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
리처드 예이츠 지음, 윤미성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열한편의 단편집 제목을 이렇게 붙일 수도 있겠구나. 열한가지의 행복, 열한가지의 슬픔, 아니고 열한가지 고독이다. 번역본이 나오면서 원제 앞에 붙은 "맨해튼". 붙이고 읽어보고 떼고 읽어본다. 무슨 차이가 느껴지나? 출판사 쪽에선 맨해튼이라는 지역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것일까.

 

1. 잭 오 랜턴 박사- 잭 오 랜턴이란, 할로윈때 아이들이 들고 돌아다니는 호박등을 말한다. 가난, 그리고 사춘기. 인생의 2대 짜증스런 장애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2. 가장 좋은 일- 결혼을 앞둔 남녀가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은 다름 아닌 그 서로 다른 두 세계의 충돌 현장이니, 화합의 시작이 아니라 충돌의 시작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3. 조디는 주사위를 던졌다- 설명이 좀 장황하긴 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된다. 촌스럽고 덜 세련된 리스 중사가 신념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들이 이젠 거의 무시되고 간과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되는지, 그렇게 사는게 맞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4. 아프지 않아- 장기 입원중인 남자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비밀.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5. 처벌광- 조직의 "을"에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월터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해고되었다는 자체보다 그 사실을 부인을 비롯한 가족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위치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남자에겐 더 두려운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틀이 더 무서운 법이라는 걸 보여준다.

6. 상어와 씨름하는 남자- 신문사 신입기자 소렐은 자신의 이름을 거는 컬럼을 쓰는 것에 대단한 가치를 두고 일하지만 결국 해고를 당하고, 해고 당한 그를 위해 다른 자리를 추천해주려고 소렐의 집으로 전화를 건 다른 기자 메케이브는 뜻밖의 대답을 듣는다. 남자들 허세 뒤의 슬픈 현실. 허세는 그를 크게 보이게 하는게 아니라 결국 반토막을 내고 만다는 것.

7. 낯선 이와 지내기- 융통성 없고 꽉막힌 여교사 미스 스넬. 그녀는 결코 악의를 갖고 있거나 불성실한 교사가 아님에도 아이들은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어긋남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 낯선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낯선 사람과는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안 그러니? "(190쪽)

8. B.A.R.맨-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얘기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1960년대 미국이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전직 군인 존 팰런. 한번도 그럴듯하게 뽐낼만한 업적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그의 잠재의식은 우연한 장소에서 우연한 일에 연루되게 한다. 제목의 B.A.R은 Browning Automatic Rifle의 약자로서 총의 한 기종이라고 한다. 미국 사람들도 설명해주기 전엔 모를 것 같은 약자.

9. 정말 좋은 재즈 피아노- 이것으로써 이 책의 아홉번째 단편을 읽고 나니, 예이츠 이 사람의 단편들은 촌철살인의 핵심을 전달하기엔 2% 부족한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도 그렇다. 소위 좋은 간판을 가지고, 일정한 직업은 없지만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자유롭게 여행하듯 사는 두 남자 카슨과 켄의 눈에, 칸느의 한 바에서 노래하며 피아노를 치는 시드의 삶은 속물적이고 매춘 행위에 다름 없다. 마지막에 켄이 카슨에게 주먹질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심리적 배경은 무엇일까. 그나마 켄은 시드를 가리켜 재즈 피아니스트의 속물근성이라고 비난했던 그 성격이 사실은 자기에게도 내재해 있음을 깨달은 것은 아닐지. 남을 아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10. 옛날이여 가라- 폐결핵 환자 매킨타이어에게 제일 걱정은 자신의 건강이 아니라 가장 역할을 못한다는 것이다.

11. 건설자들- 보잘것 없는 현재라는 조각들을 그러모아 번듯한 미래를 건설하는데 동원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전부가 아니었다.

 

열한 가지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공통점은 모두 소시민이라는 것. 그것이 맨하튼이든 시골 구석이든 소시민적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열한편 단편의 다른 주인공, 다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어라고 작가가 생각한 것이 바로 제목의 "고독"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며 책을 덮는다.

단편집을 많이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표적인 단편 소설 작가인 앨리슨 먼로와 얼른 비교해보게 되었다. 제대로 분석, 비교할 능력은 못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앨리슨 먼로에게 노벨상이 주어졌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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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12-09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작가인데, 살짝 hnine님의 글을 읽고, 이 책이 읽고 싶어져서 리뷰는 자세 읽지 않았어요.
왠지 겨울에 읽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네요.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있어서 바로 `책배달`신청했어요. ^^

hnine 2015-12-09 05:19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였어요. 저도 다른 분 서재에서 보고 읽게 되었는데 장편과 단편은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렇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답니다. 짧기 때문에 어떤 작품은 다 읽고 난 후에도 ˝그래서 어쨌다는거지?˝ 이럴 때도 있었어요. 집중을 안하고 읽었다는거죠 ^^
열한편의 단편 속 인물들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조금씩 다 보이고 있었어요. 책배달 신청하셨다니 곧 읽어보시겠네요.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2015-12-09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0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