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 75세 도보여행가의 유쾌한 삶의 방식
황안나 지음 / 예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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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해 75세 되셨으니 할머니라고 불러도 되련만, 실제로 저자가 글 속에서 자신을 그렇게 일컫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는 내 어머니와 딱 한살 차이. 내게는 할머니 세대가 아닌 어머니 세대이신 셈이다.

수십년 동안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다가 퇴직하셨지만 이제는 도보여행가라는 이름이 따라다니는 이분의 팬이라면 팬이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분의 글을 읽고 나면 힘이 나고 기운이 나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엔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곱고 잔잔한 글만 들어있지 않다. 마음 푸근한 따뜻함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머리보다는 직접 겪고 걷고 움직이며 보고 느낀 바를 썼고, 저자의 털털해보이는 차림새와 달리 내가 보기엔 완벽주의 기질도 있고 원칙을 지키며 사느라 때로 오해를 받을 때도 있으며 남에게 폐 끼치는걸 무척 싫어하니 어떤 사람은 차갑다고 느끼기도 할 것 같다. 그럼 이분의 어떤 점이 나에게 힘을 주고 기운을 북돋는 것일까. 아마도 결코 곱고 순탄하지 않았던 시간을 겪어냈다는, 꾸밀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인생 경로때문 아닐까 한다.

나의 어머니 세대이니 지금보다 많이들 어려웠던 때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도 안들어오는 방에서 사과 궤짝을 뉘어 놓고 부엌 찬장 삼았으며 스물 네살에 첫 아기를 낳았는데 병원에도 못가고 남편이 보는 옆에서 집에서 나아야 했으며, 남편 사업이 부도나고 남편은 집을 나가니 채권자들이 저자가 꼬맹이들 수업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실까지 쳐들어오는 모욕을 겪으며 살았다. 이대로 죽어야겠다 마지막으로 친정 어머니를 찾아간 일, 바닥까지 갔으니 이젠 더 나은 일만 있지 않겠냐는 어머니의 한마디에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일.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일까. 그녀는 정년을 몇년 앞둔 58세때 학교를 퇴직한다. 그리고 길을 나선다. 그렇게 시작한 도보 여행. 나중엔 옆에 벗 하나 없이 혼자서 국토 종단 여행을 하는데 저자의 나이 65세때 이야기이다.

지금도 새벽 5시 40분이면 어김없이 동네 헬스장에 가서 두시간 운동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한달에 적어도 열 권의 책을 구입하여 읽으며 블로그 관리, 이곳 저곳 강연까지, 우울할 새가 없다. 늙음을 한탄할 새가 없다. 아니, 우울하지 않기 위해, 앉아서 한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산다고 해야할 것이다.

막상 젊었던 시절은 남편의 빚때문에 두 아이를 데리고 극빈의 생활까지 경험했다니까 그렇게 자기를 소진시킨 남편을 원망할 만도 한데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집에 남편과 둘만 살면서도 참 정답고 남편과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각별하다. 붙박이 가구 같은 영감이라도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나도 이분 나이 되어서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나이 될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이분의 글은 지금의 나에게 기운을 북돋워준다. 이분이 극복한 구절양장 같은 시간들, 자존심을 포기하고 죽음까지 떠올렸던 시간들, 다 지내오고서 찌든 얼굴로 남은게 아니라 오히려 활짝 웃으며 오늘도 길을 나서는 이분 사는 모습 자체가 마치 우울증 약 같은 약효를 준다.

이 책의 제목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 그래,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일생이 즐거울 수 있겠지.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면 일생이 우울할거야.

이 세상에 사람이 사는 방법은 정말 여러가지가 있고, 그 방법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약효가 좀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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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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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7 0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2-0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넘긴게 좀 아쉽네요.
나이가 드니까 다리부터 안 좋아지더라구요. 그래서 어디를 다닌다는 게
자신없어지더라구요. 그런데 박범신 작가도 히말라야를 오르는데
그 양반이라고 다리가 온전해서 오를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책이 저에게 용기를 줄 텐데...
그런데 하루 두 시간씩 운동을 한다니 갑자기 용기가 줄어 들었습니다.
전 하루 두 시간씩 운동할 지신이 없거든요. ㅎㅎ

그런데 제목이 참...! 프로작 무슨 약 이름이잖아요.^^

hnine 2015-02-07 16:10   좋아요 0 | URL
stella님, 한번 읽어보세요. 이분 블로그도 있으니 한번 들어가보셔도 좋고요.
박범신 작가 얘기도 나와요. 이분이 박범신 작가 팬이시라는군요 ^^
이렇게 운동을 하고 걷기를 수년 동안 했는데도 나이는 못속이는지 이분도 척추 수술을 하셨어요. 운동은 학교를 그만두고 앞으로 걷기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야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하셨대요. 처음부터 두시간은 아니었겠지요~
프로작은 항우울제 이름이랍니다 ^^

nama 2015-02-13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매할 때는 무조건 hnine님 앞으로 Thanks to 쏩니다. 이미 한꺼번에 3개 쐈지용~~

2015-02-13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