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뜨거움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서넛 이상 함께 만나는 약속보다는 둘이 만나는 약속을 더 좋아한다. 서넛 이상 만난 자리에서는 정말 나누고 싶은 이야기보다는 이야기의 겉만 건드리다 들어오는 수가 많거나, 속 깊은 의견을 주고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일지라도 차라리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들어오는 내 마음은 뿌듯한 반면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에 나갔다 들어오는 마음은 나가기 전보다 오히려 휑할때가 많다.

김미경의 책을 읽고 나면 늘 친구를 만나 실컷 이야기를 주고 받아서 마음을 꽉 채우고 들어올 때의 느낌을 준다. 선생님이나 선배라기 보다는 수다스런 친구말이다. 그래서 다 옳은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대로 다 들어야한다는 부담도 없다. 오히려 때로 뻥도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고 과장도 있어보여서 그건 아니라고 반박도 하고 우겨도 될 것 같고, 하지만 맞장구 치며 속 시원해할 때가 더 많은 친구. 결점도 있지만 그녀만 가지고 있는 날카로움과 명쾌함이 있어서, 만날까 말까 망설임없이 서슴없이 또 만날 약속을 잡게 되는 친구.

그녀의 신간을 발견하고 읽을까 말까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하루를 못넘기고 휘리릭 다 읽어버렸다. 이번엔 특히 그동안 그녀의 침묵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저 윗자리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칠 치고나서 그 시간을 김미경식으로 보내는 방법은 뭐가 달랐을까? 역시 그녀는 책 속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피해가지 않았고 나는 또 친구의 막힘없는 수다를 잘 들어주고 난 느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대부분 공감할 이야기들.

우리는 곧잘 자신의 문제에는 유치원생처럼 굴다가도 남의 문제에는 주지스님처럼 말한다. 자신의 문제는 작은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지면서 남의 문제는 산맥이라 할지라도 거뜬히 넘는다. 남의 일이라서 쉽게 얘기하는 것일까. 아니다. 한 발짝 물러서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동안 사람들의 물음에 답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멀리 떨어질수록 잘 보이는 법이다. (16쪽)

'자신의 문제에는 유치원생, 남의 문제에는 주지스님' 이라는 말이 여운을 준다. 나도 분명히 이런 구석이 있을 것이면서 다른 사람이 이러는 것에 예민하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유난히 가르치는 말투로 답하는 사람을 피하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한 발짝 떨어져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거울없이 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것처럼.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문제는 그저 '느낄' 뿐이지 들여다보진 못하고 산다. 대신 남의 얼굴에 대해선 쉽게 말한다. 쉽게 '보이니까'.

세상의 모든 맏이는 서툰 엄마의 '실험대상'이라는 숙명을 타고난다. (120쪽)

이 세상의 자식된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분석에 대한 결과로 그 원인을 대부분 부모에게서 찾아내고는 분석 완료를 외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이런 결점은 성장기때 부모로부터 어떤 영향때문이고 이건 뭐가 결핍되어 나타난 결과이고 그때 나는 무엇이 상처가 되었었고 등등, 부모로 부터 받은 그 많은 것들 보다는 모자란 어떤 것을 콕 집어내곤 내 상처의 원인을 찾아내었다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까지 내리곤 한다. 특히 맏이의 경우 부모로부터 받는 높은 기대 수준은 둘째나 막내와 다르기 마련이다. 저자는 맏이가 아니면서도 세명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고백하기에 이른다. 정말 부모가 아이보다 나을까? 하고.

굳이 눈 씻고 찾지 않아도 내 현재를 대변할 핑계거리가 부모의 인생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모와 나의 인생을 평행선으로 보지 않고 같은 선상에서 보기 때문이다. (128쪽)

인생을 연극이나 영화라고 할때, 태어난 순간 우리는 우리가 주연이라기 보다 부모가 주연인 무대에 서게 된다. 어린 아이들 눈에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부모가 주연 배우로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할 어른이 되었다. 부모의 영향력 아래 휘둘리지 말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리셋해야 할 때이다. 부모 인생에서 내 인생의 문제점의 원인을 찾아내어 상처를 키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사랑하면서 데리고 살아갈 의무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부모 때문에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이 땅에 탄생한 자의 의무다. 부모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것은 '나는 부모의 복제품'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생을 이해하고 나 스스로 주인공이 됐을 때, 그때가 바로 진정한 '탄생'의 시작이다. (130쪽)

 

이 책에서 내가 베스트로 뽑은 구절은 다음이다.

