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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내가 처음 저자의 이름을 본 것은 일간지였다. 서른 셋의 한국계 여자, 하버드대 종신 교수라는 제목의 기사.
얼마 지난 후 우연히 TV에서 그녀를 또 보았다. 처음부터 본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모르겠지만, 일종의 '자랑스런 한국인'같은 류의 기획물 일환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방송국에서 직접 그녀가 사는 미국으로 찾아가 그녀가 사는 모습을 취재하여 보여주었다. 그녀의 하버드 연구실, 집, 남편, 두 딸. 아무것도 부족할게 없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나는 그녀가 하버드 종신 교수라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는 좀 다른 경로를 거쳤을 것 같은 그녀의 그동안의 삶이 궁금해서 꽤 흥미있게 그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았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그렇게 알게 되었듯이, 한국에서 그녀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게 되고, 여기 저기서 그녀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한국계이긴 하지만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하고, 국적도 미국인 그녀는 예상치 못한 한국으로터의 관심과 주목을 갑자기 받게 되자 무언가 생각하게 되었나보다. 여섯 살까지 살았던 나라, 부모님의 나라 한국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우리 나라에서 보통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녀도 분명 그런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녀의 의지가 아니라 부모의 강력한 권유와 지도, 그리고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던 그녀의 성격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TV에 나왔을 때에도 무용을 포기한 건 지금도 상처로 남았다고 하더니 이 책에도 그렇게 써놓았다. 처음엔 엄마의 권유로 시작한 무용이 너무 좋아서 계속 무용을 하고 싶었는데 막상 그말을 들은 부모는 취미로만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처음엔 굴복하지 않고 영재 학교에 다니면서 방과후에 가서 무용 수업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부모의 강력한 반대가 계속되자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다시 엄마의 권유로 배우게 된건 피아노. 맹연습 끝에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열심히 피아노를 공부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취미로만 허락되었다. 결국 그만두게 할 것이면서 그녀의 엄마가 이렇게 무용, 피아노 등을 배우게 한 것은 '무엇이든, 골고루 다 잘 해야한다'는 방침때문이었다고 한다. 자기 의지가 계속 좌절되자 그녀는 책을 도피처 삼아 그 속으로 빠져들었고, 이를 닦으면서도 책을 읽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詩)에 사로잡혀 언어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Yale에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게 되고 장학금의 혜택으로 Oxford 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막상 문학을 공부해보니 자기는 언어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글을 쓰는 일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진학하게 된게 하버드 법대였다. 아마 우리 나라 같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Oxford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그때쯤이면 대학 입학할 나이는 지났을 터인데 다시 다른 전공의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희열에 가까운 느낌을 경험했고 학교가서 공부할 생각에 매일 아침에 눈뜨는게 즐거울 정도였다고 한다.
부모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그녀였지만 적어도 글에서 알수있는 그녀는 Yale, Oxford, Harvard, 법대 교수 등을 목표로 하여 노력하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동시에 약간의 원망스러움이 왜 없었겠는가. 드러내서 쓰지는 않았지만 읽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슬쩍 엿볼 수 있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좋은 점, 도움을 받은 이야기 외에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 같다. 부모가 그녀를 어떻게 키웠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썼지만 그것에 대해 지금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감사하다는한 말로 맺는게 전부였다. 더구나 내가 TV에서 볼때만 해도 아주 다정해보이던 남편과도 지금은 헤어졌지만 그건 자기에게 큰 슬픔이었다는 말이 전부이다. 아마 자기 책을 통해 자기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글 몇 줄로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책의 후반에는 법학이라는, 보통 사람들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분야에 대해 꽤 진지하게 그녀의 생각을 풀어놓았다. 의사가 환자를 관찰하고 해부하듯이 법학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 국가를 해부하는 역할을 하고, 의사가 사용하는 칼에 해당하는 것이 법학자에게는 '언어'라는 비유가 인상적이었다.
100 사람이 있으면 100 가지 다른 삶이 있다. 그래서 그 어떤 삶에도 나는 관심이 간다.
그녀는 완벽한가? 책에서 그녀의 입으로 말한다. 완벽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갑옷을 둘러 쓴 것 마냥 답답하고 무거운 부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완벽해지도록 노력하라는 말 대신 그녀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한다.
용기. 시도하지 않은 분야에 발을 들여놓겠다는 그 결정은 능력이 아니라 용기가 하는 일이다.
책에 쓰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가 그녀에겐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하는 항목 중에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던데, 단순하게 살자고 일부러 마음 먹는 사람은 이미 단순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단순은 곧 '집중'의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