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기준에 의하면 이건 어린이가 읽을 어린이책은 아니다. 아이가 화자라고 해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아이들 읽을 책이 아니듯이. 이 책 저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분류법이나 기준 상관없이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냥 나대로 기준으로 보기로 했다. 창비아동문고에서 나온 엄연한 어린이책이지만 내가 어린이에게 읽을 책으로 권해주기로 한다면 이 책을 고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이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방미진이라는 작가는 <손톱이 자라날때>라는 청소년 소설로 알게 되었다. 그 작품에서 느낀 작가의 분위기가 여기서도 드러났다. 감춰진 심리가 신체 일부분의 이상 발육, 상관없어 보이는 어떤 특정 사물에서의 현상으로 투사되는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다.

 

 

 

 

 

 

 

 

 

 

 

 

거울이 깨져 조각난 상태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조각 중 하나엔 주인공의 모습도 비치고.

 

이 책엔 다음의 다섯 편의 글이 들어있다.

 

 

 

표제작 <금이 간 거울>엔 소심한 한 아이가 주인공이고, 편애가 주제라고 말하면 읽기도 전에 이미 새로운 스토리를 기대하기를 포기할지 모른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이다. 소심한 주인공 주위엔 얼굴 예쁘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가 나오고, 공식처럼 흘러가는 이야기. 문장 표현도 '~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등, 물건을 훔친 후 마음의 상태를 이렇게 뻔한 표현으로 그치고 만것도 실망스럽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켜야 할 대목이고 주인공의 마음을 더 실감나게 표현할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좋았을텐데. 두근거리고 화끈거리는 것은 작가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는 너무나 흔한 표현 아닐까.

공식처럼 흘러가는 이야기가 문장마저 자동기술 처럼 읽힌다면 무슨 재미로 이 이야기를 읽어야할까. 좀 더 솔직하고 체험적인, 작가만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노력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섯 편중 그래도 제일 분량이 되었던 이 이야기만 읽은 채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 한동안 이 책을 옆에 밀어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끌어다 읽은 다음 이야기 <오빠의 닭>은 실망 후에 읽어서인지 좀 더 참신했다. 짧은 이야기이고 단순한 구성임에도 결말이 열려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는 중간에 어떻게 내용이 펼쳐지든간에 결말은 잘 정리되어 주제가 확실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적 지침이 있긴 하지만 그것에 크게 위배되지 않으면서 오빠가 애지중지 키우던 닭을 오빠 모르게 식구들과 잡아먹은 후의 양심의 가책을 간접적으로 잘 그려놓았다. 내 마음이 어떠했다 라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것 같다. 앞의 <금이 간 거울>에서 느낀 실망이 조금 회복되었다.

 

다음 이야기 <오늘은 메리크리스마스>. 간단한 이야기인데 이건 마치 어린 아이 일기장을 베껴온 듯 하다. 어른이 쓴 티가 안 나고 어린이가 직접 쓴 것 처럼 자연스럽게 썼다는 뜻이다. 복잡한 구성 필요없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어린이 눈높이에서 어린이 마음으로 쓰느냐가 더 어렵고 또 중요하지 않을지.

 

 

 

<삼등 짜리 운동회날>은 그냥 그랬고,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마지막 이야기 <기다란 머리카락>이었다. 내가 아는 방미진 스타일은 이런 것.

 

 

 

복잡한 마음 상태, 마음에 들지 않는 불편함, 드러나지 않고 굴러다니며 점점 더 그 덩어리를 불려가는 것의 실체가 머리카락이라는 사물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 머리카락 뭉치를 웩웩 거리며 입 밖으로 뱉어낸다는 대목, 벽에 간 금 사이, 천장, 바닥, 사방에서 머리카락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는 대목은 상징적이면서시원한 결말이다. 문제는 이것을 막상 어린이들이 읽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의 <금이 간 거울> 과 함께 마지막 <기다란 머리카락>은 어른용, 나머지 세편은 어린이용, 이렇게 나누고 싶다.

 

공모전 출품용 샘플작이 있다면 이런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내용이 복잡하지 않으며 아이의 심리 상태를 간접적으로 잘 묘사하였고, 막연한 결말이어서는 안되고 가능한 바람직한 결말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공식에 잘 맞기 때문이다.

 

하늘바람님이 이 책을 추천하여 주셔서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어린이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으니 느낌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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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2-22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톱이 자라날 때, 무섭고 신선했어요.

hnine 2015-02-23 06:51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 책으로 처음 작가를 알게 되었고 여기저기서 주목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기억해요.
이 책에서는 손톱 대신 머리카락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표제작인 금이 간 거울에서는 금이 간 마음이 거울로 투사되었음이 너무 쉽게 짐작이 되어 좀 재미가 덜 했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