불행과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그 모든 감정들이 하나하나 내 몸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운명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 흘러가게 두면 된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숨만 쉬어도 된다. 중요한 건 한꺼번에 내려놓으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왜 이까짓 일도 못 이겨내느냐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웃거나 씩씩한 척하지 않아도 된다. 박노해 시인은 말했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148쪽)

'그저 놓아두자' 라는 문장으로 맺는 이 글. 그녀가 이십대나 삼십대에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이 먹어가며 잃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새로이 깨닫는 것도 있고 넓어져 가는 것이 있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늙어갈지라도.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이런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 생각해보는 것은 좋으나 꼭 어떤 답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라던 법륜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유 이전에 존재가 있는데 존재의 이유를 사유를 통해 얻을 수 있겠냐고.

때로는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좋은 시간들이 있다. 그저 놓아두고 지나갈 때를 기다리는 시간들. 저자의 말처럼 시퍼런 마음의 멍이 빠질 때까지 천천히.

몇달 동안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었던 모양이다. 그런 얘기, 느닷없이 음악을 하겠다고 하여 반대를 무릅쓰고 예고에 진학하더니 1년도 안되어 자퇴하여 현재 자퇴생의 딱지를 달고 있는 아들 이야기, 바쁜 엄마 때문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큰 딸 이야기.

아침에 일어났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공부하는 게 최고다. 우울하고 고립될수록, 뭘 해야 할지 자신이 없을수록 공부가 답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게 당연하다. (242쪽)

당장 아침에 눈을 뜨면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 말이 고까울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이 말에 가슴 찔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시간에 쪼들리는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할지도 모른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시간, 다른 몇명의 친구를 만나고 들어오는 것보다 마음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친구는 종종 만냐줘야 해, 혼자 중얼거리며 돌아오는 발걸음.

 

 (이 리뷰의 제목은 책 중에서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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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3-0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리뷰를 놓칠 뻔했어요.

1. 저 역시 소수 체질이라서 일대일로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더라고요. 여럿이 만나면 수박 겉핥기 식의 얘기만 한 것 같아요.
2. "멀리 떨어질수록 잘 보이는 법이다" - 그래서 자기 일엔 정확한 판단력을 잃는 모양이에요. 거리의 문제였군요.
3. 저는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자처럼 상처 받는 사람이 될 때 비난보다는 연민이 앞서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자가 있을까 싶어요. 반성할 줄 모르는 게 더 문제라는 생각도요.
4. "불행과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나가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니 니체의 글이 생각납니다.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은?

‘시간이 슬픔을 잊게 한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이 실제로 시간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엇이 슬픔을 잊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개개인의 작은 즐거움, 기쁨, 소소한 만족이다.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면 슬픔과 고통은 어느새 옅어지고, 이윽고 멀리 자취를 감춘다. ......<초역 니체의 말 2>, 175쪽.

(제 블로그의 글을 복사 붙이기 했어요.)

hnine 2014-03-03 14:19   좋아요 0 | URL
일대일 만남을 선호하는 제가 만남에 있어서 너무 진지 모드 지향적인가 생각했었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대일 만남보다는 여럿 만나는 자리가 더 자주 생기더라고요. 자연히 저는 누구를 만나는 일이 더 드물어졌고요.
위의 저자는 처음 방송에 나왔을때 너무 과장이 심한 것 같아서 저도 그닥 호감이 아니었는데 책을 읽어보고 제게 도움이 되는 말들이 많기에 그담부턴 거의 다 사서 읽고 있답니다.
니체의 인용문도 공감해요. 그런데 슬픔이나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동안엔 그걸 잠시 있고 몸부림, 마음부림 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질 못하고... 며칠 전에 라디오에서 어느 분 말씀을 듣는데 '체념'을 잘 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 때로는 '그럭저럭 산다'는 자세로 사는게 정신건강에 좋다고요. 극복할 거리를 오히려 만들어가며 다 이기고 살려는 것은 아닌지, 니체의 말을 읽으며 또 생각해봅니다.
슬픔은, 잊으면 또 생길텐데 말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