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깨어있기
법륜 지음 / 정토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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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제목이라는 생각으로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겨 있다.

지금.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순간.

여기. 내가 서있는 곳. 숨쉬고 있는 공간.

깨어. 정신을 다른데 두지 말고 지금 내가 어디 있고 무얼 보고 무얼 느끼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있기. 존재하니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한 것.

더 줄여 한 단어로 하자면 이렇게 될까? 내 인생의 키워드로 삼고 있는 말, 관(觀).

 

직지, 자기 마음을 자기가 바로 꿰뚫어보게 된 침묵 (33)

무섭고 날카로운 말이다.

 

더럽다와 반대되는 뜻으로 청정하다는게 아니라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불구부정 (不垢不淨)의 자리 (39)

불교의 중심사상은 역시 무(無).

 

부모님 말을 다 듣다보면 바른길로 가기 어렵다. 부모가 자식 인생의 길잡이가될 수도 없다. 부모는 자기 나름의 어리석은 생각 속에서 자식이 오직 안전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자식을 해탈시키지 못한다. 그러니 자기 인생의 문제를 자기가 단도직입으로 살펴서 해결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애써도 해결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이면 해결하고 나머지 인생은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수행해서 죽기 전에야 깨닫는 것이 목표가 되면 안 된다. 단박에 깨닫고 나머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43)

화두를 붙잡고 나선 스님이 아닌 이상, 단박에 깨닫고 행복하게!

내 아들이 너무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으로 크지 않기를 바란지 오래이다. 진심이다.

 

남편이 술을 마셔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하는 부인의 생각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 전제 위에서 남편을 고치려 듭니다. 그런데 남편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그런 전제 위에서는 3년이든 30년이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전제를 무너뜨려버리면 문제의 본질을 보게 된다. (60)

나이 먹어갈 수록 자꾸 길어져가는 전제, 선입견 리스트. 그래서 나이먹은 사람이랑 얘기가 통하기란 더 어려워지는지. 어쩌면 오늘도 책을 한권 더 읽으면서 그런 전제를 하나씩 늘려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더구나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흐뭇해하면서.

 

어떤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중이고 그 곳이 절, 그게 바로 불교. (195)

지금 여기.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을 훨씬 뛰어넘는다. 지식으로, 머리를 굴려서 아는 알음알이가 아니다. 이것이 연기법 (緣起法). 한 면만 보지 말고 양면을 같이 보라는 것. 그러면 모든 모순이 해결된다. 한 면만 보니까 '내가 살려면 네가 죽어야지.' 하지만 두 면을 같이 보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열린다. (228)

결혼해서 남편 사람과 부대끼며 살다보니, 알게 모르게 이런 생각의 기술이 늘어가는 것 같다. 그것이 연기법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모르면서도 매일 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을 찾다보니.

 

'내가 옳다', '네가 옳다' 이렇게 시비하는 것이 색 (色).

옳다 그르다 하지만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면 그냥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공 (空).

이 동네에서는 동산이라 하고 저 동네에서는 서산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와 저 동네를 떠나서 바라보면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 이게 공이다. (229)

 

법륜 스님에 대해,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불교 신자이신 내 어머니도 이분을 그닥 마땅찮게 생각 하시지만, 딱히 불교도가 아닌 나는 거부감보다 공감이 훨씬 커서, 내 생각을 닦고 고쳐먹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도움 받고 있는 처지에, 그저 감사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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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8-2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륜 스님의 글, 좋군요.

˝부모님 말을 다 듣다보면 바른길로 가기 어렵다˝ - 이 말을 새기겠습니다. 이미 다 커 버려서, 저보다 기가 더 세서
제 말이 먹히지 않는 아이들이어서 제가 해 줄 말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고 있어야겠어요.

(229)쪽의 글을 공감합니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음을 종종 경험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셔서 님께 감사드립니다.

hnine 2016-08-22 04:36   좋아요 0 | URL
제 아이는 이제 열여섯 살인데도 말 잘 안들어요. 말 잘 듣는 아이가 부모 입장에선 키우기 수월하긴 하겠지만 아이의 입장에선 그리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자기 생각을 누르는 일이 더 많다는 뜻이니까요.
아이가 말을 잘 안듣는다고 생각할때마다 저 말씀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