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9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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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 시몬느 보봐르와의 계약 결혼. 노벨문학상 거부.

사르트르 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 책은 1905년 생 사르트르가 1964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59세때 펴낸 그의 자서전이고 우리나라엔 2008년에 처음 번역본이 나왔다.

처음 몇 페이지에 걸쳐 자서전 답게 가족 계보 설명이 나오고, 버릇처럼 그림으로 가계도를 그리면서 읽다가 알았다. 의사이자 철학자인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사르트르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사르트르의 외할아버지와 슈바이처의 아버지가 형제지간이다.

그가 태어난 다음 해 아버지를 여의고, 이후로 유년 시절을 온순하고 사랑이 넘치는 엄마와 함께 외가에서 외할아버지의 기대와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성장한다.

그의 명상의 대상은 나였다. 그는 정원의 간이 의자에 앉아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맥주잔을 놓고서는 내가 뛰어노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두서없이 지껄이는 말들 속에서 무슨 예지를 찾아보려고 하고 실제로 찾아내기도 하는 것이었다 (33쪽)

여기서 "그"는 외할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대신 주위에서 자기 처지가 불쌍하다면서 존중하고 떠받들어주어 기뻤다고 썼을 정도로 그는 큰 결핍을 못느끼고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보통의 아이와 좀 달랐다. 좀이 아니라 많이 달랐다. 내가 하는 말에 어른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해석하여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 것. 이후로 이 당찬 어린이는 그것을 의식하여 어른들에게 말을 한다. 그의 나이 일곱살때 일이다.

나는 전도유망한 강아지였다. 나는 예언을 한다. 내가 어린애다운 말을 하면 어른들은 그것을 명심해두었다가 내 앞에서 되풀이한다. 나는 또 다른 말을 하는 기술도 배운다. 나는 어른들의 말을 할 줄도 알게 된다. 시치미를 떼고 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숙성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가 곧 시(詩)가 된다. 비결이라야 아주 간단하다. 귀신과 우연과 허공을 믿고 어른들의 말들을 그대로 빌려 와 그것을 서로 뚜들겨 맞추고 건성으로 되풀이하면 된다. 요컨대 나는 진짜 신탁(神託)을 내리는 것이 되며 듣는 사람들은 가각 내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35쪽)

그러고보니 이 자서전의 제목이 "말"이로구나. 어릴때부터 그는 말로 자기를 보여주는 방법, 말이 가지는 가치와 허상, 즉 말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뛰어놀며 클 나이에 그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틀어박혀 책을 읽으며 보냈고, 그 속에서 온갖 상상을 다하기를 즐겼다. 책속의 어떤 인물이 그에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친구였고 때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어낸 신(神)이 자기에게 내리는 임무를 듣기도 했다. 다름아닌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 성령으로부터 그런 계시를 받는 "상상"을 한 그는 왜 자기가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냐고 따져 묻기까지 한다. 내가 그렇게 뛰어나기 때문이냐고. 그러자 성령은 대답한다. 그건 아니라고. 그렇다면 나 같은 하찮은 인간이 어찌 책을 쓸 수 있겠냐고 되묻자 성령은 대답한다. 정진을 거듭하면 된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스스로 정한 것이다.

나는 선택되고 지명되었지만 재주가 없는 인간이다. 그러니 모든 성공이 나의 기나긴 인내와 불행으로부터 태어나리라. (201쪽)

 

그는 왜 쉰넷의 나이에 이 자서전을 쓰게 되었을까.

읽다보면 그가 단순히 글 쓰는 일에 대한 만족스런 회고를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오히려 문학에 대한 자기의 태도를 정신착란, 신경과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글 쓰는 일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다고, 습성이요 본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의 한계을 알아감과 동시에 고질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무렵 사르트르의 사회주의 단체 활동, 저항운동, 지하잡지 기고 등, 현실 참여 활동 범위를 넓혀가면서 정치 참여와 문학과의 갈등이 커져간 것으로 보고 있다. 문학은 일종의 가면이며 기만 행위라는 자성, 자신과 문학과의 관계를 정리해보고자 하는 자성 행위의 일환으로 이 자서전을 쓰게 된것이 아닐까라는 짐작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과 결별을 하였는가?

습성은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없는가보다.

 

좁은 의미의 정치적 참여를 넘어서는 차원에서 문학에 더욱 깊은 뜻을 부여하게 한 것이다 (290쪽, 작품 해설 중에서)

 

나이 일곱살에, 말이 자기를 존재하게 하리라는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평생 그것으로 자기 존재를 세워온 실존 주의자.

이렇게 매혹적인 자서전도 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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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2-2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목도 그렇고 h님 이렇게 쓰시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사르트르 지금까지 읽어 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hnine 2016-02-26 19:53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에 소설인줄 알았어요. 제목이 전혀 자서전 제목같지가 않잖아요?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책이 가까이 있었다는 것. 두 가지 조건이 사르트르라는 특별한 천재를 만들어낸 것 같아요.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릴만 합니다!

2016-02-29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6-02-29 17:21   좋아요 1 | URL
넵~ 영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