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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며칠 앞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방문을 열자 집안에서는 묘한 냄새가 났다.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는 바깥의 공기와 다른 성질로 바뀌기라도 하는 것인지. 거의 한 달을 비워두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8월 중순은 여전히 한여름이어서 밖에서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했지만 그래도 다행히 방에 들어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면 시원했다.

매일 아침 카메라를 들고서 마음이 가자고 하는대로 향했다. 미리 계획같은 것은 없었다. 서울 근교 5일마다 선다는 장에도 갔고, 대학로 연극 공연장에도 갔다. 홍대 앞, 그리고 그 뒤의 달동네를 돌아다닐 때에는 같은 하늘 아래 참으로 다양한 인간이 숨 쉬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상철이, 형민이와 곧잘 가던 카페에도 가보고, 밤이 되면 마치 건물 전체가 하나의 조명 기구처럼 번쩍거리는 영어 학원가도 돌아다녔다. 인사동 뒷골목, 비 오는 날, 그리고 같은 장소를 맑은 날. 얼마나 많은 사진들이 카메라 속에 담기고 있는지 모르고 마냥 눌러대다가 배터리가 다 되거나 메모리가 꽉 찼다는 신호가 들어오면 그것이 그 날 하루의 마감 신호가 되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보았다. 사람이 사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면 찍어온 사진들을 다시 보며 파일로 정리했다. 내 컴퓨터 속에는 새로운 폴더가 하나 둘 늘어갔다. 어떤 폴더에는 ‘블루의 안과 밖’이라는 이름이, 어떤 폴더에는 ‘광시곡’, 어떤 폴더에는 ‘꿈을 찍는 사진관’이라고. 폴더에 사진이 쌓여가듯이 하루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갔다.

몇 개의 사진을 골라내어 USB에 옮겼다. 현상소에 가서 그 사진들을 출력해왔다. 그 다음부터는 밖에도 나가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입혔다. 사진과 사진을 이어 붙여 콜라주를 하기도 하고, 예전에 해본 것처럼 사진의 일부를 도려내거나 못으로 긁어내어 질감의 변화로 느낌을 달리해보기도 했다. 사진 위에 표백제를 몇 방울 떨어뜨려 탈색의 효과를 내보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 것과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가끔 엄마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그러니까 하루에 두 번 정도. 엄마의 품속을 혼자서라도 느껴보려고 애써보았고, 그렇게 오롯이 앉아 있던 엄마의 모습을 눈앞에서 그려보기도 했다. 이전의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누워계신 모습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누워계신 외의 다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해 여름, 나는 그렇게 나고 있었다.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와 연관 지어 볼 때도 있었다.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생각해볼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아주 가끔이었고, 도리질 치지 않고도 어느 새 나는 하던 일로 돌아와 있었다. 정신 팔려 있었다고 해도 되고, 몰입해있다고 해도 될 것 같은 시간들. 그리고 가끔, 엄마가 보고 싶었다. 산 속의 외딴 방에 오롯이 앉아있던 엄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던 엄마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보고 싶다고 바로 볼 수 없기는 하지만, 예전과 달리 엄마가 어딘가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신기하다. 지금 내가 보고 듣고 겪는 것들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지나서 알게 될 그 길을 지금 나는 지나고 있는 것인지도.

오늘 만든 사진 폴더의 이름은 ‘호두나무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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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3-11-0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꾸준히 노력하시는 님

hnine 2013-11-07 07:35   좋아요 0 | URL
별로 꾸준하지 못해요. 더 잘 써보려다가 그냥 이대로 마치자는 뜻으로 여기에 올리기 시작했답니다.

2013-11-06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