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펭귄클래식 1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난 영혼 속에 지하실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든 만나고 알아보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난 어두운 곳으로만 다녔다. (74)

 

도스토옙스키. 1821 7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직업작가의 뜻을 두고 제일 처음 발표한 작품이 <가난한 사람들>(1846). 고등학생 때 읽고 가슴 아릿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는 책이다. 반정부 역할을 했다는 죄목으로 한때 사형선고까지 받았다가 처형직전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 되었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공상적 혁명가에서 신비주의자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투옥 생활을 하는 동안 밖에서는 크림전쟁이 일어났고, 석방된 후 일병으로 강제 복무하는 동안 만난 여자와 나중에 결혼하게 되지만 (1857) 석방 후 시간들도 평탄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는 정치적 변동의 시대였고 개인적으로는 첫 유럽 여행을 하였고 아내와 형이 연달아 죽었으며 (1862) 이러한 사건들을 겪는 가운데 그의 정신 세계가 어떠했을지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라고 하겠다. 이 작품을 계기로 하여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의 전환점을 이루게 되고, 이 소설 이후로 <죄와 벌>(1865~66)을 포함하며, 관념적 소설들로 이어지는 작품 제2기를 맞게 된다. <백치>(1869), <악령>(1871),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80)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소위 그의 위대한 소설들이다. 정치검열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다시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하였고 두 번째 결혼한 여자와의 사이에 딸, 아들을 두지만 셋 중 둘이 어릴 때 죽는다. 1881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평탄하지 않은 삶이다. 그 자신이 20대부터 신경성 병과 간질병을 앓기 시작했고, 사형선고, 그 추운 시베리아에서 투옥 생활, 석방되고도 한동안 시베리아를 떠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자유롭지 못한 생활 등. 이런 삶의 경로를 거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만의 지하세계가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해설에 의하면, 의식의 지하세계에 살면서 어둡고 자폐적이며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감정 속에서 쾌락을 찾는 작품 속의 지하인은 어떤 한 사람을 나타낸다기보다 획일적, 도덕적, 이성적인 그 당시 새로운 인간에 대응하여 도스토옙스키가 의도적으로 설정한 인물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간상인 것이, 냉소적이고 고립적이긴 하나 주인공은 고립된 세계에 살면서도 학문적인 논리를 펼칠 줄 알고 고독을 즐길 줄 알며 나름대로 소통의 대상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의식적인 무기력함이 오히려 더 낫다! 그러므로 지하실 만세! 비록 내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정상적인 사람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보는 상황에서도 결코 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를 부러워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지하실이 더 이롭다!). 적어도 지하실에선 가능하다. ! 난 이 시점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하실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 내가 열망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것이 더 낫다라는 사실을 마치 2x2=4처럼 내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지하실이라니, 악마에게나 가라지! (59)

 

주인공의 이중성과 모순이 잘 나타나고 있는 구절을 뽑아보았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구차스럽고 불만스러워하지만 않는다. 오히려 정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지상보다 오히려 지하라는 고립된 세계에서 더 가능한 것들이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집에서 난 무엇보다 독서를 많이 했다. 계속해서 내 안으로 파고드는 외부의 자극들에 빠져보고 싶었다. 외적인 자극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독서 하나였다. 물론 독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독서는 날 흥분하게 만들거나 위로해주기도 하고 또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때론 미치도록 외로웠다. 어쨌든 움직이고 싶었고, 그래서 갑자기 지하의 어둡고 혐오스러운 일에 빠졌다. 그것은 거창한 타락이 아니라 조그만 어긋남이었다. 내 안의 열정들은 강렬했고 늘 그래 온 병적인 초초함 때문에 들끓고 있었다. 눈물과 경련을 동반한 히스테리컬한 발작이 있었다. 독서하는 것 말고는 아무데도 갈 데가 없었다. 그 당시 내 주위에는 호의를 가질 만한 일도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수가 찾아왔다. 모순과 역설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열망이 있었다. 그래서 난 어긋나기 시작했다. 난 결코 내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거짓말을 했다! 난 내 자신을 정당화하고 싶다. 여러분, 이건 나를 위한 거짓말을 지적하고 싶다, 난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약속한다. (74)

 

독서에 대한 집착과 지하세계를 은근히 연결 짓는 이 구절에서도 주인공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이것이 소설인가 수필인가 할 정도로 주인공의 생각을 설명한 부분이 많고, 주인공과 도스토옙스키를 동일시하여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중성과 모순. 지하인은 어쩌면 시대를 불문한 인간의 내재적인 모순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해설자는 덧붙이고 있는데 그것이 이 작품이 갖는 의의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예술이란, 시인들과 낭만주의자들에게서 훔쳐와서 모든 가능한 서비스와 요구에 응하기 위해 준비된 존재의 아름다운 형식 (87)

이것은 예술을 정의한, 나름 매력 있는 문장이란 생각이 들어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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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a 2014-10-03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 후, 말 그대로 책만 읽던 시절에 이 책을 읽었었지요. 구구절절 가슴에 콕콕 박혔던 책이었어요. 그 아픈 시절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어서...늙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hnine 2014-10-03 15:13   좋아요 0 | URL
전 지금도 가끔 지하와 지상을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작가가 말하는 지하세계와는 정도와 수준이 다른거겠지요. 이 책 다음으로 읽고 있는 책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상처를 재료로 우리는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거라고요. 도스트옙스키의 굴곡많은 일생이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게 했나봐요.
독서와 관련된 구절을 읽으면서는 책 속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씩 다 지하생활인의 은둔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제발 저리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