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 학교가기전 아이가 샤워하면서 부르는 콧노래 소리 들을때 나는 안심한다.
열여섯살.
그래도 아직 학교 가는게 싫지는 않은가보다, 노래도 못할 정도로 어디가 아프진 않은가보다, 그러면 됐지. 더 바라면 내 욕심이지 하는 생각에서.
아들이 어릴때는 혹시나 아이에게 부족한게 없을까, 이 시기에 꼭 필요한 것을 내가 모르고 지나치지나 않을까, 그게 나의 테마 나의 프로젝트였다.
이제 아들은 열여섯살이 되었고, 엄마가 한가지라도 더 해주려고 하는 것이 본인에겐 채워짐이 아니라 간섭으로 여겨지기 시작할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달라지기로 했다. 더 보태려 하지 말기로.
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태어난 자기 삶의 색깔을 내가 내 손으로, 내 의지대로 덧칠하지 말기로.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인생에 잣대를 세우고 그것에 따라 아들 인생의 성공, 실패를 판단하지 말고, 내 맘에 들게 아들 인생이 진행되기를 바라지 말고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마음으로 착각하지 말고), 아들이 여기쿵 저기쿵 부딪혀가면서 "진짜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최대한 간섭을 자제하고 지켜봐주는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이다.
이제 엄마는,즉 나는, 아이를 위해 해야할 항목보다 하지말아야할 항목을 하나씩 업데이트 하고 있다.
해주는 것만큼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