한 극복하는 중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건 어쩔까. 저자도 말한다 나는 우울증이 지나간 뒤의 나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누구도 우울증 체험중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시 A winner takes it all 인가.

쇼펜하우어의 "인간은 둔하고 무딘만큼 만족을 느낀다", 테네시 윌리엄즈가 행복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하자 "무감각"이라고 대답했다는 말에는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 방대한 책을 쓰면서, 아니 쓰기로 결정했을때 저자는 자기의 프라이버시는 포기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자기의 우울증이 어떻게 시작, 진행되었는지, 어떤 방법들을 시도했는지, 그리고 자기 가족에 관한 이야기까지, 모두 공개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에도 그는 우울증 에피소드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왜 아닐까. 이런 방대한 내용과 분량의 책을 쓴다는 것이 어디 보통일인가. 이런 댓가만 있다면야 우울증도 충분한 보상이 될 수 있다는 예를 그가 보여주었다.

 

 

 

 

 

그가말하는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 찾아본 영상. 책에 소개된 내용들과 많이 겹친다.

 

 

https://www.ted.com/talks/andrew_solomon_depression_the_secret_we_share?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tedspread

 

 

 

https://www.ted.com/talks/andrew_solomon_how_the_worst_moments_in_our_lives_make_us_who_we_are?utm_source=tedcomshare&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tedsp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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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6-19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네시 윌리엄즈가 행복에 대해 정의해 달라고 하자 ˝무감각˝이라고 대답했다는 말~~~˝

동의하게 되는 말이군요. 예민하면 할수록 불행해질 수 있으니까요.
아무리 근심이 있어도, 남들이 공포가 느껴지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은 무감각할 수만 있다면
불행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은 불면증도 없겠지요.

hnine 2017-06-20 19:42   좋아요 1 | URL
살아있으면서 무감각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고, 결국 테네시 윌리엄즈의 대답은 <행복이란건 없다>와 같은 급의 말이구나 생각했지요.
행복이란 그냥 어느 한 순간의 느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래갈 순 없는 것, 오래 가지려고 해도 안되는 것.
이 책도 참 정성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 책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