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늙었다고 얕보지 마라. 너희들은 안늙을줄 아느냐."

어릴 때 할머니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이다. 어린 마음에도 할머니의 그 말씀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었다.

할머니도 나처럼 어릴 때가 있었고, 나도 언젠가 할머니처럼 될 때가 올거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잠시 하던 일을 멈칫했었다.

이 책의 원제는 Being mortal. 영국의 극작가 뮤리엘 스파크의 장편 소설 Memento mori (모두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저자 아툴 가완디는 의학과 더불어 윤리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현재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외과 전문의로 있으며 The New Yorker지 전속 필자로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의학 관련 저서를 내서 이름이 알려져 있고 미국 최고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여받았으며 영향력있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외과 전공의 1년차 때.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던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가족의 요청에 의해 빼는 임무를 그가 맡아 해야 했던 경험을 하고 나서라고 한다. 혹시 그 환자가 자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기를 빼내겠다고 환자에게 속삭이고 호흡기를 빼낸 후 확인을 위해 청진기를 환자의 가슴에 대고 심장박동이 점점 꺼져가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2년전 아버지의 심장 박동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간호사는 기계에 나타나는 숫자가 20이하로 떨어지거든 자기를 부르라고 일렀다. 그것을 기다리고 둘러 앉아있던 가족들.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 생각하니 곧 떠나실 아버지도, 나도, 이 세상도,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책의 서문에, 그리고 본문 중에도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얘기가 자주 인용된다. 나 역시 읽고 나서 한 동안 머리속에서 이 소설 생각이 떠나질 않았고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책이 아니던가.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나와있고 비슷한 얘기들기 되풀이되는 내용이 아닐까 이책을 구입하기 전에 잠시 망설였는데, 결론적으로 그렇지 않았다. 번역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되어 있어서 읽기에 힘들지 않았고 많은 부분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밑줄 그은 몇 부분이라도 정리해보고자 한다.

 

-노화 과정에 관여하는 메커니즘은 단일하고 일반적인 세포 메커니즘이 아니다. 

노화는 단일한 과정에 이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의 손상, 무작위로 일어나는 DNA 변형, 그 외에도 수많은 세포 이하 수준의 문제들이 축적되어가면서 일어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점차적이면서도 가차없이 진행된다.

 

-노인병전문의 수요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적은 이유

의학계에서 그 수입이 가장 낮다는 것, 그리고 상당수 의사들이 노인을 돌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주된 증상 하나만 갖고 오는 게 아니다. 인터뷰한 한 의사 말에 의하면 노인이 하소연하는 증상은 열다섯 가지쯤은 된다고 한다. 그 많은 증상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또한 환자로서 노인을 상대하는것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훨씬 어렵고 소통의 문제가 있다. 병원에서도 노인병 전문팀을 두길 꺼려하는데, 병원내에 노인병 전문팀을 따로 두지 않고 그냥 환자를 받을 때보다 손해를 초래하여 적자를 보기 때문이다.

 

-노인병 전문의가 하는 일

노인병 전문의는 환자들의 신체와 신체의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영양 상태, 복용 약, 생활상 등도 계속 주시해야 한다. 게다가 환자의 생활방식을 재조정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환자로 하여금 우리 삶에서 바꿀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누구나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노령과 생의 종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만들어야 한다.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환상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지만 어쩌면 노인병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라며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요양원 (Nursing home)이 우리나라보다 보편화되어 있는 미국. 하지만 요양원 시설이 아무리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어도 이곳에 들어온 노인들의 많은 수가 우울증을 겪는다. 현재 노령인구의 증가, 요양원에서서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한 존엄성 문제 때문에 그 대안책으로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 호스피스 케어가 증가하고 있다.

직원들이나 가족들이 무슨 짓을 해도 할머니는 점점 더 우울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할머니도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딱 집어내지는 못했다. 그저 이런 말을 자주 했을 뿐이다.

"여긴 집이 아니야." (109쪽)

 

저자가 자기 아내의 할머니의 경우를 예로 든 부분이다.

노인에게 적합한 의사가 항시 대기하고 있고 최적의 식단과 보호를 보장받고 있지만 노인들은 행복해하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가 먹어서는 안되는 쿠키를 먹었다고 할때 그게 자기 집에서라면 일탈로 끝날 수 도 있지만 요양원 내에서 그것이 발각될 경우에는 큰 죄책감과 조치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해주는 대로만 받아야지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러한 기존 요양원과 다른 혁신적 대안으로 1983년에 문을 연 노인을 위한 생활 지원 주택 (assisted living house)은 아무도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데 목표를 두고 있었다. 안전과 생존을 우선시하는게 의학계의 언어라면, 삶의 질, 존엄성, 자유의지를 고려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2003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은 11%에 불과했다.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1. 사람들이 잘 살아가도록 진심을 다해 돕는 일은 말로 하는 것보다 실제로 하기가 훨씬 힘들다. 예를 들어 이 시설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임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옷을 입혀 주는 게 스스로 입게끔 놔 두는 것보다 쉽고,시간도 덜 걸리고,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적어진다는 것이다.

