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 만화와 사진으로 풀어낸 인도여행 이야기, 인도 여행법
박혜경 지음 / 에디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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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나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말과 글을 알면 가능한 일 같지만, 때로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지금도 나는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을 어떤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심하며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의 제목을 다시 본다. '바람도 그릴 수 있다면'

만화 형식의 여행기라는 것을 책장을 넘겨보기전엔 몰랐다. 지금은 없어진, 알라딘 틀림그림찾기 하며 눈에 익은 표지라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을 골라든 제일 큰 이유라면 이유랄까. 평소에 인도에 대해 관심이 특별히 많지도, 그렇다고 관심 없지도 않은 편이었으니까.

이 책 말고도 인도 여행에 대한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인도 여행 책들 중에 복잡하지 않고 개성있는 필치로 저자가 직접 그린 만화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이 책의 두드러진 점외에, 책 전체에서 내가 꼽은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문장이고, 다른 하나는 세쪽에 걸친 저자의 느낌글이다.

화가는 자기그림이 제 나이이고, 시인은 시가 제 나이이며,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영화가 제 나이이다. 바보들만 자기 동맥이 제 나이다. -앙리 장송 (12쪽)

지나가던 한 인도인이 내 카메라에 환한 웃음을 보여줬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행복 또는 불행하다고 섣불리 해석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여행자를 만날 때면 그가 관심 있는 건 오직 인도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풀어내 친구들에게 공감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주의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은 어딘가 비세속적으로 보이는 인도인의 생활을 소박한 평온이라 칭송하면서도 결코 그들의 삶을 닮으려 풍덩 뛰어들지는 않는다.

언젠가 사진을 찍어달라 조르던 아이들이 뒤늦게 돈을 달라고 해서 화가 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가난한 상대가 아무 대가 없이 내게 친절을 베풀면 그것이 곧 그의 순수함이 되고 친절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면 그것을 상대의 타락으로 여겨 왔던 나의 얄궂은 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최신 기기를 들고 원시림을 여행하면서도 주민들은 세속적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는 여행자의 이기심이랄까.

가끔은 나를 비롯한 많은 여행자들이 자신의 모험심과 동정심에 심취해 그걸 과시하느라 애꿎은 인도인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누군가 말하길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지. 혹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마음껏 구경할 준비가 된 철없는 이방인은 아닐까? (238-240쪽)

이 사람, 여행에서 귀한 걸 배우는구나 싶었다. 책을 통해, 공짜로 그 깨달음을 섭취해버리는게 미안했다.

그들은 왜 누군가에게 그들의 삶을 구경당하는가. 우리는 무슨 권리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멋대로 해석하고, 동정심과 싸구려 감성으로 그들의 삶을 뒤범벅 해석하여 우리 삶을 자만하고 안심하는데 이용하려 하는가.

내 친구 하나는 인도를 여행하다가 여행 기간 내내 배탈 설사로 고생만 하다가 왔다고 했고, 소설가 강석경은 인도를 여행하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돌았다고 했다. 얼마전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소설 <깊은 강>도 생각 난다.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보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작가가 될 꿈을 가지고 있다는 이 책의 저자. 바람도 그릴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란다. 그러려면 바람을 느껴야 하고 바람을 느끼기 위해 우리의 감각을 다른 곳에 다 내어주지 말아야 하리라.

 

책속의 여러 사진, 그림, 내용들보다 인용한 위의 저 두 부분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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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1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4-04-01 21:42   좋아요 0 | URL
전 여행을 많이 다녀보진 않았지만 저 구절을 읽는데 금방 넘어가지지 않더라고요. 꼭 여행을 다닐때만 그러겠어요? 어차피 우리는 우리의 안경을 통해 보고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고 단정하고, 그러겠지요. 혹시 여행을 통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비교를 추구하고 있지않은지, 잠시 심각해져봤어요 ^^
이러니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의 눈이 깊어지고 넓어질 수 밖에요.

비로그인 2014-04-0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말로 ( hnine 님의) "페이퍼를 통해 공짜로 그 깨달음을 섭취해버리는 게" 죄송하거나 하진 않고 ^^

무척, 감사한 마음으로 꼼꼼히(당연히 이렇게 읽어야겠지만 나인님 페이퍼는 특히..) 읽었답니다.

hnine 2014-04-01 21:46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 사진 잘 찍으시는 컨디션님~~ ^^
꼼꼼히 읽어주신다니 순간 덜컹! 전 한번 글 올리고 난 다음에 다시 한번 읽어보는 성격이 못되어서 나중에 읽어보면 오타가 만발이거든요 ^^
인도에 가볼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라씨'라는 디저트는 꼭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저 책에 나와요 ^^

몬스터 2014-04-02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바본것 같아요. :-( 제 나이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더 살아봐야겠죠. (?).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겠지만 여행도 저는 아직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한 번 발을 떼면 , 두 번째는 덜 두렵다는 거 아는데도, 처음이 어렵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hnine 2014-04-03 00:21   좋아요 0 | URL
저도 자신있게 제 나이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저 문장이 마음에 이처럼 들어오지 않았겠지요.
몬스터님 서재에 다녀왔는데 지금 영국에 계신가요? 여기 저기 여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더 길을 나서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도 영국에 3년 반 정도 있었는데 정말 다닌데가 별로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