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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 이현수 장편소설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작가의 이전 소설 <장미나무 식기장>이 출간되고서 바로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고 실제로 읽지는 못하고 있는 동안, 어느 새 시간은 흘러 다음 소설이 나오고 말았다. 바로 이책.
<토란>과 <신기생뎐>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색깔을 파악하게 되었다. 이현수의 소설들을 읽노라면 항상, 지금은 없어진 "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루면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그녀 소설의 소재, 문체, 주제들이 매우 한국적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신기생뎐>은 우리 나라 기생들의 삶, 사랑, 한을 토속적이면서 걸직하게 끌어나가는 서사력이 뛰어났으며 중단편집인 <토란> 역시 그녀의 거침없는 어휘 구사와 인간의 심리와 상황을 꿰뚫어보는 예리함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책 <나흘>은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미군들이 충북 노근리에서 피난을 나가던 주민들을 쌍굴다리 아래 감금해놓고 무차별 사격으로 살상해버린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노근리라면 지금의 충북 영동면에 속하는 곳으로서 다름아닌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노근리 사건은 몇 해 전에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될때 보았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곳의 모습이 쉽게 머리속에 그려졌다.
이 책이 출판된 이후 여기 저기 실린 작가의 인터뷰 자료, 그리고 이 책의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책의 제목을 정하는 것 부터 소설 내용의 대폭 수정에 이르끼까지, 작가는 나름 많이 고심을 하여 내놓은 듯 한데, 나 개인적인 느낌으로 여전히 제목도 과연 이 소설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는지 모르겠고, 소설의 구성 역시 그녀의 이전작 처럼 매끈하지가 않다. 노근리 사건 하나만으로 장편을 끌고 가기엔 무리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내시'집안의 가족사를 끌여들임으로써 기록물의 느낌을 덜고 읽는 재미를 주고자 한 것 같으나 그 연결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만 것은 유감이었다. 소설 속의 인물 '김진경'을 내시 집안의 후손이 아니라 원래 동학 대접주의 후손으로 써나가다가 수정하였다고 작가는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런 사연을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더라도 여기저기에서 조사한 자료문을 인용한 티가 여실히 드러나기도 하고, 그게 가끔 대화문 중에서 조차 발견될 때에는 읽는 내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작가에 대한 기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김진경의 생부가 누구인지, 그날 화재를 일으킨 사람이 누구인지 하는 점을 이야기 속에 삽입한 것 같으나,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 책의 주제, 그리고 결말과 그리 큰 관련이 없다보니 과연 그게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그리 크지 않았다. 의문점이 풀리면서 비로소 결말이 지어지게 될때 흥미가 생기는 법인데, 이 소설의 흐름상 그 답을 몰라도 이야기는 끝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별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뭐, 기대가 큰 만큼 좀 실망을 하기는 했지만 작가 특유의 문체와 어휘 구사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누구나 자기의 작품에 대해 만족하기보다는 아쉬움이 크다지만, 작가는 이번에 이 작품을 내고서 얼마나 만족했을까.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아쉬웠다.
- 밑줄 그은 구절 -
(106쪽) 그즈음 나는 쓸쓸함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흙을 만지면 마음이 무상해져서 좋았다. 그때는 몰랐다. 물레를 돌리며 내시의 양자라는 비천한 신분을, 내 외로움을 도토 속에 이겨넣고 있었다는 사실을. 훗날 그 시절 접했던 흙과의 교감이 내 삶의 노동과 휴식의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는 걸.
(114쪽) 서산댁은 동글동글한 얼굴에 뺨까지 붉어 언제나 태평해 보인다. 포근하게 살이 오른 서산댁의 뒷모습을 뜯어보면 환희나 기쁨을 받아들이는 것만도 벅차서 분노와 화, 다급한 일 따위는 저장할 여력이 없는 몸 같기도 하다.