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여덟살 지나면 너는 네 맘대로 결정하고 살아. 하지만 그 전엔 엄마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아마 열여덟이 되어도 엄마가 혹시 계속 이래러 저래라 할지도 몰라. 엄마이기 때문에. 하지만 엄마가 혹시 그러더라도 그때는 네가 꼭 듣지 않아도 돼. 네가 좋은대로 해."

바로 이 hnine이 아들에게, 아이가 열 다섯살인 지금보다 훨씬 전 부터 해오고 있는 말이다.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하지 못하는 건 무엇때문일까.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한다는 것은 곧 독립성을 의미한다.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의존하지 않는 온전한 나의 삶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자기 결정을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내면을 집중하여 알아보고자  분석하는 데는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반면, 외부의 기준이나 압력은 너무나 쉽게 우리 피부로 와닿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과 노력 없이도 쉽게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 진학과 관련해서 어제 아이 학교에서 설명회가 있어 참석했었는데 거기서 나온 말 중 하나는 "Dare to be different!" 였다. 남과 무조건 똑같이 가려하지 말고, 똑같은 결정을 내리려 하지 말고, 남과 같지 않을지 모르는 자기 성격이나 성향을 잘 생각하여 어떤 선택이 가장 적합할까 생각하여 결정하라는 말이다. 남과 다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 책에서 저자는 특히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구체화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어떤 것에 대해 말함은, 말해진 내용을 형성한다. (21)

우리의 감정과 바람은, 그 정체를 밝히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전보다 확실히 더 명확하고 뚜렷한 윤곽선을 띄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그치지 않고 내적 구조까지 변경하는 자기 표현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다. (22)

무의식과 의식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언어로 표현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있다. 언어적 표현을 통해 자기 결정의 적용 범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기억이나 무의식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그것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했는데, 26쪽 이쯤에서 나는 책에 일일이 포스트잇 붙이기를 그만 두고 아예 연필로 밑줄을 좍좍 그으며 읽기로 했다.

 

독서의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는데 역시 독서보다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삶을 변화시키는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입니다. 내적 검열의 경계를 느슨히 하고 평소라면 무언의 어둠 속에서부터 경험을 물들이던 것을 언어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것은 거대한 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습니다. 소설 한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29)

 

자기 결정에 방해 요인으로 타인의 시선, 타인으로 받는 인정의 여부가 있다. 타인이 휘두르는 이러한 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눈과 귀를 틀어막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치지 않으려고 잘못된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인공적으로 쌓은 내면의 성벽 안에 자신을 가둘 수 없습니다. 대신,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에 불과하며 그들이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문제인 수만 가지 요인에 의해 그 평가가 왜곡되고 부정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6)

 

나의 밑줄은 3장으로 구성된 이 책 내용중 주로 1장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에 집중되었는데, 2장은 <자기 인식은 왜 중요한가?>란 제목을 달고 있긴 하나 역시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뜻입니다. (55)

표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반드시 말이나 행위가 아니어도 됩니다. (56)

 

3장 <문화적 정체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신체가 가진 조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문화라고 하는 이 다의미적이면서 의미를 촉발하는 활동들의 복합적인 구조로 인해 우리의 삶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한 사람의 문화적 정체성이란 어떤 특정 시대에 이러한 구조, 짜임 내에 위치한 장소를 일컫는데, 이러한 문화의 영향에 무비판적이고 수동적으로 자신의 삶과 결정을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식을 통해 비판적이고 의식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교양"이라고 불렀다.

또한 우리를 문화 존재로 만드는 기본적인 능력은 언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말한다.

모든 것의 열쇠는 언어다. (74)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철학자인 그가 왜 <리스본 행 야간 열차> 같은 소설을 썼는지 짐작하게 한다. 허구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그것이 자기 결정, 자기 인식 과정에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 책에서도 얘기한바 있다. 소설을 쓰기 전과 후의 나는 같지 않다면서.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 역시 같지 않다고 한다면 좀 과장이겠지만 좋은 책의 기준으로 삼는 것 중 하나가 그것 아니던가. 나의 내면을 변화시키는가 하는것.

자기 결정이 행복하고 존엄한 삶에 중요한 이유, 또 그것에 필수적인 언어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언어로 설득력있게 쓴 책이었다. 별 다섯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ma 2015-11-08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진학(특히 특목고)할 때 쓰는 자소서 같은 데나 학생생활기록부 독서란에 내용을 쓸 때는, 자신이 어떤 책을 읽은 후 어떻게 변화되었지를 중점적으로 쓰라는 원칙 비슷한 게 있는데요. 분명 책을 읽으면 뭔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걸 꼭 집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요즘 아이들은 여러가지로 정신의 성장도까지 검증을 받아야 해요. hnine님의 리뷰를 읽다보니 괜히 불끈해져서 글을 남기네요.^^

hnine 2015-11-08 20:40   좋아요 1 | URL
뭔가 달라지더라도 그 당시엔 그걸 모르니까요. nama님 말씀 듣고 한탄하다 생각하니, 세상에, 저도 바로 며칠 전에 제 아이보고 그랬네요. 그렇게 이것 저것 조금씩 하다말고 하다가는 나중에 자기 소개서에 한줄도 쓸거리가 없을거라고요 ㅠㅠ
제게는 난해했던 소설 <리스본행 야간 열차>보다 저는 이 책이 더 명확하게 머리 속에 들어와서 좋았어요. 저 같이 두리뭉실, 말로 잘 표현 못하는지, 못하니까 하기 꺼려하는지, 아무튼 그런 사람에게는 콕콕 와닿는 내용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