2.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개념, 즉 일상적인 삶을 돕는 일의 성공 여부를 잴 수 있는 척도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 위생과 안전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쯤 되면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일지 짐작할 수 있다. 시설에 들어가 있는 우리 아버지가 외롭지는 않은지 하는 것보다 체중이 감소했는지, 약을 빼먹지 않았는지, 넘어지지 않았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3. 가장 실망스럽고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67쪽)

 

저자의 경우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할아버지 자신도, 저자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모두 의사를 지낸, 미국에서 소위 성공적인 정착을 이룬 가족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의 영향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대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기댈 수 있는 대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그가 선택한 방식으로 살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돕는 시스템이 부재한 경우, 우리 사회의 노인들은 통제와 감독이 계속되는 시설에 갇혀 사는 수밖에 없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의학적으로 고안된 답이고, 안전하도록 설계된 삶이지만, 당사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텅 빈 삶이다. (172쪽)

 

-존엄사 (death with dignity)를 허용할때 생각해봐야할 문제점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오리건주, 워싱턴주, 버몬트주 등은 의사들이 안락사 처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2012년 현재 네덜란드인 사망자 35명 중 1명이 안락사를 선택했다. 이것이 안락사 허용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공의 척도가 아니라 실패의 척도다. 결국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확보해 줄 가능성이 있는 완화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뒤처져 있다. 어쩌면 안락사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탓에 장애가 생기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경우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고통을 줄이거나 삶을 개선시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믿음이 강화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안락사를 선택할 여지를 마련했다고 해서 환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려 버리게 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크나큰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어시스티드 리빙'은 '어시스티드 데스 (assisted death)'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훨씬 더 큰 가능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373, 374쪽)

 

-죽는 자의 역할

호스피스 케어의 목표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의 옆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처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최상의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죽는 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어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지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죽는 자에게나 남는 자에게나 중요한 일이다. (380쪽)

 

그러면서 저자는 실제 자기 아버지가 죽음을 어떻게 맞이했고 가족은 어떻게 그와 함께 했는지 자세히 적고 있다.

많은 사람의 생과 사를 경험했던 의사 (저자의 아버지와 저자 모두)이어도, 평소에 죽음에 대해 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음에도, 죽음 앞에 침착한 사람은 없다.

통증을 경험한 사람에게 통증의 강도를 표시하라고 하면 통증을 경험한 전체 기간 동안 통증의 정도를 평균해서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통증을 경험한 정점과 마지막 순간의 통증을 평균하여 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자연 법칙에 따라 작동하지만 사람의 느낌과 정신은 수학과 화학의 법칙을 넘어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역시 아버지를 떠올렸고, 아마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아버지가 생을 마치시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90일의 기억에서 2년도 더 지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폐렴 치료차 병원에 가셨고 입원하라는 말에 입원하시고 치료를 시작하신지 사흘만에 의식을 잃으셔서 인공호흡기, 계속해서 진정제 주사, 식도 협착으로 인해 튜브로 영양 공급, 나중엔 투석에 기흉, 심정지로 인한 전기 쇼크까지, 옆에서 도저히 볼 수 없는 힘든 과정을 거치시는 동안 정작 아버지 본인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줄곧 의식이 없는 상태로 계시다가, 가족들과 한마디 인사도 없이 그대로 가셨다. 생전에 자동차에 기름도 반 이하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미리 준비하시며 사셨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벌써 몇년 전 부터 장례 서비스, 수의, 장례 절차까지 다 준비해놓으셨던 아버지, 여행을 하시면 기차 티켓 한장도 버리지 않고 여행기와 함께 정리해두시던 완벽주의 성격의 아버지셨는데, 마지막이 저렇게 허망할 수가 있나 생각하면 지금도 모든 의욕을 잃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일도 누구나 겪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던 그 사실을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곧 어떻게 살 것인가와 무관하지 않음을.

다양한 사례를 포함시키면서도 산만하지 않게, 주제를 벗어나지 않게 쓰여진 글이다.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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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8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2-08 19:26   좋아요 0 | URL
선택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을 때 해놓아야 하는데, 그런 온전한 정신이 있는 동안엔 되도록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싶은게 인지상정이라서 이런 책을 읽고 자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나봅니다. 그런데 경험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요. 한번의 경험이 미치는 영향력은 책이나 미리 학습한 것들을 가차없이 무너뜨리는 걸 느끼겠어요.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 중입니다 되도록 튼튼하게요 ^^

세실 2017-02-09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죽을 것인가...어떻게 살 것인가....
갑자기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웰 다잉.....중요하지요.

hnine 2017-02-09 20:2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은 종교가 있으시니까 종교가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종교가 없는 저도 종교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더라고요.
추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미리 해놓은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더 나이 들어서 생각하려면 마음이 더 안좋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